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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버 Jun 13. 2023

블랙 라이크미를 읽고...

흑인으로 분장하고 수모를 당한 백인 이야기... 묻혀버린 명작을 찾아서


2009년 경에 나온 작품입니다. 1959년 저자인 백인 그리핀이 흑인으로 직접 분장을 한 뒤,

여러 수모를 겪는 이야기입니다.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을 본인의 경험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낸 작품입니다.

참 좋은 책인데,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까워 리뷰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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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낯설지 않게 마주치는 아시아계 외국인들....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차가운 시선.     

간혹 뉴스기사로까지 나타나는 아시아계 외국인들에 대한 차별적인 태도를 보면     

‘인종차별’이란 문화적 문제가 이제 바다 건너 멀리 외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심지어 화이트칼라 직업군에 속하지만 단지 아시아계 외국인들에 대한 우리들의 차별적인     

인식 때문에 인도인 교수가 치욕적인 인종차별을 겪은 일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적도 있다.

(인도인 교수가 얼굴이 까맣다는 이유 하나로 버스 승객에게 인종차별적 언어폭행을 당했고,

 가해자를 경찰에 고발했지만, 역시나 무시당했다. 국내인이 인도인을 인종차별한 2009년에 

일어난 유명한 사건이다.)     

세계는 글로벌화되면서 우리나라도 이제 단일민족이라는 환상에 대한 집착도 진작에 버린 마당에 

이제 인종차별 문제라는 문화적 숙제가 우리 앞에 놓여있다.

역사는 현재를 보는 거울이라고 했다. 

우리 역사 속에 인종차별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으나,  바다 건너 미국에서의 수많은 경험과 착오, 

지금도 그에 관한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미국의 경험은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블랙라이크미‘는 한 백인이 흑인으로 분장을 한 뒤, 흑인의 경험을 통해 느낀 인간적인 모멸감을

백인의 목소리를 통해 1959년 당시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 분위기를 보여준다.

책은 미국 사회 속에서 인종차별이 생활 속에서 어떻게 일어나고, 백인들과     

흑인들의 의식까지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어 인종차별의 근원적 문제를 생각하게 만든다. 

         

인종차별은 편견에 기반에서 발생하는데, 편견은 무의식 속에서 서서히 자리 잡는 일종의 무의식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성적이지 못하고 감성적, 감정적이기에 위험하다.     

인종차별문제는 이런 감정에 기반해서 뿌리 깊은 역사를 갖고 미국의 주류인 백인들의 의식 속에 

자리 잡았기에 유색인종에 대해 차별 의식은 폭력적인 성향을 띠고 있다.

백인에서 흑인으로 변장한 그리핀이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눈길 한 번 마주치는 행위     

때문에 무시당하고, 천대받는 장면들이 그렇다.     

주인공 그리핀은 흑인으로 변장한 후에도 자신의 이름이나 신상에 대해서 전혀 변화를     

주지 않았다.     

단지, 피부색만 바뀌었는데도 백인들은 그가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역겨워하고 분노를 표출하기도 한다.     

그리핀은 이에 크게 당황하고, 사태의 심각한 현실을 깨닫는다.     

흑인과 백인들은 미국 속에서 부대끼면서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서 어느 정도 잘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이 미국에서 발간된 후 일어난 여러 논쟁과 충격등의 반응을 생각해 보면 그들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겉으로 입으로는 인종차별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하면서도 흑인 앞에선 인상을     

찌푸리고, 그들과 함께하는 것조차 싫어하는 의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누군가 인종차별이란     

뉘앙스의 단어만 내비쳐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이중적인 태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런 의식 속에서 문제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하는 이가 많지 않았을 것이고, 인종차별의     

편견은 시간이 흐르면서 보수로 굳어져가고, 점차 돌처럼 깨지지 않을 수구의 모습으로     

자리 잡았을 것이다. 남북전쟁 이후 자신들은 이젠 인종차별 따위는 안 한다고 하지만,  미국 

사회곳곳은 여전히 흑인들에겐 지옥 같은 곳이었다.

다만, 법적인 여러 장치로 차별을 금지하지만, 버스를 타는 과정에서도 흑인과 백인의 자리를     

나누고 백인을 위해서 자리를 양보하고 흑인들만 휴게소에서 화장실도 못 가게 하는 사건들이     

일상처럼 일어났다.     

주인공 그리핀이 흑인체험을 마치는 계기가 이성적으로 어느 정도 정보를 얻었다고 판단해서,     

멈춘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흑인으로서 받는 모멸감과     

치욕을 견뎌내지 못하고 분노에 차서 예정보다 빠르게 흑인체험을 마무리한다.    

언젠가는 다시 백인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더 이상 잠시도 참을 수 없다는 것은 1959년

당시에 흑인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냉혹했는지 짐작할만하다.


이 책이 발간된 지, 약 60년이 지난 지금의 인종편견에 대한 의식 수준은 과거와 다르다.  

