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억울한 경험이 자산이 되기도 해요.
언젠가 주말 오후에 머리를 단정하게 하고 갈 일이 갑자기 생겼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근처 헤어숍 중 가성비와 리뷰가 괜찮은 곳을 찾아 헤어숍에 들어섰다.
꽤 큰 매장임에도 손님은 한 명도 없었다. 대부분의 헤어숍이 휴일 오후 네 시면 대기하는 손님도
꽤 있는 게 정상인데...
뭔가 서늘한 느낌에 들어서 나가고 싶었지만, 이미 매장에 발을 들인 나를 카운터 뒤에 앉은
주인인 듯한 50대 여자가 쏘아보듯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세요?”
매장에 바퀴벌레가 들어오면 저런 표정을 지을까 싶은 표정으로 주인은 내게 물었다.
“커트요.”
“커트?... 아... 저기 앉아요.”
싸늘한 표정으로 여주인은 앉아서 손가락 하나를 까딱이며 의자를 가리켰다.
정말이지 그냥 나가고 싶었다. 여주인의 얼굴표정에서 순간적이었지만,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을
읽었으니까. 그렇다고 아무 이유 없이 나갈 수도 없어 그냥 앉았다.
“어떻게요?
말하기 싫은데, 억지로 쥐어짜는 말투였다. 늘 요구하던 대로 말했다.
“앞머리는 눈썹 부분까지 깎아주시고, 옆머리는 투블록으로 6mm, 뒷머리는 기를 생각이니까
손가락 한 마디 정도만 깎아주시면 좋겠어요. “
“무슨 요구사항이 이렇게 많아요?”
거기서 ‘네. 죄송합니다.’ 하고 벌떡 일어나 나갔어야 했다. 하지만, 가운까지 두른 상태였기에
내 입에서 나온 말이라는 게...
“그렇죠? 제가 좀 까다롭죠? 죄송합니다.”
“.........”
“안 될까요?”
“.... 알았어요!”
짜증스러운 대답 이후, 여주인의 가위질은 기분 탓이었을까? 거칠다 못해, 난폭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신경질적인 가위질은 내 머리카락이 잘리는 게 아니라, 목이 베어지듯 잘라져 나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뒷머리는 기른다고 하셨나? 이거 미안해서 어떡하지? 그냥 밀었는데...”
정말이지 하나도 미안하지 않은 말투로 담담하면서도 차갑게 여주인은 말했다.
“예?”
“.........”
여주인은 침묵과 함께 커트하던 손길을 멈추고 어디 해 볼 테면 해 봐 라는 것처럼 짝다리를
짓고 손 놓은 채, 거울 속으로 나를 쏘아보고 있는 모습이 거울로 비쳤다.
서늘한 기운이 엉덩이뼈에서 척추를 타고 쭉 머리끝까지 올라와 그 냉기에 잠시 작게 소스라쳤다.
“아... 예. 괜찮습니다.”
“그럼, 깎아요?”
“네.”
머리를 다 깎는데, 10분도 안 걸렸던 것 같고, 체감으로는 5분도 안 걸렸던 것 같다.
샴푸를 하면서는 셔츠의 윗부분이 상당 부분 젖어버릴 정도로 또 강렬한 공포를 느낀 뒤, 수건으로 대강 닦고
머리도 말리지 않은 채, 후다닥 나왔다. 목과 어깨 쪽이 따끔따끔해 설마 하는 마음에 공중화장실에
가서 웃옷을 벗어보니 셔츠의 목 부분에서 머리카락이 꽤 나왔다. 가운을 대충 묶은 탓이었다.
살면서 이런 일도 다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든 기가 막힌 날이었다.
내가 뭣하나 잘못한 거 없는데, 봉변을 당한 날이었다. 무엇보다 화가 나는 것은 두 달 동안 길러서 이제
멋이 막 나려는 뒷머리를 다 밀어버린 것이었다. 거울 볼 때마다, 날아간 뒷머리 때문에 며칠 동안 화가
났다. 머리가 다시 자란 두 달이 되어서야 그날의 일을 잊을 수 있었다.
살다 보면, 이유 없이 억울한 일을 누구나 겪기 마련이다. 많은 사람들이 겪었던 다양한 억울한 일을
들어보면, 내가 당한 것은 억울한 축에도 속하지 않는다. 당장, 뉴스를 봐도 많이 알 수 있다.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데, 이유 없이 시비를 걸고, 폭행하는 일은 너무 흔하다.
그렇다고 치안과 사법체계가 그걸 완벽하게 처벌하게 해주지도 못한다. 그럴 때, 억울함은 배가 된다.
우리네 인생은 우주의 시간으로 보면 찰나의 순간도 못 되는 매우 짧은 삶이다. 나이를 먹고 인생을
안다고 떠드는 인간들은 헛소리를 한다고 봐야 한다.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이 정답에 가깝지 않을까?
