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춥다.
계절은 매번 경계를 지우며 들이닥치고 우리는 준비되지 않은 듯 호들갑을 떤다. 분명 겨울에 들어왔는데 나는 이 추위가 예고 없이 찾아온 것처럼 아이들에게 톡을 했다.
‘오늘은 춥단다. 다들 옷 잘 챙겨 입어라’
추위가 싫은 아이는 목도리까지 둘둘 말아 출근할 것이고 더위에만 약한 아이는 적당한 방한을 준비할 것이다. 나의 알림으로 아이들의 옷차림이 결정 나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또 한다.
‘따뜻하게 입어라’
‘길이 얼어서 많이 미끄럽단다. 조심들 해라’
‘조금 일찍 출발해라’
심지어 떨어져 사는 딸아이에게도 ‘운전 조심’을 잔소리하고 있다.
느닷없이 퍼부은 첫눈으로 도시는 마비되다시피 했었다. 펑펑 내리는 눈을 창밖으로 보던 나는 화들짝 놀라 차로 퇴근하는 큰아이에게 전화를 걸어 안전운전을 당부했었다.
그리고 며칠 뒤, 예고된 눈을 미리 걱정하며 나는 주말 내내 날씨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예보와 다른 창밖 풍경을 살피다 문득 창에 비치는 내가 보였다.
‘내가 지금 왜 이러고 있지?’
80의 노모가 60의 아들에게 던지던 길조심 하라는 잔소리(?)가 생각났다.
‘나도 늙었구나’
‘자잘한 잔소리가 점점 많아지는 걸 보니 진짜 노인네 다 되었네’
뭐가 이렇게 걱정스러운 걸까. 못디더 운 건 세상인가 내 자식들인가.
조심한다고 비껴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말이다.
날씨하나 대비 못한다고 세상 무너지는 경험을 할 것도 아닌데 어찌 이리 성가시게 걱정만 남발하고 있는 걸까.
추위를 예상 못해 오들오들 떨었다가 감기라도 걸릴까 봐?
미끄러운 구두 때문에 다치기라도 한다면?
서둘러 나서지 않아서 중요한 약속에 늦어 낭패볼수도 있으니?
내내 엄마로서의 과도한 염려뿐이다.
이러는 자신에 답답한 짜증이 올라와 창밖의 풍경에 눈길을 돌렸다. 뛰어노는 아이들. 웃음소리와 함성소리가 증폭되어 20층 나의 창으로 덮쳐왔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날씨쯤이야 했었는데..’
맞다. 내가 왜 이렇게 걱정만 하고 있는지 알 것 같다.
나는 현재 내 눈높이에서만 세상을 보고 있었다.
혹여 미끄러져서 엉덩이나 발이라도 다치면 큰일이니 조심하자.
요즘 감기는 훨씬 지독하다고 하니 따뜻한 것 마시며 조심하자.
부러진 뼈는 결코 완벽한 처음으로 돌릴 수 없는 내 나이가 매번 걱정의 기준이었던 것이다. 내가 추우면 아이들도 추울 것이고, 내가 두려우면 아이들도 밖이 두려울 것이고, 쇠하는 나의 체력을 따지며 아들에게도 같은 기준을 디밀고 있었다.
나도 20대였던 적이 있었지 않았나.
그땐 어땠었지?
‘그래 그랬었네.’
겨울 멋쟁이는 얼어 죽는다며 짧은 치마에 스타킹 하나만으로 패션을 완성했었네.
‘맞네. 그랬었네’
추위는 문제가 아니라는 듯 칼바람을 맞으며 시내 곳곳을 쏘다녔었네.
‘정말로 그랬었네’
함박눈이 내리는 날이면 약속을 만들어 온종일 눈 속을 헤매다 홀딱 젖어 집에 돌아왔었네’
‘나도 그랬었네’
살얼음길에서 신나게 미끄럼 타며 놀았었네.
‘위험하다고? 좀 그러면 어때서’
부모와 자식. 아니 나와 내 아이들의 삶의 가치 기준은 명백하게 다르다.
인생의 시간과 공간에 퀭한 여유가 많아진 60의 나에게는 자식들의 존재가 점점 깊이 박히고 있는데 반해 세상의 화려하고 역동적인 에너지에 끌리는 아이들에게는 나를 위한 여백이 점점 작아지고 있다.
알아채고 그 차이를 수긍했음에도 싫었나 보다.
조심하라 따뜻하게 입어라. 이런 문자로라도 나에게로 관심을 돌리고 싶었던 것 같다.
‘엄마가 여기 있다고. 단톡방에도, 집에도, 그리고 너희들의 하루에도’
유독 카톡에 문자를 많이 올리는 날은 그렇다. 손가락을 움직이는 순간조차 나의 외로움을 알아채고 있었다.
허전함이 커지면 책도 읽히지가 않고 음악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계획해 놓은 영어과제도 자꾸만 제자리걸음으로 진도를 빼지 못하고 노트북을 열어두고는 한참을 빈 공간 앞에 멍하니 앉아있다.
책도 노트북도 영어교재도 다 덮고 일어선다.
냉장고를 열어 당근을 꺼낸다.
커다란 당근 다섯 개를 씻어 도마 위에 두고 채를 썬다.
위험한 왼손을 조심하며 가는 채를 한참 썰고 나면 칼을 쥔 오른쪽 검지 손가락이 빨갛게 눌려 아프다.
칼을 쓰면 잡생각을 안 하게 되니 좋다. 그렇게 또 당근라페를 두통 가득 만들어 버렸다.
인경혜수!
내가 만든 요리에 너희들이 행복해할 걸 알기에 나는 또 칼을 움직이네.
열심히 살아줘서 고마워.
씩씩하게 웃어줘서 진짜 고마워.
그래도 엄마를 좀 이해해 줘.
잔소리가 심해지면 이렇게 생각해 줘.
‘엄마가 우리를 많이 사랑해서 우리 생각을 하시는구나’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