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공포영화 같은 일이 내게도?
이십 대 후반에 새로 취업한 직장의 바로 윗 상사는 나보다 두 살이 어린 과장이었다.
어린 나이에 과장이 된 것은 낙하산이었는데, 회사의 실세가 뒤를 봐준다는 소문이 돌았었다.
그 소문이 사실인지 어린 과장은 소위 말하는 싸가지가 없어, 나보다 나이 든
사람들도 그 어린 과장 앞에서는 주눅이 들기 마련이었고, 그런 모습을 보고 신이 난 것인지 어린 과장은
더욱 기고만장했다.
소심한 나도 그 앞에서는 사실, 기를 펴지 못하고, 무례한 모습을 보여도 그냥 참고 말았다.
심지어 전라도 사투리를 썼던 그 어린 과장은 사투리를 빙자해 반말 비슷한 말투로 나이 든
사람들에게 말을 종종 놓기까지 했다. 그래도, 다들 참았던 것은 회사 분위기가 워낙 수직적이었으니까.
소위 말해서 계급이 깡패인 분위기가 지배하던 회사였다. 하지만, 사회였기에 나이 든 사람에게 함부로
하는 인간은 그 인간 밖에 없었다.
갈수록 기고만장해지는 어린 과장과 1년의 시간을 보내다, 회식자리에서 어린 과장은 술에 취해
사원들의 업무태도를 지적하더니, 정시 출근 시간인 8시 보다 1시간 더 앞선 7시까지 출근하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그 말도 안 되는 말에 아무도 토를 달지 않고 침묵이 흘렀다. 내일부터 당장 7시까지 출근하는
것으로 될 것 같은 분위기였고, 역시나 술에 취했던 나는 그 꼴을 보자 화가 치밀었다.
"아니, 이 사람이 지금 뭐라는 거야!"
"이 사람이라니? 무슨 말을 그 따위로..."
평소에는 늘 과장님이라고 불렀으니, 놀랐겠지.
"이 사람아! 당신은 위아래도 없어? 그리고, 당신이 뭔데, 출근 시간을 1시간이나 일찍
나오라는 거야!"
"뭐라고!"
남의 식당에서 더 이상 소란을 피울 수는 없었기에 소주를 글라스 잔에 하나 가득 부어서 원샷하고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친 뒤, 혼자서 나왔다.
집에 가면서 다른 직장 알아봐야겠다는 생각 밖에 안 들었다.
다음날, 잘릴 거 각오하고 나갔기에, 과장을 보고 인사도, 사과도 하지 않은 채 외면했다.
과장도 나를 보자 모른 척했다.
그 이후로 잘리지도 않았고, 과장은 내게 말을 걸거나 업무 지시를 할 때면, 정말이지 꼬박꼬박 존댓말로
정중하게 말했다. 물론, 퇴사할 때까지 불편한 사이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부당한 대우를 받지도 않았고,
오히려 귀찮게 하지 않아 편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처음으로 가끔은 부당함에도 당당히 맞서야 한다는 사실을 사회에서 처음 깨달았다
몇 주 전에 도서관에 갔다가 이상한 아재 옆에 앉게 되었다.
빈자리가 생겨 얼른 자리를 잡았는데, 자리에 앉자마자 60대 중반으로 보이는 아재가 나무로 만든
지압봉 같은 것으로 탁자바닥에 '딱딱' 소리 나게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고는 뭔가를 중얼중얼
거리고는 팔짱을 끼는 자세를 취했다 풀었다 하며 탁자에 대고 팔꿈치로 쿵쿵 소리를 냈다.
뭐 하는 짓인가 싶어 가만히 보고 있자니, 이건 자기 옆자리에 앉지 말라는 명백한 경고음이었다.
가만히 그 아재를 보니, 몇 달 전에도 옆자리에 앉으려 하니 각 종 소음을 내며, '난 매우 시끄러운
놈이다'라고 시위하듯 소음을 내던 그 인간이었다.
그때는 이상한 사람임을 직감한 나는 얼른 짐 싸서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오늘은 몇 달 전보다 더 심한 소리를 내는 것을 보니, 여태껏 저런 식으로 자기 옆자리에 아무도 앉지
못하게 한 모양이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그날은 내가 정신이 나갔었는지 자리에 앉은 뒤에,
가방에서 꺼낸 책들을 쿵쿵 내려놓고, 헝겊으로 된 필통은 집어던지다시피 내려놓자
아재는 내가 내는 소음이 불쾌하드는 듯이 옆에서 날카롭게 흘겨보는 느낌이 들었지만, 난
개의치 않고 계속 쿵쿵거리며 꺼내 놓은 책을 정리했다.
