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언 땅에서 피어난 꽃 Apr 13. 2022

말하지 않으려 했는데.

버텨 나가기 위하여


 출근 전 아침, 나갈 준비를 하면서 시간의 흐름을 알기 위해 tv를 틀어 놓는다. 그러면 tv 속 프로그램에서 생활정보 따위의 내용이 흘러나온다.


 오늘 아침에 본 것은, 직장 내 명예훼손에 관한 짤막한 내용들이었다. 사례와 함께 변호사의 의뢰인을 예로 일컫어지는 피해자의 고통이 상당하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얼마간 보다가 출근을 했다.


조금 이른 시간에 출근을 해서는 내가 매일 목표로 하는 간단한 쓰기 연습을 한다. 아직 서툴러서 점심시간에도 마저 해야 하고, 다 못하면 집에 와서도 해야 하는데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다. 적은 양이지만 매일 할 수 있는 것을 하기 위해 시작한 뒤로 꾸준히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점심시간에 그것을 끝마쳤다. 퇴근 전은 물론 집에 와서도 부담을 덜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무척이나 힘들어서 8시가 좀 넘어 그대로 자버리고 싶었다.


단순히 몸이 힘들어서가 아니었다. 정신적으로 너무 피로하고 지쳐서 몸에까지 영향을 줘버린 듯했다.


누구나 먹고사는 것이 힘들다곤 한다. 단지 물가가 비싸고 버는 돈은 거의 고정적이라 경제적으로 힘든 것만이 아니라, 먹고살기 위해 해야 하는 일과 특히 그 속에서 부딪히게 되는 타인에 시달리는 것이 가장 고통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고정적으로 돈을 벌며, 피치 못하게 져버린 빚도 갚아가고 생활비를 해결하고 얼마 안 되는 돈을 모으며 살아가는 와중에 미래를 생각하고 싶다. 쉬거나 남는 시간에 하게 되는 쓰기 연습처럼 역량을 기르기 위해 훈련도 하고 집에 와서 조금은 길게 확보되는 내 시간에 책도 보며 성장하고 싶다.


그런데 그것을 방해하는 것은 노동의 힘듦이 아니라, 선하지도 자유롭지도 않은 사람들의 교묘한 괴롭힘이겠다. 나는 오늘도 그것에 잔뜩 시달리고 왔다. 다른 사람과 간단히 이야기를 해보기도 하고 신경 쓰지 않으려 했지만, 일하는 내내 그것은 가해졌다.


그것은 쉽게 입증하기 힘든 폭력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폭력에 내 삶과 생활, 안 그래도 적은 시간을 차마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내 생활을 차지해 버려 내 발목을 잡지 않길 바랐다. 그래서 말하려 하지도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오늘같이, 이런 참음이 누적되어, 내가 나의 것을 하기 위한 힘을 그대로 빼앗는 것을 느끼고서

기록이라도, 하다못해 속을 비워내서 스트레스라도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러다간 정말로 위험해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폭력에 견디지 못해 위부로 표출되어 누군가를 해치는 폭력이 되어 버리든, 내부에서 터져 폭력에 시달리다 못해 끝내 목숨을 끊은 사람들처럼 되든 비극적인 결과가 될 수밖에 없음에, 글로라도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불행에 대해 말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다. 마치 오점처럼 남거나 약점을 드러내는 것 같아서 말이다. 세상엔, 남의 불행을 즐거워하거나 표적으로 삼아 더 심한 가해를 하는 악독하고 잔혹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충분히 느끼고 보고 겪어 왔기 때문에 망설였고 더 참으려 했다. 그러나 오늘은 꾸며낸 글이 아닌 진솔한 글들에 대해 상기하게 되었다


처참한 것은 처참한대로 참혹한 것은 참혹한 대로 그대로 내 보이던 그 글들. 그리고 그 글들이 때로는 목소리가 때로는 보이지 않는 것을 가시화시키는 요소 중 하나가 되는 것을 생각했다. 나는 이 글이 우리 사회와 주변에 존재하는 폭력을 뚜렷하게 보이게 해주는 역할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가해를 하는 자들을 무력하게 만들어 주는데 보탬이 되도록, 오늘처럼 심한 내상을 입은 날들에 참거나 애써 무시하며 속병을 키우지 않고 말해 가도록 하겠다.

작가의 이전글 일시적 노동 해방 후, 고요한 발악의 나날 속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