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를 이해하는 날이 올까요?
한때, 양극화가 사회적 이슈로 크게 부각된 적이 있었다.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여기는 층이 70퍼센트를 넘던 80년대와 달리 이제는 자신을 하층민으로
여기는 이들이 절반이 넘는다.
폭등하는 부동산 가격과 해가 갈수록 벌어지는 소득의 차이로 인해 중산층으로 조차 이동하기 쉽지
않겠다는 무기력이 절반이 넘은 것은 우리 사회의 희망이 그만큼 잠식되었다는 말이다.
개인만 그런 것이 아니다.
과거에는 중소기업의 근로자 소득이 대기업의 80퍼센트 이상은 넘었다고 한다.
그만큼 중소기업도 대기업 부럽지 않게 돈을 벌었고, 경쟁력도 있었다는 말이다.
지금은 꿈같은 이야기다.
더 이상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발전할 수 있는 여지가 현실에서
불가능하다는 무기력이 확장된 것은 대기업의 갑질도 큰 몫을 한다.
한 때, 대기업의 갑질이 이슈화되었을 때, 그 방법도 많이 알려졌었다.
기술력을 갖은 중소기업이 나타나 대기업에 납품을 하면, 대기업은 중소기업에게 원천기술을
공개하라는 압력을 넣었다. 그 기술을 취득하면, 취득한 기술을 바탕으로 자회사를 만들어
기존의 중소기업에 받던 물량을 끊고, 자회사에서 생산한 제품을 받는다. 기존의 납품 중소기업은
당연히 도태된다.
두 번째는 회계장부 공개이다. 이익을 얼마나 얻었는지, 중소기업의 회계 장부를 회사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탈탈 털어낸다. 이익을 많이 내면, 납품단가를 대기업이
결정하고 후려치듯이 깎아버린다.
근래에 뉴스를 보면, 많이 들어본 갑질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이 자국 내 생산시설을 지으면, 보조금을 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상당한 금액이 투자되어
철회할 수 없을 지경이 된 순간, 미국이 우리나라 대기업에 요구하는 내용은 과거(??)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강요한 내용과 거의 비슷하다.
반도체는 생산공정의 기밀이 모든 기술의 원천이자 핵심이라고 하는데, 그 공정을 모두 공개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생산공정 공개가 없으면 보조금이 없다고 압박을 하고, 미국이 정한 기준의
초과이익을 넘으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들이 모두 가져가겠다고 한다. 설령, 초과이익이
많이 발생해도 반도체 업황의 특성상 호황과 침체가 반복되는 사이클을 보인다는 점에서
호황기의 이익은 침체기를 방어할 수 있는 실탄이 된 다는 점을 생각하면 무리한 요구다.
결국, 긴 안목에서 자신들이 반도체 시장을 장악하기 위한 수단으로 한국기업을 이용하겠다는
모습으로 보인다. 전기차 생산공장을 유치해 놓고, 모든 재료와 부품, 노동자를 자신들의
나라 것을 쓰지 않으면, 한 푼도 보조금을 주지 않겠다고 말한다. 미국에 설립된 한국의
전기차 공장도 결국 반도체 공장처럼 자신들의 이익에 맞게 모든 조건을 셋팅해 놓은 상태다.
결국, 피도 눈물도 없이 한국기업을 유치해 단물만 빼먹고, 나중에는 우리나라 기업도 아니니
나 몰라라 하겠다는 노골적인 압박이다.
미국이 보이는 모습은 대기업들이 약자인 중소기업을 탈탈 터는 방식과 너무나 같은 방식이라면
과장이라고 생각하나? 미국이 우리나라 대기업이 갑질을 할 때, 보이는 모습은 모두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그들의 생존마저 담보로 잡겠다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대기업들은 자신들의 갑질로 중소기업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주 많은 사례를 경험했을 테니,
지금 미국이 요구하는 사항을 무시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에서 회사 앞날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를 예상하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현시점에서 개선책이나 뚜렷한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 다만, 대기업들이 미운 점이 있어도,
대기업이 우리나라 경제에서 차지하는 막중한 역할과 비중을 생각하면, 그동안 자신들의 풍부한
경험을(??) 통해 슬기롭게 헤쳐 나갔으면 하는 게 바람이다. 당장 한국경제가 살아야 하니까..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고 나면, 갑질만 하던 대기업이 혹독하게 처절하게 느낀 역지사지의
경험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 간에 일어난 일이고, 양심적인 사람이라면 달라질 수
있겠지만, 돈을 두고 경쟁하고 자신의 능력을 끊임없이 인정받아야 하는 대기업의 근로자들은
자신이 중소기업에 갑질하는 것을 회사에 능력을 보여주고, 어쩌면 충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큰 변화를 바라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이번 일을 통해 갑질로 인해 해결책이 막히고, 회사의 앞날이
불투명해졌을 때, 암담함을 제대로 느낀 사람이라면, 자신들의 능력을 보이는 방법에서
중소기업에 갑질은 우선순위가 뒤로 물러가지 않을까 라는 인간적인 기대감을 한 번
가져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