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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폭식증의 굴레(1)

왜 그는 오늘만 사는 것처럼 목구멍에 음식을 집어넣었는가

by 망한인생갱생


내 삶에서 음식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어려서부터 먹는 것에 진심인 아기였다.

다른 아기들에 비해 분유통을 두배로 빨리 비우고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잘 먹었다.

할머니는 하루가 다르게 토실토실해지는 손주에게 약간의 심각성을 느끼고 내게 주는 음식을 모두 반으로 줄였다.

일전에 빵 하나를 쥐어 줬다면, 반으로 갈라서 주는 정도였다.


덕분에 심각한 비만은 겪지 않고 학창 시절 내내 튼튼한 과체중으로 자랐다.

등굣길에 엄마한테 저녁엔 집에서 만든 김밥을 먹고 싶다고 문자를 남기거나, 생일엔 집 근처 '효성 닭집'에서 갓 튀긴 치킨을 먹고 싶다며 기대하는 정도였다.

외식이나 배달은 한 달에 두어 번, 부모님도 시골에서 자란 경험이 있어서 한식이 입에 맞고 적당히 드시는 편이었다.

무엇보다 학생인 내게 아무도 '살 좀 빼라, 다이어트해야 할 것 같다'라고 하지 않았다. 사회도 전혀 눈치를 주지 않았고 나 또한 엄마가 사주는 아울렛 옷을 잘만 입고 다녔다.


전교생 기숙사인 고등학교를 가면서 매우 평범했던 내게 인생에 큰 기로가 놓이는 일이 생겼다.

자그마치 1년 동안 여러 스트레스 때문에 제대로 끼니를 챙기지 않았고, 저녁을 안 먹어도 체기가 내려가지 않아서 그냥 저녁도 걸렀다.

밥은 1~2끼를 먹는데 요상한 군것질만 늘어서 1년 동안 10kg가 쪘다. 정상체중에서 단번에 비만이 되었다.

한창 '돌핀 망고'라는 빨대로 먹는 젤리가 유행했는데 아무 생각 없이 한 번에 10개를 먹었다. 어떤 날은 아이스크림만 먹고 산 날도 있었다.

1학년이 끝날 즈음, 아침에 샤워하다가 목에서 뭔가 나오려는 느낌이 들었다. 내 입에서 무언가 후두둑 떨어지자 옆에서 같이 씻던 친구는 비명을 질렀다.

나는 샤워하다가 피를 토했다.


고작 열일곱 살 학생이 면역력 저하와 스트레스 때문에 각혈을 하다니, 놀랍지도 않고 어이가 없었다.

이 학교에 더 있으면 생을 마감하거나 마감당하거나 둘 중에 하나일 것 같아서 1학년을 마치고 자퇴했다.


고쳐지지 않은 빌어먹을 식습관은 학교를 나오고 내게 남은 후유증 중 하나가 되었다.


한동안 방에서 나오지 않고 하루에 20시간을 자는 히키코모리 같은 생활을 했다.

그 와중에 배고프면 일어나 3끼, 어쩌면 디저트나 음료까지 4끼를 배달음식으로 먹었다. 돈이 떨어지면 알바를 했는데 번 돈은 고스란히 식비로 쓰였다.

사람을 만나지 않고 혼자서 열심히 먹으러 다녔다. 나는 어려서 나를 돌보는 방법은 알지 못했고,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도 몰랐다.

보상하듯이 음식을 집어넣었고, 1차원적인 행복에 취해 단순 행동을 반복했다.


스물한 살에 대학을 들어가서 좋은 친구들을 만나 신나게 놀았다. 다만 조금 달라진 점은 외모에 신경이 쓰이니까 다이어트와 먹고 마시기를 반복했다.

초절식으로 먹어도 동기들과 내기하듯이 다이어트를 해서 재밌었다. 나중엔 그게 어떤 후폭풍을 가져올지 모른 채로...

졸업하고 모임이 줄어들자 나는 굶어도 살이 잘 빠지지 않고 모든 스트레스를 먹는 걸로 푸는 인간이 되었다.

핸드폰 만보계에 하루 100걸음도 안 찍히면서 운동은 하기 싫고 먹는 건 꼬박꼬박 챙기는 돼지. 돼지한테도 미안한 마음이 드는 인간말종, 그 자체였다.


스물다섯이 되던 이번 해 2월, 키가 160cm인데 몸무게는 70kg을 찍었다. 원인 모를 두통에 시달렸다. 아침에 일어나면 손발과 종아리가 부어서 아팠다. 하루 종일 손이 저릿저릿했다.

아버지는 걱정되는 마음에 역정을 내는 날이 많아졌다. 동생과 멀찍이 떨어져 걸었다. 친구들 만나기도 부끄러워 약속을 피했다.


먹고-스트레스받고-먹고-스트레스받고의 연속이었다.

초절식-폭식-초절식-폭식의 굴레였다.

나 좀 누가 살려줘, 싶어도 멈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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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식증의 굴레(2)에서 계속.







내 맘대로 요약&여담


: 잘 먹는 아기 -> 평범하고 행복한 학교생활 -> 기숙사 고등학교 스트레스,+10kg -> 면역력 저하, 건강 악화 및 각혈 -> 자퇴 -> 히키코모리, 배달음식, 스트레스 먹는 걸로 품 -> 대학 가서 초절식과 폭식 반복 -> 졸업 후 더 심각 160cm 70kg 건강 이상 시작 ->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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