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찾아보려고요 (7)

by 서화

그녀는 한라산 트레킹 일행 중 나처럼 혼자 온 이였다. 내가 호들갑 떨며 권한 ‘갱이국’ 아침을 두어 번 같이 하기도 했고 둘레길 일정동안 몇 번을 나란히 걸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당차 보였다. 작은 키에 동글동글한 얼굴. 군더더기 없이 야무져 보이는 체격까지. 반듯한 걸음걸이 못지않게 매끈하고 힘이 느껴지는 목소리는 부드러우면서도 진실함을 더하고 있었다.


닷새째라고 기억한다. 서귀포 자연휴양림의 나무 데크길이 이어졌고 빽빽하게 뻗은 나무와 고요하고 서늘한 공기에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걷고 있었다.

“이름이 뭐예요?”

앞서거니 뒤서거니 보조를 맞추던 그녀가 물었다. 나는 선뜻 답했다. 하고 나니 궁금했다.

“제 이름이 왜 궁금하세요?”

그녀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시선을 아래로 둔 채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중에라도 이름을 찾아보려고요”

순간 먹먹하게 코끝이 찡했다. 그녀는 내가 마음에 들었다는 표현을 한 것이었다.

번호를 주고받자는 요구 없이 그저 이번 등반 이후 제주 행사에 자신이 참석할 때마다 내가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다는 뜻이었다. 다시 보기를 바란다는 마음을 어쩜 이리 멋있고 세련되게 전할 수 있을까.


전날도 우리는 한 시간가량을 동행했었다.

그녀는 그 길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털어놓았었다. 남편이 백혈병으로 병원에 있다고. 골수 이식이 뜻대로 안 되어 힘든 시간을 견뎌야만 했었다고. 게다가 그 시기에 자신이 발을 다쳐 움직일 수 없게 되어 남편도 자신도 무척 답답했다고.

다행스럽게 그녀의 남편이 기증자를 만나 우리가 대화하던 바로 그날 이식수술을 받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남의 이야기를 전하듯 예사롭게 풀어놓았었다. 놀란 가슴으로 나는 말없이 걷기만 했었다. 내가 그렇다. 위로라는 것을 쉽게 시작하지 못한다. 내가 생각하는 위로가 상대에게 온전히 위로가 될지 확신할 수 없어서…


“남편이 나더러 여행을 갔다 오라고 해서 오게 되었어요. 면회도 안되는데 밖에서 무작정 기다리고 있을 내가 신경 쓰였나 봐요. 다친 발도 나았으니 제주를 꼭 가라고 하더라고요”

아내를 보내는 남편의 마음을 십분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남편의 마음을 받아들여 이곳에 온 그녀도 따뜻한 사람 같았다.

“수술은 잘 될 거예요. 여행에서 돌아가시면 이제 면회도 되고 곧 같이 할 수 있게 될 거예요”

“즐겁게 걷고 멋진 사진 많이 찍어가서 꼭 남편분 보여드리세요”

그녀는 차분한 말투와 상반되게 “그렇겠죠?” 상기된 얼굴이었다.


남편의 수술이 있던 그날 우리는 나무의 상처로 만들어진 멋진 하트문양을 발견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조금 억지스러워 보였을지도 모를 정도로 나와 그녀는 흥분하며 사진을 찍었다. 어디 하트 문양뿐이었을까. 어린 초록잎의 하얀 무늬. 샛노란 버섯, 심지어 가는 줄기에 올라타 있는 달팽이의 멋스러운 색까지. 그녀는 남편에게 하트를 바로 보내주고 싶다고 했고 나는 좋은 징조라고 얼른 보내라며 신나 했었다.




다음날…

다시 마주친 그녀에게 아침인사하며 물었다.

“남편분 답장은 받으셨어요?”

“아직 보지도 않았어요”

수술 후 아직 힘든 상황이라서 그렇지 분명 보시게 되면 정말 기뻐하실 거라 했더니 그녀는 나를 보며 활짝 웃었다.


그 뒤로도 우린 자주 동행했다. 점심 도시락을 나란히 앉아서 먹기도 했고, 가져온 귤과 초콜릿을 나누었으며 자연 화장실을 같이 이용하기도 하면서.

나는 의도적으로 둘만의 휴식자리를 찾아 일행들과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짐을 내려놓기도 했다. 혹 그녀가 남편의 근황을 전하고 싶은데 다른 사람들이 있어 주저할까 봐.

멋진 풍경을 배경으로 그녀의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물론 잊지 않고 한 마디씩 덧붙였고.

“남편분에게 보내세요. 정말 멋진 풍경 보시고 힘내시라고”


나의 서툰 위로에도 그녀가 평안함을 느꼈던 걸까. 그래서 그녀는 나에게 다정한 세레나데를 표현한 것이 아닐까. 낯선 이에게 자신의 현재를 털어놓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나의 위로가 담긴 동행이 그녀의 근심을 잠깐이라도 잊게 했을 수도 있었다는 그 뿌듯함이 여행 내내 나를 치켜세워 주었다.


‘나도 괜찮은 사람이다’

타인에게서 멋진 나를 찾는다는 것이 이렇듯 설레는 것이구나.

매거진의 이전글세계의 주인 (영화 후기)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