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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버 Oct 21. 2023

도둑맞은 집중력을 읽고

내 삶은 어디로 갔나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난 집에서 무척 바쁜 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회사에서는 한 가지 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내가 내 방에서는 무려 멀티태스킹이라는 짓을 하고 있다.

그것도 무려 세 가지 기기를 동시에 다룬다. 한 가지도 제대로 못하는 내가 세 가지를 동시에 하고 있으니,

그 부작용은 말도 못 한다. 피곤한 것은 물론이고, 뭣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


tv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를 즐겨보면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을 받아 자주 시청하는데, 이때도

난 쓸데없이 바쁘다. 프로그램이 시작되면 처음에는 집중하지만, 몇 분이 지나면

괜히 심심하고 그 심심함은 불안함 비슷한 것으로 바뀌어 이내 컴퓨터 전원을 넣고, 이내 지금 방송으로 

보는 자연인이 사는 곳으로 추정되는 곳을 검색하다가 자연인으로 살 수 있는 매물로 나온 임야의 

시세를 검색한다. 자연인으로 살 생각도 없으면서, 역시나 내일이라도 당장 이사 갈 것처럼 이사비용까지 

모든 비용을 검색한다. 중간중간 스마트폰으로 오는 쓸데없는 메시지와 카톡이 오면 잽싸게 확인한다. 

회사에서 그렇게 민첩하게 일을 했으면 칭찬이라도 받았을 텐데..

정신없이 tv와 모니터, 스마트폰을 오고 가는 사이에 '나는 자연인이다'가 끝이 난 것을 모르고 

매우 심각하게 임야시세를 계속 확인한다. tv에서 광고가 나오는 소리에 '나는 자연인이다'가 끝난 

것을 알고 아쉬워하면서 채널을 프로야구 하이라이트로 돌린다. 

어쨌든 나는 '나는 자연인이다'를 꼭 봐야 하니까, 인터넷으로 재방송 편성표를 검색한다.

편성표를 검색하다가 다시 엉뚱한 인터넷의 바다에서 헤매는 것은 당연하고, 역시나 프로야구 

하이라이트는 아나운서가 소리를 지를 때만 잠깐잠깐 시선을 주고, 아무 의미 없는 검색창만 모니터에

둥둥 떠있다. 자연인도 야구도, 검색도 뭣 하나 제대로 하거나 의미 있는 일 없이 시간은 자정을 넘어간다.


온전히 휴식과 재충전에 써야 할 그 시간에 아무 의미 없는 동영상, 검색으로 낭비하는 일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자정을 넘어 새벽까지 그 짓을 하다 보면 의자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깨고는 그제야 

잠자리에 들어선다. 가관인 것은 잠자리에 누워서 얌전히 자빠져 자지 않고,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아까 했던 짓을 다시 반복한다. 그렇게 스마트폰을 쥔 채, 늦은 새벽에 잠이 들어 피곤한 아침을 

맞이한다. 다음날이 되면 켜 놓은 tv로 봤던 야구경기 결과도 모르고,  내가 뭘 검색했는지도 크게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피곤함을 느끼지만, 나이가 든 탓으로 치부하고 검색에서 얻은 것이 없는 것은

나의 산만함과 게으름 탓이라 여긴다. 부모님이 어려서 내게 종종 했던 말이니 부정은 못한다.

이런 날들이 영화 '사랑의 블랙홀'처럼 매일매일 반복되지만, 난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한다.

내 생활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려는 순간, 내 손안에 든 스마트폰이 끊임없이 차분하게 생각하고

정리할 틈을 주지 않고 나를 의도치 않은 세상으로 자꾸만 이끈다.


요즘은 글을 쓰는 것이 어렵다. 우선 글의 소재가 잘 떠오르지 않으니 시작부터 막힌다.

예전에는 어떤 소재로든 글을 쓰려고 마음만 먹으면 두 시간 이내에 뚝딱하고 완성할 자신이 있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물론, 잘 쓴 글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글의 소재를 어떻게 풀어야 할 지에 대해서 

생각을 집중할 힘이 충분했었다.  글의 소재에 대해 다양한 측면에서 생각하고 그것을 입체화시키면

나만의 독특한 글을 쓸 수가 있었다. 그렇기 위해서는 집중력이 필수인데, 어느 순간부터 그 집중력을

잃어버렸다. 스마트폰이 내 옆에 없으면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던 몇 년 전부터....


사고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독서가 필수이다. 지금도 독서는 하고 있다. 다만,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책을 읽고 난 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을 때리는 수준의 사색의 시간이 필요하다. 제일 좋은

방법은 산책을 하는 것이었다. 여전히 독서처럼 산책도 한다. 하지만, 산책을 하면서 난 사색의

시간을 전혀 갖지 않고 있다. 산책을 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스마트폰은 내가 얻은 지식을 차분히 

정리할 틈을 주지 않는다. 산책을 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뭔가를 듣다가 괜히 

이것저것 걸으면서 검색도 한다. 

산책을 할 때조차, 생각을 할 틈조차 없을 만큼 난 바쁜 놈이다.

잠이라도 충분히 자면, 자는 동안 뇌가 나의 부산한 활동을 정리할 틈을 줄텐데, 잠마저 부족하니, 

사고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도둑맞은 집중력'을 보고 난 뒤, 집에서 내가 왜 그렇게 분주하고, 예전처럼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이 인터넷과 스마트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내가 달라졌냐고?

전혀 달라지지 않고 난 여전히 쓸데없이 분주하고 회사에서 보다도 더 바쁜 나날들을 퇴근 후,

내 방에서 보내고 있다. 나만, 그런 것일까? 아닐 거다. 나처럼 산만하고 게으른 중독에 취약한

인간형 군집이 있을 것이고, 이런 유형의 인간들은 특히나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돌아봐야 할 것이다.

난 중독 따위는 안 된다고 자신하는 이들도 방심하면 안 될 것이다.

'도둑맞은 집중력'의 저자도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없는 세상으로 떠나서 심각성과 반성을 하며

변한 듯했지만, 다시 예전처럼 스마트폰과 인터넷에 중독된 삶으로 돌아가지 않았는가?


스마트폰이 우리 삶을 행복하게 만들었을까요? 아니면, 삶을 갉아먹고 있을까요?


우리는 첨단 기기를 통해 첨단 시대의 문명을 누리며 산다고 생각하지만, 그 대가로 우리의 시간, 

집중력, 잠을 담보로 잡히고 있다는 사실은 인지 못하고 있다. 이제라도 인지하고 탈출구를 찾아야 할 때다.

물론, 지금의 문제를 인지한다고 해도 탈출하기는 쉽지 않다. 저자가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없는 곳으로 떠나서 문제점을 인지하고 난 뒤에도, 다시 집에 돌아와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중독된 삶으로 완벽히 돌아온 것처럼. 우리는 이미 빠져나온기 힘든 너무나 큰 수렁에

빠져있다. 지금이라도 그 사실을 인지하고, 스마트폰과 인터넷에서 멀리하려는 노력을 할 때,

테크기업의 상업적 의도에 따라 움직이는 무의미한 기계과 같은 삶을 정리할 작은 틈이라도

만들 여지가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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