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9월에는 중순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스마트폰 날씨 어플을 들여다보았다.
도대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더위에 진저리가 났고, 지칠 대로 지쳤었다.
그래서, 추석까지 이어졌던 열대야가 끝나던 9월 19일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올여름이 이제야 끝나는구나... 하고 방 창문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안도했었다.
이런 것도 트라우마라고 해야 할까?
작년의 무지막지하면서도 지루하게 길었던 폭염의 기억이 생생한 가운데, 여름이
다가오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내 방에는 여전히 에어컨이 없다.
작년의 그 지독한 여름이 오면 어떡하지? 불행한 예측은 왜 그리 잘 맞는지..
6월 말부터 휘몰아친 더위는 예상대로 무지막지했고, 폭염과 열대야 기록은 연일
신기록을 갈아치우기 시작했다. 기세를 봐서는 작년 수준을 훌쩍 뛰어넘을 것 같았다.
'이렇다 10월에도 폭염과 열대야 속에서 사는 거 아니야?'
라는 걱정을 했지만, 다행히 8월 말이 오면서 조금씩 기세가 꺾이는 모양새다.
그리고, 작년처럼 에어컨이 나오는 건물에 있다가 밖으로 나오면 사막의 뜨거운 바람 같은
열기가 훅 덮쳐서 기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올해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이래저래 다행히도 여름이 끝나가는 미세한 모습을 보인다.
이제는 에어컨 없이 버티기 힘든 여름이 되었다. 하긴, 여름에도 별로 덥지 않아 에어컨이 있는
집이 거의 없다는 영국에서도 요즘엔 에어컨을 설치하는 집이 점차 늘고 있다고 한다.
이상기후가 고착화되었다. 이젠 과거로 돌아가기는 불가능할 거다.
그래도 집집마다 에어컨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행여나 그런 점에서 에어컨이 거의 없던
과거보다 상황이 더 나은 것은 아닌가라고 생각한다면, 대단한 착각이다.
과거에는 30도가 넘어가는 날이 많지 않았다. 열대야도 아무리 길어야 일주일 정도였다.
낮의 더위는 밤에 산책을 하며 충분히 식힐 수 있었고, 단독주택에선 대청마루에 누워있으면
살랑살랑 불어오는 미풍이 제법 시원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바람 불면 뜨거운 공기가 확 덮치는 지금의 극악스러운 더위와 달랐다.
그래서일까? 과거의 여름 이미지는 활기차고 생기가 도는 신나는 느낌이라면, 지금의 여름은
'이러다 죽겠다'는 느낌이 훨씬 강하다.
물론, 이런 더위에도 긴 팔과 점퍼를 입고 다니는 젊은 친구들에게는 아무렇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바야흐로 우리의 여름은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인식에도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대체적으로 불편하고 힘들고, 때로는 혐오스러운 감정마저 일으킬 정도로 견디기 어렵다.
여름은 그저 피하고만 싶은 비극이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