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혀버린 명작을 찾아서.. 비겁한 힘이 뒤틀린 권력을 갖기 위한 조건은?
2008년 문학수첩 작가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시골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가독성도 좋고, 비겁한 힘이 뒤틀린 권력이 되어 가는 과정을 아주 잘 그려냈지만, 작품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찾아서 다시 읽고, 리뷰해 봅니다. 참고로 2018년에 새롭게 디자인된 표지로
다시 출간된 것으로 보아 새로운 판으로 나온 것 같습니다.
영화는 아니지만, 아래 글에는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음을 주의해 주세요.
-------------------------------------------------------------------------------------------
권력의 속성은 타인을 복종,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를 말한다.
주로 정부의 힘을 권력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인간사회에 다양한 관계 속에서 개인들 간에 갑을 관계가
고착화되면, 권력이라고 할 만한 무언가의 힘이 개인에게 생겨 다른 이를 복종, 지배하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 장달자가 자기보다 나이가 두 살이나 많은 김금송을 소처럼 부리며 밭을 가는 것처럼 개인
간에는 가스라이팅을 통해 갑질을 넘어선 권력자처럼 군림하는 경우도 있다.
공인되지 않은 힘이 타인을 지배하는 과정은 정당성이 훼손되고, 뒤틀리기 마련이다.
자신이 인정하지 않는 권력에 자발적으로 복종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강한 자가 누군가를
굴복시키는 대상은 약자이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약자의 가장 약한 부분을 공격한다. 집요할 정도로.
연쇄 살인을 저지르는 사이코패스의 범죄 대상이 여성이고 안전에 취약한 시간과 장소에서 벌어지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부녀회장 장달자와 박도옥은 공인되지 않는 힘을 바탕으로 마을에서 권력을 휘두른다.
그 힘을 얻는 과정은 앞서 언급했듯이 약자를 상대로 철저히 약한 부분을 집중 공략한다.
처음 만난, 슈퍼마켓에서 별 것도 아닌 트집을 잡으면서 간을 보기 시작한 장달자가 김금송이
만만하다고 생각하자, 약한 부분을 집요하게 공격하여 굴복시킨 뒤, 장달자가 시키면 소처럼 쟁기를 끌
수 있게 만들어 버리고 지배한다.
마을 사람들은 뒷담화로 장달자와 박도옥을 끊임없이 욕을 한다. 하지만, 정작 비판을 해야 할 때는
뒤로 물러선다. 이유는 단 한 가지. 괜히 소란스럽게 만들어 동네 시끄럽게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두려운 것이 아니지 않느냐는 논리지만, 이런 동네사람들의 방관적인 태도는
장달자와 박도옥이 동네에서 공인되지 않은 권력을 행사하는 자양분이 된다. 마을 사람들의 방관 아래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장달자와 박도옥을 마을 사람들은 점차 두려워하기 시작하고, 아무런 잡음도
생기지 않길 바라는 공무원들도 장달자와 박도옥을 두려워하며 두 노인의 잘못된 행동을 결과적으로
부채질하는 셈이 된다.
오만해진 장달자와 박도옥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이 자신의 통제 밖에서 일어나는 것을 참지 못한다.
새로운 보건진료소가 세워지자, 시골 마을 사람들과 달리 고등교육을 받은 주인공인 보건소장을
통제하고 근사한 보건진료소도 자신의 통제 안에 넣고 싶은 욕구를 참지 못한다. 자신들의 힘이
그만큼 커졌고, 그 힘이 적어도 마을 안에서는 닿지 못할 곳이 없다는 오만이 두 노인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순간, 누가 보기에도 약하지 않고, 만만치 않아 보이는 주인공인 보건진료소장이 두 노인의 목표물이 된다.
이번에는 진료소장이 공무원이라는 직업 특성상 민원에 대해 대단히 취약한 점을 집요하게 잡고 늘어진다.
수시로 상급 기관에 민원을 넣고, 군수, 시장을 상대로도 민원을 넣어 진료소장에서 잘라 버리겠다는 협박을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닌다. 그러자, 공무원 간부들의 하급기관 진료소장을 압박한다.
공무원들의 앞 뒤 가리지 않고, 무사안일의 태도는 장달자와 박도옥이 진료소장을 뒤흔드는 힘의 자양분이
되고, 거기에 더해 마을 사람들의 방관적인 태도와 나중에는 두 노인네에게 협조하는 듯한 행동은
두 노인네가 더욱 기고만장하게 만든다.
결국, 주인공인 진료소장은 다른 곳을 쫓겨나듯이 전출을 당하고 만다.
뉴스에서 보는 공인된 권력이나 그렇지 않은 권력이 벌이는 뒤틀린 태도로 권력을 행사하는 힘의 원천을
시골 마을의 우화를 통해서 보는 느낌이라고 할까? 시골 마을의 고약한 할멈 둘이 진상을 부리며 힘을
더해 가며 권력에 가까운 힘을 얻는 과정이 세밀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설득력 있게 묘사되었다.
거기에 더해 마을 사람들의 방관적인 태도와 공무원들의 태도에서 우리 사회에 언론의 역할도 생각해 보게
만든다. 2008년에 발표되었던 이 작품을 당시 ‘tv책을 말하다’에서 어느 패널이
‘전원일기에서 시작해서 미저리로 끝나는 작품이다.’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어 찾아서 재미있게 읽었었다.
작품이 출간된 지, 15년이 지났지만 우연한 기회에 다시 읽은 ‘아웃’이 주는 권력과 언론에 대한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한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