인생은 대체적으로 불안정하다. 그렇다고 정의나 선이 이기는 공정한 세상도 아니다. 때로는
불행한 삶의 환경에 갇혀 불행한 삶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인생을 마치기도 한다.
불안정한 삶.. 어쩌면 그게 인생인지도 모른다.
그나마 우리의 불안정한 삶을 보완해 주는 것이 실패의 경험이다.
누군가는 성공은 실패의 수많은 가지에서 맺어지는 열매 같은 것이라고 한다. 수많은 실패의 경험이 성공의
길을 열어주고 그 성공은 어쩌면 잠시일 뿐이다. 또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수많은 실패의 지뢰밭을
지나야 한다. 늘 우리가 뭔가를 시도할 때, 실패는 어쩌다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언제든 벌어지는 일이다.
억울한 일 또한 인생의 길을 겪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는 일종의 실패경험이 아닐까? 실패라는 자산을
잘 이용하면, 내적인 성장의 자양분이 된다. 억울한 일도 잘 받아들이면 실패의 경험처럼 내 인생의
도움이 될 여지가 있지 않을까?
억울한 일이 절대 유쾌한 경험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의도치 않게 맞닥뜨리게 되는 억울한 일을
통해 삶의 어두운 면을 바라볼 수 있다. 그런 경험이 쌓이면서 조금씩 내성이 쌓인다. 그냥 견디는 힘이
아니다. 살다 보면,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하지만 내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억울한 일을 상대에게
만들어 준다는 사실을 나중에는 알게 된다. 억울한 일을 상대에게 주었을 때는 그 악마성에 대해서
자기 스스로 합리화할 수 없기에 그에 대한 반성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내적갈등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런 경험이 쌓일수록 우리는 삶에서 우연히 일어나는 억울함에 대해 관대해지고, 때로는
무심하게 지나칠 힘이 생긴다. 인생이란 변수에는 억울한 일도 항상 발생하는 상수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다양한 억울한 일을 통해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힘이 생기기도 한다.
요즘에 난 커트를 가급적 평일 오전에 한다.
몇 달 전, 주말 오후에 또 다른 헤어숍에 커트를 하러 갔었다. 역시나 대기하는 사람이 많았다.
돈 버는 것도 좋지만, 저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려면 피로감이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예전에 불친절한 커트를 당했던 그날도 마찬가지로 주말 오후였다.
피곤한 하루를 보내고, 오후 늦게 잠시나마 손님이 없어 숨을 돌리려는 순간 내가 나타난 것일까?
그래서 피로감에 짜증이 났을까?라는 상상을 했다.
지칠 때 짜증이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그 여자주인이 내게 보여준 불친절은 납득이
절대 될 수 없었지만..
그 이후로 내 돈 내고 서비스를 받는 것이지만, 서비스를 제공하는 그들도 우리와 같은 노동자이고
일을 하면서 힘들고 짜증 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사람들이 몰리는 주말 오후는
힘들고, 때로는 짜증 나는 게 당연하다.
입장 바꿔서 생각하니, 주말 오후에 헤어숍에서 커트를 하러 가는 것은 최선의 서비스를 받기 부적절한
시간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요즘에는 가급적 평일 오전에 커트하러 간다. 물론, 시간을 내기 쉽지 않기에 월차를
낸 날 오전 중 중요한 일과가 머리 깎으러 가는 일이 되었다. 귀한 월차의 오전 상당 시간을 쓰지만
대체적으로 만족스럽다. 헤어디자이너의 스트레스가 덜 한 평일 오전에 가면, 아무래도 좀 더
세심하게 신경을 써 커트를 해주니, 한 달 동안은 무난한 머리모양을 유지할 수 있다.
헤어디자이너들도 주말 오후에 올 손님이 한 명 줄었으니, 이 정도면 서로에게 좋은 일 아닐까?
억울한 일에 화만 내고 말면, 그대로 화가 되어 혈압만 오를 뿐이다.
때로는 그 상황을 경험의 밑바탕으로 삼는 것이 현명한 대처가 된다.
단골 헤어숍을 만들고, 가는 게 안정하다는 생각이 들 만한데, 타고난 역마살 때문인지 그 후로도
여러 헤어숍을 전전하기도 하다가 불친절한 헤어디자이너를 만나 그리 유쾌하지 못한 경험을 했다.
(물론, 앞서 에피소드에 등장한 몰상식한 인간은 없었다.)
그 이후로 깊이 깨닫고 단골집을 만들고, 그곳에만 간다.
어쩔 수 없이 다른 곳에 갔다가 이상한 낌새를 보이면,
“아! 지갑을 안 가져왔네요!”
라고 말하고 잽싸게 튄다.
억울한 일이든, 실패든 모든 경험은 자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