아재는 내가 아주 이상한 놈이라고 느꼈는지, 그 이상한 소음을 모두 멈추었다.
나도 거기에서 멈추었다. 물론, 그 아재를 위한 것은 아니고, 아재 반대편, 내 옆에 앉은 학생에게 미안했기
때문이었다. 아재는 조금은 조용해졌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멈춘 것은 아니었다.
조금씩 조금씩 팔꿈치와 중얼중얼, 그 외에도 여러 잡소리의 데시벨을 올리더니, 마치 복수라도 하려는 듯,
내 쪽을 향해 노려보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그냥 무시하려 했으나, 너무 오랫동안 쳐다보기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도발적으로 몸을 돌려 정면으로
아재를 내려다보았다. 역시나, 인상을 무진장 구긴 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무 표정 없이 시선을
피하지 않고, 아재를 한참 동안 내려다보니, 시선을 피한 아재는 그제야 조용해졌다. 그렇다고 완전히 조용한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팔꿈치로 작지만 쿵쿵, 중얼중얼....
다만, 더 이상 나를 쳐다보지는 않는 것에서 내게 위협은 사라진 듯싶었다.
사실, 의도치 않은 기선제압을 한 셈이지만, 불편한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불편한 마음은
불쾌감으로 변하여 집중력을 현저히 방해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 아재가 행여나 나중에라도 내게
해코지를 할까 봐 불안했던 것 같다.
특히나, 중얼중얼 거리는 모습에서 불안감이 더 했던 것 같다. 게다가 도서관에는 뚜렷한 목적으로
온 것 같지도 않았다. 멍하니 있다가 노트북으로 인터넷을 보고,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여러 개의
낡은 쇼핑가방들. 자세히 들여다볼 수는 없었지만, 이상한 사람임은 분명했다.
뒤늦게 그런 점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감당하지 못할 불안에 나 스스로 노출시킨 뒤, 나 자신을 탓하기
싫어 그 아재를 몹쓸 놈이라고 속으로 욕하면서 불안감을 더욱 키웠던 셈이다.
지금에 와서 겁이 많은 내가 그날은 왜 그렇게 감당하지 못할 도발적인 행동을 했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이상한 날이었다. 세상에 이상한 사람은 많고, 세상은 불완전함으로 가득하다. 거기에서 감당하지 못할
불안은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날 일로 인해 난 이상한 사람과 안면을 텄으니, 그 도서관에 가면
그전에는 없던 괜한 불안이 상시로 존재하게 된 셈이다.
그리고, 그 불안은 다시 현실로 드러났다.
약 2주 뒤에 그 도서관에서 다시 그 이상한 아재를 만났다. 자료실 입구 쪽, 의자에 앉아 있던 그 아재는
자료실을 들어가던 나를 발견하고 계속 쳐다봤다. 노골적으로 노려보는 것은 아니지만, 두꺼비처럼
몸을 잔뜩 웅크리고 치켜뜬 두 눈은 공포심과 적개심이 뒤섞여 몹쓸 상상을 하게 만드는 불길한 눈빛이었다. 그 뒤로도 아재는 10권 넘게 쌓아 놓은 책은 보지도 않는지, 내가 화장실이라도 다녀오며 자료실 입구를 지날 때면 그 불길한 눈빛을 치켜뜨고 쳐다보았다.
그 뒤로 그 도서관에는 발을 끊었다.
그 이상한 아재의 눈빛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행여나 손이라도 흔들면서 아는 척이라도
한다면..... 너무 끔찍해서 이런 상상을 한 게 후회가 될 지경이다.
앞서 어린 과장은 매일 마주치기에 참을 수 없는 부당함에 맞섰던 것은 다소 무모했지만, 옳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지 않으면, 계속되는 부당함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늪처럼 계속 빠져들게 될 테니까.
하지만, 도서관에서 만난 그 아재 같은 불특정 한 사람과 괜한 갈등을 만든 것은 정말 하지 말았어야
할 쓸데없는 짓이었다.
불특정 다수에서 툭 튀어나온 이상한 사람은 누군지 알기도 어렵고, 예측도 불가능하다.
알 수 없는 불안의 영역으로 나를 집어넣은 셈이다.
영화 '언힌지드'에서 경적 한 번 울렸다고 주인공을 사지로 모는 영화가 그저 상상력으로만
만들어졌을까? 세상은 알 수 없는 거다.
알 수 없는 영역에서 벌어지는 불안은 피해야 한다.
내 인생을 괜히 공포영화 속으로 집어넣을 필요는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