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극을 꿈꾸는 아이들을 위해

상상력이 가득한 그들의 삶을 응원하며

by 리버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자전거나 수동킥보드를 탄 아이를 지나치거나 추월할 경우 절반 이상의 확률로

쫓아온다. 특히, 추월을 당했을 경우 90퍼센트 이상이 미친 듯이 쫓아온다.

(아마도 나머지 10퍼센트의 경우 피치 못 할 사정 때문이라고 난 확신한다.)

아이가 나를 추격한다는 사실은 금방 눈치챌 수 있다. 평소와 달리 뒤에서 "덜컥, 덜컥"

혹은 "삐거덕, 삐거덕" 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면, 나를 잡기 위해 어떤 아이가

죽어라 페달을 밟고 있어, 아이의 자전거가 죽겠다고 아우성치고 있는 거다.


기분이 괜찮은 날은 경쟁해 주는 척하다가 슬쩍 져 주기도 하지만, 기분이 별로여서

녀석이 건방지다고 생각한 날에는 있는 힘껏 페달을 밟아 근처에도 쫓아오지 못하게 저 멀리 내 빼버린다.

하지만, 사실 대부분은 쫓아오든 말든 신경을 안 쓰려고 하는 편인데, 아이들이라

약간만 속도를 내서 달려도 쫓아오기 버거워한다.

이때가 가장 위험하다.

난 힘을 약 50퍼센트만 쓰고 있지만, 아이들은 죽을힘을 다해 달리기에 안전에

신경을 전혀 쓰지 못하고 앞만 보고 달리기 때문이다. 귀찮지만, 어쩔 수 없이 속도를 확 줄여서

녀석이 먼저 앞서 가도록 하면, 이겼다고 생각해서인지 뒤를 슬쩍 돌아보며 나를 보는 녀석들의

얼굴엔 승리감이 가득하기 마련이었다. 언젠가 한 번은 그렇게 승리를 양보했더니, 가운데

손가락을 쭈욱 올린 뒤, 뒤 돌아 나를 보더니 급하게 사라지려 했다. 너무 황당하면서 화가 나

온 힘을 다해 페달을 밟아 멀지 않은 거리에서 녀석을 잡았다. 잡고 나서보니 순하기 짝이 없는

녀석이었다. 영화 속 주인공의 멋진 장면을 흉내 내고 싶었다고 하며, 잔뜩 겁먹었길래

기가 막혀 웃고 말았다.


s7300081-kpakm.jpg 이런 작은 자전거를 타고 다녀서 만만하게 보는 걸까?


며칠 전에는 수동킥보드로 미친 듯이 나를 추격하는 아이가 있었다.

'이젠 별게 다 나를 따라잡겠다고 난리네!'

사실, 20인치의 작은 자전거에 가끔은 할아버지들이 나를 추월해서 갈 정도로 난 천천히 자전거를

타고 다녔기에, 아이들이 보기에 만만해 보여 종종 내게 도전장을 내민 모양이었다.

슬쩍 뒤 돌아보니, 자전거는 비할 바가 못 될 정도로 너무 위험하게 폭풍질주를 하고 있었다.

순간, 짜증이 확 밀려들었지만 어쩌겠는가?

속도를 확 줄였더니, 나를 추월한 아이는 앞서 가다가 뒤를 슬쩍 돌아보고는 해맑게 웃은 뒤,

사라지는 모습을 보니 녀석이 밉지는 않았다. 해맑은 웃음에서 녀석이 그 순간을 얼마나

즐거워하는지가 너무 잘 보였기 때문이다.

그 순간, 나를 추격해서 이기려 했던 아이들이 그 순간순간을 얼마나 즐겼는지 깨달았다.

심지어, 가운데 손가락을 올렸던 아이도 녀석의 방식으로 그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는 것을..

(물론, 방향은 잘못되었으니, 내가 따끔하게 혼을 냈어야 했는데...)




구름.jpg 이런 구름이라면 상상력을 갖지 않을 수 없을 듯...


어릴 때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을 한 없이 바라보던 적이 많았다.

솜사탕을 닮은 구름을 본 기억이 난다. 구름이 흘러가며 솜사탕 모양의 구름이 조금씩 찢어지는

모습을 보며,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이 누가 착하게 살고, 못되게 사는지 내려보고 있다가

심심해서 솜사탕 같은 구름을 하나씩 찢어먹는 것은 아닐까라고 상상했다.

그러면, 엄마 말 듣지 않고 불량식품 몰래 사 먹은 게 생각나 후회하다가도 구름 모양이 더 이상

변하지 않는 것을 보고는, 하나님이 바쁘셔서 다른 곳으로 간 것일까 하고 안심하기도 했다.

그런 작은 이야기들이 하나씩 내 마음속에 그려지며 상상력이 뻗어나가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나만의 작은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즐거움을 만끽하곤 했다.


나이가 들어서도 이따금 하늘을 보면서 여러 상상을 하면 여전히 즐겁다. 나이가 든다고

상상력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으면

주위 사람들이 시선이 곱지 않다.

"무슨 일 있어?"

"걱정거리가 있으신 가 봐요?"

이 정도면 그래도 걱정해 주는 거니까 괜찮은데,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또라이로

보는 듯한 서늘한 시선이 느껴지면 얼른 시선을 땅으로 떨어뜨린다.

그러면, 상상력은 저 멀리 하늘 어딘가로 작은 즐거움과 함께 사라져 버린다.

그렇게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다 보니, 순간순간 부딪히는 일상에서

상상력이 동원된 즐거움을 나도 모르게 하나씩 하나씩 거의 다 잃어버린 모양이다.


모르는 아저씨의 자전거가 자기를 추월하는 순간, 절체절명의 역전을 당한 위기로 상상한

아이들은 온 힘을 다해 페달을 밟는다. 마침내, 아저씨를 추월한 순간 자신들이 상상한

극적인 역전극이 완성되고 행복한 결말에 도달한다. 그리고, 뒤돌아 보며 승리자의

미소를 내게 보낸다. 아이들이 시간이 느리게 가고, 사소한 일상에서도 즐거운 것은

그런 막강한 상상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정말 부럽다.

다음에 아이들이 또 나를 추월하려 달려온다면, 기꺼이 져 주어야겠다.

다만, 안전이 확보가 된다면 좀 더 아슬아슬하게 져 주는 역전극의 조연 역할을

정성껏 해야겠다. 조연이면 어떤가? 전성기를 보낸 스타처럼 황혼기를 덤덤하게

받아들이면서도 그 젊은 날의 꿈과 희망을 잃지 않은 내 모습을 다시 확인하는 것

자체로 큰 보상이 아닐까?


추격전.jpeg 꼬마들이 내 자전거를 추월할 때는 저런 영화 같은 장면이 머릿속에서 펼쳐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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