여러 제도적 장치들이 인종차별을 완화한 것이 효과를 발휘한 것일까? 얼마 전에는 

흑인 대통령도 배출했다. 그렇다고 인종차별이 없어졌냐고 하면 의문이다. 

2020년에 개봉했던 '투 디스턴트 스트레인저스'라는 영화를 보면, 여전히 백인경찰들은

흑인에 대해 인종차별적인 태도를 버리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비록, 픽션이라고

해도 현실에 기반하지 않은 픽션이 있을까? 겉모습은 근사하게 개과천선 했지만, 여전히

속내는 과거와 다를 것이 없는지 모른다. 그만큼 한 번 인이 박힌 생각과 의식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 심각성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인종차별에 반대한다는 일부의 백인들이 보인 가식적인

우호적인 태도에서 역설적으로 드러난다.

그리핀이 만난 사람들 중 인종차별문제의 심각성을 자각하고 개선하려고 행동으로 옮기려는 

사람들을  다수 만난다.

흑인이 파는 칠면조를 동정하듯이 모두 사주겠다는 술 취한 백인은 자신의 행동이 흑인을     

위함을 과시하지만, 이런 배려가 흑인들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불편하다.     

흑인들이 원하는 것은 동정이나 배려가 아니기 때문이다.     

흑인들이 힘들어하는 것은 그들을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지 않는 편견으로 겪는 고충이다.     

흑인들이 바라는 것은 동정심, 배려가 아니라 동등한 기회, 동등한 경쟁을 원하지만, 흑인들을 위한다는 백인들조차 흑인보다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내가 도와주니까 고맙지!’ 하는 과시욕에만 젖어있다.          

인종차별문제에 전향적인 지식인 백인사회의 의식에서도 폭력을 가하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있을 뿐,

흑인을 동등한 인간으로 여기지 않는 생각은 별 차이가 없는 것일까?


그리핀이 책을 출간한 후, 유명인사가 되어서 강연 후 자신에게 쏟아지는 질문들이 사실은 그     

지역사회에 거주하는 흑인들에게 물어봐야 더 나은 해결책이 나올 수 있음에도 백인들은     

백인인 그리핀에게 해결책을 찾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언제나 백인은 흑인보다 우월하고 베푼다는 의식에서 나온 행동이라고 생각하면, 저 이상한

행동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해가 된다.

대학 내에서 흑인문제를 다룬 모임이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룬 후, 흑인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자신들이 주체적으로 맞서기 위해서 흑인들만으로 구성하겠다고 하자 백인들이 반발하는     

모습.  흑인대학교에서 백인강사에게 역시, 흑인들 주체적으로 문제를 접근하기 위해 흑인강사로 

대체하려고 하자 이에 반발하는 모습.     

이 두 가지 사례에서 흑인들 스스로 주체적으로 이 사회구성원으로서 무엇인가를     

스스로 하려는 것에 대해 반발하는 태도는 역시나 흑인을 백인과 같은 인격체로 생각하는 가에

대해 강한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그 사회는 자신만의 문화를 갖기 마련이지만, 인종차별에서 보듯이     

왜곡된 집단의식이 공공연히 형성되고,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해도 그 생각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자신의 뇌 속에 잘못된 편견을 버리기란 오랜 기간 동안 사회에서 형성된 보편적인 기준을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의 각오가 필요해서 사실상 쉽지 않다.     

하지만, 개개인의 사소한 만남이 지속되면 그 사람의 첫인상과 편견은 모두 변하기 마련이다.     

그 사람 자체를 정확히 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행하는 인종차별은 그래서 정당하지 않다. 겉모습에서 모든 판단을 단정적으로 내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미 많은 외국인들이 들어와 있다. 특히, 우리는 동남아에서 온 사람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겉모습과 그들의 특유의 억양으로 자기 나라 말을 하면, 아무렇지 않게 

"동남아 애들은 말이야..."

라는 말을 하는 아저씨들을 종종 본다. 우리의 국력이 높아졌다고 동남아 사람들을

얕잡아 볼 자격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백인이 흑인을 차별하는 것은 역사적인 맥락이나 한 데 어울려

살다 보니 생기는 문제일 수도 있지만, 우리와 동남아는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누구를 깔보고 말고

할 것이 없다. 괜한 우월감 따위는 버려야 한다. 그런 우월감에 취해서 누군가를 무시한다면,

자신이 얼마나 추악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지 모르는 것이다. 이 책에서 흑인을 함부로

대하는 백인들이 추잡하게 보였던 것처럼 말이다.


'black like me'... 나처럼 검은 저 사람이라는 이 문장이 결국 우리 모두가 같은 인간이고 소중한     

인격체가 인데, 한낱 피부색 하나만으로 차등을 둔다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를 생각해 본다.

선진국에 들어섰다고,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사람들을 얕잡아 보는 풍토가 심화되는 시기에 

이런 책이 다시 한번 주목받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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