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

175cm 53kg 하나도 안 더워요

by 리버

175cm, 53kg

정말 늘씬한 몸매라고 생각하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젊은 아가씨가 저 정도면 매우 늘씬하겠지만, 저 스펙은

중학교 3학년 시절 내 키와 몸무게이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너무 비쩍 마른 몸에 대해 심한

열등감을 갖고 있었고, 나를 대하는 아이들도 대개는 나를 만만하게 상대했다.

동네 깡패에게 소위 말하는 ‘삥’을 자주 뜯긴 것도 저 비쩍 마른 몸 때문이었다.


저 깡마른 몸매 때문인지, 당시 7월 둘째 주까지 더위를 잘 타지 않았던 나는

얇은 점퍼를 입고 다녔다.

우리 반에서 그때까지 점퍼를 입고 다니는 녀석은 나와한 녀석이 더 있었는데,

의도치 않게 경쟁을 한 셈이 되었다. 경쟁을 약속한 적은 없지만.

녀석도 나를 의식하고 있었을 거라 난 지금도 믿는다. 그 여름날에 점퍼를 입고

다니는 꼴을 무심하게 보는 게 더 힘들 테니까...

“야, 너는 이 날씨가 춥냐?”

라며 별로 친하지 않은 반 친구 녀석들도 관심을 보일 정도였으니까.

최후의 승자는 녀석이었다. 녀석은 방학식 날까지, 그 등신 같은 스포츠 점퍼를

입고 왔었다. 솔직히 난 녀석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싶어 더위를 참고 점퍼를 입고

다녔는데. 녀석은 한 여름에도 더위를 못 느끼는 것 같았다.

축구를 할 때도 녀석은 그 점퍼를 입고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뛰어다녔으니까.

그런 모습을 보다가 얼굴 생김이 독특했던 녀석을 한 참 바라본 것은 지구인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ChatGPT Image 2025년 8월 31일 오후 08_21_59.png ai로 그린 거지만, 나도 그 녀석도 저 그림과 비슷한 점퍼였다. 그랬으니 여름날에 입을 수 있었던 거다




역대급 무더위가 닥치면, 소환되는 것이 1994년 여름이다.

그 1994년 여름은 다른 의미에서 내게 의미 있는 여름이었다. 단독주택 2층이었던

우리 집은 2층에는 월세를 주었는데, 그 당시 한 달에 5만 원 정도에 월세를 받고

있었는데, 살던 사람이 나가고 나자, 아버지는 돈도 안 되는 거, 이젠 세 안 받고

그냥 비워두겠다고 선언하셨다. 그 덕분에 형과 같이 방을 쓰던 나는 2층을 쓰고

싶다고 했고, 어차피 빈 방이니 아버지는 허락하셨다.

그런데, 2층이 내 방이 된 시점이 1994년 6월 하순이었고, 슬라브 벽으로 된 2층은

여름에는 밖의 열기를 차단하기는커녕 흡수하는 듯한 더위로 순식간에 찜통을

만들고,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겨울에는 벽이 없는 듯 매서운 칼바람이 들어오는 곳이었다.

월세 5만 원이면 너무 싸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용케 버티고 나간 그분들이

참 대단하면서, 괜히 내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나마 방 옆에 제법 큰 마루가 있는 것이 미안함을 약간 상쇄하기는 했지만...


폭염.jpg 요즘 폭염을 쏟아내는 날이면, 머릿속에는 이번 여름의 잔상이 이렇게 기억되지 않을까?


다소 더웠지만, 내 방이 생긴 데다가 지금과 달리 아파트가 거의 없어, 2층에서 동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게 좋아서 그 찜통 같은 방에 있는 것을 좋아했다.

그때도 내 몸무게는 60kg 초반이어서 대체적으로 깡마른 체형이었고, 역대급 폭염과

열대야가 몰아쳐도 덥기는 했지만, 대체적으로 내 방이 생긴 즐거움을 만끽하는

편이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방을 생각하면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그 집을 떠난 지,

30년이 지났음에도 집과 관련된 꿈을 꾸면, 꼭 그 집과 처음 생긴 2층 내 방이

꿈에 단골처럼 나타난다. 폭염으로 기억되는 1994년 여름, 꽤 날씬했던 내게 그해

여름은 상큼한 기억뿐이다.



2024년, 이제는 나이가 들어 몸무게가 확 늘어, 이제는 80kg 초반과 중반을 오고 간다.

중년 아저씨의 전형적인 몸매이고, 옷으로 가리지만 벗으면 영락없이

볼록 나온 배가 민망할 지경이다. 2024년 여름 기온은 대체적으로 1994년과 비슷했다.

다만, 끝이 날 줄 모르고 추석을 지나 9월 중순까지 이어진 점이 특이한 점이었다.

1994년 슬라브로 된 찜통 같은 방 안에서도 즐겁게 잘 지내던 난, 2024년 폭염이

닥치자 마치 두꺼운 가죽점퍼를 걸친 듯, 수시로 땀을 비 오듯 흘리고, 더위가

절정에 이르는 오후에는 좀처럼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나가자마자 땀이 범벅이

되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6월 초순만 되어도 더위에 힘들 때가 많다.

미리 운동을 해 둘 걸 하고 후회를 해봤자, 늦었고 무지막지하게 덤벼드는

폭염과 열대야 앞에서 난 속수무책이 되어 매일을 더위 먹은 고양이처럼

축 늘어져 있기 일쑤였다.


8월 말이 되며, 아직 열대야라고 하지만,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분다.

지난주 언젠가는 열대야 기준보다 낮은 24도를 기록한 날에는 가을이 왔나

싶을 정도로 상쾌하고 시원한 새벽을 맞이한 적이 있었다. 단지, 1도가

내려갔는데 말이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는 25도를 기록하자 열대야의 에너지를

뿜뿜 뿜어대며, ‘여름이 간 줄 알았지? “ 하고 놀리는 듯하다.


이렇게 더운 날에, 더욱 힘들게 느껴지는 것은 내 과체중에 해당하는 무거운 몸이

문제라고 생각해, 폭염 속에서도 이 주일 전부터 동네 공원에 나가 운동을 한다.

설렁설렁 이 아니라, 한 시간 정도를 뛰려고 했는데, 체력이 안 되어 걷다 뛰다가

하다가 요즘에는 제법 잘 뛴다. 몸무게는 생각보다 안 줄어 2kg밖에 안 줄었지만,

그동안 워낙 쌓인 비계가 많아, 그거 태우느라 몸무게가 안 줄은 모양이다.

오늘 스마트폰 날씨 어플을 보니 밤인데도, 27도를 가리키고 있다.

그런데, 몸무게가 2kg이나 줄어서일까? 그 전과 달리 시원한 느낌이다.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날씨가 이렇게 공격적으로 나온다면,

몸무게를 1kg이라도 빼면, 기온이 1도 떨어지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배를 출렁거리며 동네공원을 숨이 턱까지 차오르게 뛴다.

행여나 1994년 여름처럼 별로 더위를 느끼지 못한 몸매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상상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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