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에요
설현이 내게 와서 좋아한다며, 마치 결혼을 앞둔 신랑의 부모를 상견례 온 것처럼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나도 설현을 처음 보기에 너무 신기해 계속 바라보니 수줍어하며,
시선을 살짝 사선 아래로 꺾으며 살짝 감기는 눈매는 블랙베리의 눈화장이 도드라지면서도,
군데군데 퍼플빛이 이따금 반짝이며, 고혹적이면서도 관능적인 광채를 발했는데,
그냥 이쁘다는
다소 천박한 표현도, 아름답다는 진부한 표현으로 가둬두기에는 한참 부족했다.
언젠가 봤던 중국 진나라 시대를 배경으로 한 무협지 속의 선녀가 떠올랐다.
깊은 산속 선산에 이따금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진다는 선녀를 본 남자는 잊지
못해 평생 떠돌며 찾아다닐 정도였다고 하는데, ‘눈부신 자태는 달빛보다 맑으며,
백옥 같은 피부는 손끝에 닿을까 두려울 정도로 섬세했다. “ 같은 미사여구를 동원한
작가의 표현에 극강의 상상력을 동원한 미녀의 모습은 환상처럼 모호하게 상상한 적이
있었는데, 그 완성되지 못한 모호한 미녀가 또렷한 현실 속에서 설현의 모습으로
내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눈을 뗄 수 없이, 빠져드는 설현을 대책 없이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
또 그때마다 같이 마주 봐주면서 활짝 웃어주니,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겨를이 없었다.
다만,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걸까? 뭐라고 말 좀 하지.
설현을 본 형은 무척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 평소에 설현을 안 좋아했던 걸까?
형은 역시나 대체적으로 특유의 불쾌한 말투로,
“넌, 군대도 가야 하잖아?”
“뭐, 그렇지....”
몇십 년 전에 군대 갔다 왔는데, 왜 그런 답을 했을까? 더 웃기는 것은 내가 설현을
보고 한다는 말이,
"나, 군대 가야 하는데 괜찮겠어? “
그 말에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지만, 설현은 울 것처럼 눈썹을 찡그리며, 입술을 앙 문 채,
턱을 미세하게 떨며 손으로 눈을 가리며 고개를 숙이더니 어깨를 들썩였다.
그 모습이 너무 가슴이 아프지만, 여전히 군대는 가야 한다는 이상한 현실에 아무런 말도
못하고 안타깝게만 바라보다 눈물이 날 때쯤, 설현은 눈물을 흘리며 나를 그리워하는
눈빛을 남긴 채, 알 수 없는 블랙홀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사라진 설현을 보고 얼마나
서글프게 울었는지, 눈을 뜬 뒤에도 내 눈에는 눈물 자국이 남아 있었다.
이상이 이틀 전에 내가 꾸었던 꿈의 내용이다.
꿈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기 마련이지만, 이틀 전에 꾸었던 설현의 꿈은 아직도 생생하다.
하긴, 이틀 전에 꿈에서 깬 뒤, 그 허탈감에 다시 잠을 못 이루고 스마트폰으로 설현의
이미지를 검색하다가 아득할 정도로 나와 관계없는 현실이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렬한 꿈이었다.
왜 내 꿈에 설현이 등장했을까? 난 평소에 설현에 대해 관심을 가져본 적이 거의 없다.
예전에 통신사 광고 사진이 큰 이슈가 되었을 때, 잠시 그 사진을 남들처럼 눈여겨본
적은 있었지만, 그때는 모든 사람이 다 그랬으니까.
꿈은 자신의 심리나 신체상태를 은유적으로 표현한다는 ‘잠의 사생활’이라는 꿈
관련 심리학책을 읽은 뒤로는 내가 꾸는 꿈은 모두 나의 심리, 몸 상태와 관련이
있을 거라고 늘 생각했었다. 실제로 내가 꾸는 이상한 꿈들.. 흔히 말하는 ‘개꿈’
이라고 불리는 맥락 없는 꿈은 다른 이가 듣기에는 정신 나간 이야기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의 잠재된 무의식이 묘하게 뒤틀린 방식으로
표현된다는 것을 곰곰이 생각하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 꾼 설현 꿈도 내 잠재된 무의식과 관련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한참을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도저히 유추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그 꿈을 생각하면,
설현의 아름다웠던 꿈속의 모습이 자꾸 떠올라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인터넷으로 연예인
관련 꿈에 대한 심리적 해석을 찾아봤지만, 대부분 예지몽이라는 식으로 어떤
징후나 미래에 대한 허무한 예언적 해석뿐이었다.
할 수 없이 챗gpt에게 철저한 심리학적 분석으로 물어보니, 그럴듯한 답이 돌아왔다.
첫 째, 자신감 상승 욕구 표현.
두 번째, 이상적인 관계에 대한 욕망.
세 번째, 자기 이미지에 대한 내면의 갈등.
대체적으로 정확한 지적이었다. 요즘 달리기와 운동을 하면서 살이 빠지면 외모도
코로나가 한참 극성이어서 마기꾼으로 명성을 떨치던 그 시절만큼은 못 돼도
다시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싶은 괜한 기대감이 종종 들곤 했다. 그리고,
코로나 시절 마기꾼인 줄 모르고 관심을 보였던 여자들에 대한 기억의 향수.
하지만, 자꾸만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 대한 외모에 대한 자신감 결여가 은근히
있었다. 이 점들을 고려해 보니, 운동하면서 살 빠지면, 매력적으로 보일 거라는
착각 속에 요즘 젊은 여자 연예인을 잘 모르니까, 10년 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설현이 최신 연예인이라 생각하고 설현을 통해 이상적인 이성 관계에 대한 욕망이
드러났던 모양이다. 그러면서도 나이 들어가는 것에 대한 걱정과 부담감까지....
거기에 더해 나만 해석할 수 있는 부분도 있었다.
꿈속에서 만난 설현에 대해 어떤 성적인 욕망도 없이, 설현 그 자체를 순수하게
좋아했는데, 그 감정은 10대 시절 좋아하는 이성이나 연예인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순수한 마음과 다를 바 없었다. 두 달 전쯤, 15년 전에 쓰다가 만 연예소설을
다시 꺼내 보다가 DMZ에 깔린 무수한 지뢰밭처럼 곳곳에 민망한 표현과 서술에
몸서리를 치면서도 생각보다 밝고 유쾌하면서도 빠른 전개가 인상적이어서, 내가
이런 글도 썼나 싶었다. 그러면서, 다시 연예소설을 혹시나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았던 것이 꿈속에서 만난 설현에 대한 감정도 그렇게 순수하게
드러난 것 같았다.
이래저래 꿈은 자신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맞다.
시간이 지날수록 설현을 만난 꿈에서 내가 현실에서 바라는 희망이 고스란히
꿈에 매우 은유적으로 드러난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다.
꿈은 좀 심술궂게 뒤틀리지만, 내 잠재의식을 은유만 잘 해석하면 객관적으로
잘 보여준다.
꿈에서 만난 설현 덕에 내 상태도 확인하고, 꿈을 해석하는 능력이 더 좋아진 것에
대해 꿈속에서 다시 설현을 만나 감사를 표시하고 싶지만, 그런 꿈을 꾸는
꿈은 정말 꿈인 걸까? 아는 지인에게 농담이라는 식이라고 이런 이야기를 하니,
꿈은 꿈처럼 생각할 뿐, 현실과 착각하지 말라며 머리를 톡톡 친다....
뭐, 꿈도 꾸지 말라는 건가? 사람은 꿈을 먹고사는 존재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