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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 땅에서 피어난 꽃 Dec 12. 2021

여전히 쉽지 않더라도, 절망 속 희망처럼

현재: 선택을 내린 후의 시간의 모습들

 글은,  나와 오랫동안 함께 해왔던 만큼 쌓인 이야기도 많아 이야기집이 한 권 뚝딱 만들어질 정도였다.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주욱 이어져 온 이야기를 써내면서 과거의 모습을 잔뜩 이야기하게 되었다. 과거는 충분할 만큼 이야기하였으니, 이제는 현재의 모습에 중점을 두고서 못다 한 이야기들을 마저 해보려 한다.


 과거의 시간은 한 마디로, 삶을 계속할지 말지에 대한 극심한 고민 속에 있던 시간이었다. 결국 그래도 계속 살아가고자 마음을 먹었고, 그것은 곧 글을 계속 쓰도록 결정한 것이 되었기도 했다. 다양하고 고통스러워 견디기 힘들던 위기 속에서도, 글은 참으로 오랫동안 나와 함께 했고 그 글을 놓을 수 없었기에, 삶과 함께 하고 함께 가는 것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과거가 선택에서 흔들리는 시간이었다면, 선택을 내리고서 그 속에서 살아가는 시간이 현재이다. 현재의 모습이라고 할지라도 가까운 과거가 포함되어 있기도 하고, 쌓이거나 만들어진 모습이 여럿 있기에 이야기하는 게 단순하고 간단하지만은 않다. 현재에 하는 미래에 관한 생각과 그 생각이 영향을 미치는 현재의 행동 같은 것처럼 상호적인 것 역시 있기 때문이다.


 무엇부터라는 순서에 대한 고민이 들지만, 가까운 과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일정한 시간의 현재를 이야기해보는 것으로 우선 시작해 보면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바로 그런 요즘의 이야기가 좋겠다. 요 며칠간, 이어져 오고 있는 몇 주에서 몇 달의 시간들 속에 있는 나의 모습, 요새 하는 생각 같은 이야기들을.



 현실적인 문제라고도 불리는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얼마간만 다니자고 했던 직장을 여전히 다니고 있다. 여름쯤, 원래 있던 곳에서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어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어서였는지 그 전의 기억들은 어쩐지 아득하다. 무덥고 힘겨웠던 여름이 지나, 좀 살 것 같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더워서 걸치지 못했던 겉옷을 더욱 껴입어야만 하는 계절이 되었다.

 그 기간 중 최근 몇 달은 할인 행사로 인해 주문량이 많아져 출근하는 거의 모든 날이 야근으로 채워졌다. 남은 하루의 시간은 물론, 휴일의 시간도 기업의 매출을 위한 혹독한 노동 속에서 삭제되듯 빠르게 사라져 간 듯하다. 통증과 피로감에 시달리며 녹초가 된 날들도 많았다.

 그래서 지난 몇 달의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 버렸는지도 몰랐다.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올해가 다 가기 직전이라는 걸 알아차리게 된 건, 달력보단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아기자기한 장식들로 꾸며져 약간은 들뜨게 만드는 거리의 풍경 때문이었다.


 일 집, 일 집...이라는 삶의 형태 속에 살다 보니, 부족한 여유로 인해 깊게 들어가진 못했으면서도 삶의 형태에 대해 여러 차례 생각을 해 본 것 같다. 다 똑같이 사는 것 같으면서도 그렇지 않다는 것, 노동은 노동이고 중심을 잡고서 내 것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 끌려가지 않고 스스로 충분한 돈을 벌어서 지금의 직장을 나올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등 더 나은 날들을 꿈꾸었다.


 그것은 단순히 편해지고 몸이 덜 아플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쉬는데 얼마 안 남은 시간이 거의 소모된 다는 데서 오는 허무감과 무겁게 가라앉는 몸을 일으켜도 뭘 하나라도 하기 힘든 지친 상태에서 오는 우울함 등이었다.

 기본적인 할 일들도 겨우 하는 터라, 메모 형식 이상의 글들은 쓸 수가 없었다. 약간 시간이 생기는 점심시간을 쪼개도 읽을 수 있는 책의 페이지 수는 겨우 몇 쪽이었다.


 청구되는 돈들이 있지만, 그래도 필요하다 생각하여 한 번씩 마음먹고 책을 사지만, 그걸 읽는 시간이 너무 더딘 채로 원하지 않는 일에 더 많은 시간 매이는 것은 역시 답답하고 불행스러운 일이었다.


과거에 고통 속에서 꼼짝 못 하고 얼어 있다가 발자국을 겨우 떼어 걸어가게 되었지만, 현재도 고된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절망과 불가능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더딜 뿐이지, 멈춰 있지 않다는 것 자체가 희망이다. 고등학교 시절, 언어 시험을 볼 때마다 마음에 강하게 들었던 생각은 매일 조금씩이라도 글을 읽었다면 글 읽는 속도가 빨랐을 텐데라는 아쉬움이었다. 적어도 지금은 짧게라도 글을 매일 읽고 있고, 확실히 이 전보다 매끄럽게 글이 읽히지 않은가.


또 이제 상황도 점차 좋아지고 있다. 일주일마다 야근이 없는 주는 없지만, 매일 같지는 않고 조금은 덜 지치면서 좀 더 긴 글을 쓸 수 있게 되고 있지 않은가.

 비록, 한 번에 한 편의 글도 쓰진 못하고 만족스럽지 못해 그만 덮어 버리고 다른 것들을 하며 잠시 잊어버리기도 하지만 결국 훨씬 마음에 드는 형태로 잘 다듬어 끝 마쳐 내보이는 것까지 해내지 않는가. 바로 지금 이 글처럼.


 팍팍한 현재이다. 내 글은 이제 외부로 한 편씩, 공개되어 작은 관심만 받고 있으며 이걸로 돈을 벌 수 있게 될 날이 올지, 그래서 지금의 견뎌야 하는 생활을 끝을 낼 수 있을지가 불투명하다. 원하는 책을 사고 싶어도 쉽게 사지 못하고, 어렵게 산다고 해도 여유롭게 읽지 못한다. 문장은 읽을 수 있을지 몰라도 충분히 깊게 생각하고 감상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밀린 돈들은 갚아나가고 있으니 액수가 줄어들 것이고, 이대로 큰일이 있지 않은 한 여유는 미약하게나마 조금씩 늘어갈 것이다. 오래는 걸리겠지만 글은 계속 써 갈 것이다. 좋은 결과가 나오려면 아마 한참 있어야 하겠지만 그래도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란 희망과 나에겐 보답해야 할 마음들이 있다.

 

지진 같던 큰 흔들림을 견뎌내고 굳건해진 선택을 포기할 이유도 없고 글 쓰기는 낭비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생산적인 재미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언제든지 하려 하는, 하게 되는 활동이다.


이것이 내 재주이고 즐거움인데 계속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일까?


글을 쓴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많은 말을 할 수 있는데, 그러니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이야기들을 할 수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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