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옥상, 1988년의 하늘
오전 이론 수업에 들어가기 전, 강사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물었다,
“혹시 옥상 방수 공사 직접 해보신 분 있으세요?”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맡겨서 해보신 분?”
물이 새는 이유로 방수 공사를 맡겨 본 사람들이 없진 않았다. 앞에서 세 번째 줄에 앉은 나는 뒤돌아 보지는 않았지만 수를 세는 강사의 손짓으로 세 명 이상이 있구나 짐작했다.
“방수 공사 얼마 주셨어요?”
150만 원부터 500만 원까지도 나왔다.
금액으로 짐작컨대 방수 공사는 그 과정도 기술도 결코 수월하지 않을 것 같았다.
이어서 방수 공사의 단계와 필요한 과정, 재료 등등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나는 도통 수업에 집중을 하지 못했다. 경험과 동떨어진 내용 때문인가 싶은 순간 화면 가득 초록의 옥상이 나타났다.
‘아!’
기억이 깨어났다.
온전하고 또렷하게 남아있는 유일한 단독 주택.
그 집의 옥상은 빨래를 너는 마당이었고, 된장 간장 항아리가 나란히 있던 장독대였으며 계절에 맞춰 고추도 말리고 눅눅해진 쌀도 널어 말리던 툇마루였다. 쨍한 초록이 강렬한 하늘을 만나 원색의 그림을 이루던 풍경.
1988년 서울 올림픽. 살아오면서 본 하늘 중 가장 높고 눈부신 가을이었다. 그 하늘 아래 초록 옥상 한켠에 나의 엄마는 어마어마한 양의 고추 부각을 말리셨고 나는 그 희끗희끗한 애기고추와 하늘빛이 마음에 들어 수업이 없는 날이면 하루의 대부분을 옥상에서 보냈었다.
옥상의 방수 안료를 소개하는 중에도 나의 머릿속은 자꾸만 올림픽이 열리던 그해의 초록 옥상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가끔은 옥상에서 물이 빠지지 않아 부모님이 집을 잘 고치시는 동네 아저씨를 모셔와 무언가를 의논하기도 했지만 나는 거기까지가 다였다. 어떻게 해야 물 내려가는 길이 막히지 않는지도 궁금하지 않았고 옥상에 있는 모든 집기를 치우고 산뜻한 초록으로 단장하던 행사도 그저 말끔하게 보기 좋으라고 하는 것으로 추측했다.
바람과 비, 눈, 햇빛… 그 모든 것을 담담히 받아들여야만 했던 옥상이 가장 취약할 수밖에 없네.
그날의 이론 수업은 그냥 포기했다. 앞으로도 직접 방수액을 칠해 볼 기회는 없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더더욱. 게다가 수업 자료 화면 속 초록의 옥상에 자꾸만 내가 보이고 빨랫줄을 고정하기 위해 박아둔 쇠 막대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그 집 마당에서 옥상으로 오르던 계단은 불안하게 좁고 가팔랐었다. 그래서 나는 항상 부엌에 있는 다락문을 통해 드나들었다.
다락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 바닥에서 한참은 높이 있는 계단을 풀쩍 뛰어서 올라간다. 그리고 나무 계단을 오르면 양 옆으로 다락의 공간이다. 안 쓰는 부엌살림부터 국민학교 교과서까지 우리 가족들의 과거와 현재가 먼지와 함께 익어가는 곳. 나는 다락의 묵은 냄새가 좋아서 느릿느릿 계단을 지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낮지 않은 턱에 올려진 불투명 유리문을 밀면 그곳이다.
저 멀리 언덕 같은 동네 산도 보이고 엄마가 다니시던 절도 보이고 그리고 이웃집들의 빨래가 한눈에 들어오던 곳.
서걱거리는 돗자리를 깔고 하늘을 향해 누워 눈을 감는다. 공기를 가르는 바람 소리, 골목을 지나는 사람들의 목소리, 바람에 펄럭이는 빨래의 춤 그리고 하늘의 냄새.
나는 여전히 가 없는 하늘이 좋구나. 그런 하늘을 마주할 수 있는 옥상이 필요했구나.
아닌가?
어쩌면 내가 놓치고 있던 것은 그 옥상에서의 느릿한 시간일 수도.
그래서 지금껏 저리 선명한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