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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버 Apr 15. 2023

vr을 떠나보내며....

더 이상 뒤집어쓰지 않는 거 없니?

이제 보내주어야 할 때가 온 거 같다.

두 달의 시간은 너무나 강렬했고, 난 그 나날들을 결코 잊지 못할 거 같다. 아쉽기도 하고, 

가슴도 아프지만, 이젠 느낄 수 있다. 여기 까지라는 것을... 

잘 가~ 그동안 함께 있어 주어서 행복했어... 내 헤어질 결심을 이해해 줘... 안녕!     


다음 주에 vr 오큘러스를 팔기로 결심했다.

날 풀리니까 더워서 더 이상 뒤집어쓰지 못하겠다. 게다가 내 방에는 에어컨도 없다. 

4월 초임에도 초여름 날씨를 보였던 지난 어느 주말에 오큘러스를 뒤집어쓰고, 복싱 경기 했다가 온몸이

땀에 흠뻑 젖고 거의 탈진한 뒤, 팔기로 결심했다. 

그동안 즐겁기도 했지만, 이건 아니다 싶다. 첨단 it시대에 머리에 뭔가를 뒤집어쓴다는 것은.....

이젠 끝이다. 다시는 뭔가를 뒤집어쓰는 것은 절대 안 산다!

그럼에도 팔려고 하니 주저하게 되기는 한다. 가상세계라고 하지만, 정말 그 안에 있을 때는 현실 같았다.

탁구 게임을 하면서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탁구대를 짚겠다고 하다가 두 번이나 앞으로 고꾸라지기도 했다.

그렇게 강렬한 매력을 발산했지만, 머리에 뒤집어쓰는 것은 물론이고, 그 육중한 무게 때문에 가뜩이나 낮은

코가 더욱 납작해진 것 같다. 광대뼈는 함몰 초기 증상 같은 고통이 뒤 따르고....

뭔가를 뒤집어쓰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그날이 온다면 그때나 다시 만날까?     


앞서 두 달 동안 경험했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6년 전에 처음 vr기기를 접했다. 

2014년 구글에서 골판지로 만든 카드보드가 나온 이후, 여전히 스마트폰을 끼워 쓰는 기기가 대부분이던

시절이었고, 내가 산 vr기기도 마찬가지였는데, 만 원이 조금 넘는 가격이었다.

초창기 스마폰을 끼워 쓰는 vr은 특이한 현상이 있었다. 화면이 마치 달팽이와 같이 움직임을 포착하기

어려울 정도의 스피드로 화면이 옆으로 서서히 흐른다. 보정하는 장치가 있기는 한데, 그러지 않으면,

화면이 구석에 처 박혀 있는 못 볼 꼴도 보게 된다. 거기에 화면은 마치 모기장을 통해 보는 것처럼

미세한 선들이 신경을 거슬린다. 또 오래 보지도 못한다. 한 20분 보고 나면, 눈알이 빠질 것 같은 

피로감이 밀려온다. 결국, 사다 놓고 열 번도 사용하지 않고 구석에 처박아 놓았다.

무엇보다 뭔가를 뒤집어쓴다는 것이 영 마뜩지 않았다. 머리 모양을 다 망가뜨려 놓으니,

외출계획이 있으면 사용하지 못한다. 결국, 외출 계획이 없는 저녁 시간 이후에나 사용하는데, 

그때쯤 되면, 하루 종일 뭘 했던 피곤할 때다. 피곤함을 이기고 뒤집어쓰고 싶은 마음이 안 들었다.

즐길만한 콘텐츠도 별로 없었으니까. 

그래도... 그래도.. 가상세계가 보여준 놀라운 매력은 좀처럼 기대감을 버리지 않게 만들었다. 

언젠가는 편안하게... 지하철에서도, 누워서도,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도 머리 모양 망가지지 

않으면서 사용할 수 있는 그날이 분명 올 거라는 기대감을 갖고 기다렸다.     


3년 전에, 출시한 오큘러스 기기가 선풍적인 인기를 끈다는 소식을 듣기는 했다. 스마트폰 없이 단독

구동되는데, 그전에 단독구동 되던 제품들이 백만 원이 훌쩍 넘은 것에 비해 오십만 원도 안 되는 

가격은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뭔가를 뒤집어써야 한다는 것이 영 내키지 않았다.

우연히 지인을 통해 탁구 경기를 해 본 뒤, 그 놀라운 현실감에 중고로 덜컥 구매했다. 처음 내가

만 원짜리 vr기기를 구매했을 때와는 달리 콘텐츠도 많아졌고, 화질도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다.

하지만, 사용한 지 한 달이 넘어가자 피로감이 즐거움을 서서히 잠식해 가기 시작했다. 

콘텐츠가 가상세계를 체험하는 형식이 많아, 몸을 많이 움직이는 게 많아 이건 노는 것인지,

노동을 하는 것인지 가끔은 뒤집어쓴 오큘러스를 벗고는 곰곰이 생각하곤 했는데,

뒤집어쓰지만 않는다면, 해 볼 만할 텐데 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저렇게 사용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대중화되지 않을까?


두 달이 지난 뒤, 오큘러스가 왜 이렇게 중고시장에 많이 쏟아져 나오는지 알 수 있었다.

놀라움이 익숙함에서 불편함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은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놀라움에 가려졌던 거추장스러움은 너무나 치명적이다.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나 즐기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vr기기의 사용법은 불친절하다 못해 인내심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더 있다.

vr을 뒤집어쓰는 순간, 현실에서는 시각장애인과 같은 상황에 놓인다. 현실에서는 주변이 보이지 

않는데, 게임에 몰입되어 거침없이 팔을 휘두르다 다치기도 하고, 주변의 물건을 파손도 한다.     


vr은 아직까지 너무 원시적이다. 첨단 it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10년쯤, 지난 뒤 사람들은

저렇게 묵직한 것을 뒤집어쓰고 사용한 사람들의 모습을 영상으로 보면서, 어떤 표정을 지을까?

결국, 안경형태의 현실과 결합된 ar형태의 기기로 발전하면 대중화될 수 있겠지만, 그 발전과정까지

사람들이 기다려 줄지, 혹은 그 안에 vr산업이 3dtv처럼 몰락의 길을 걸을지 모르겠다.     


궁극적으로 안경 형태로 가야 하지 않을까?


vr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한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원인을 말하고 있지만, 직접 사용해 본 사람으로서

결론은 하나다. 뒤집어쓰지만 않으면 충분히 놀라울 정도로 매력적이다. 뒤집어쓰지 않으면, 휴대성, 

공간의 제약, 거추장스러움이 일시에 해결된다. 거기에 더해 안경을 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안경을 쓴 상태에서 뭔가를 다시 뒤집어쓰는 고약함은 정말 그 옛날 유행가 제목처럼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그리 멀지 않은 날, 한때 유행했던 포켓몬고처럼 언제 어디서든

즐길 수 있는 그런 기기가 나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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