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폭식증의 굴레(2)
이십대 초반에 배달의 민족에 400+@만원 쓴 썰
최근 미디어에선 '소식좌'라는 말을 유행처럼 다룬다.
이는 입이 짧아서 음식을 먹다가 금방 그만두거나 적은 양을 천천히 씹으면서 느리게 먹는 것을 일컫는데 끊임없는 먹방과 쏟아져 나오는 외식상품에 지친 사람들에게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소식은 건강에 좋다. 많은 사람들이 장수의 비결로 소식을 꼽는다.
나는 소식이 신체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건강에도 좋다고 생각한다.
여러 음식을 지도처럼 펼쳐놓고 꾸역꾸역 들이미는 것에 익숙하지만, 이런 습관은 그 '순간'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입 안 가득 들어오는 음식에 1차원적인 행복을 느낄 뿐, 먹은 후에는 꼭 후회가 밀려온다.
사실, 흔히 하는 '과식' 정도로 그치면 그저 배 둥둥 두드리며 만족감을 느끼면 될 일이다.
하지만 '폭식'은 좀 더 심각한 문제가 된다.
유튜브에서 폭식증 브이로그 영상을 본 적이 있는가? 전혀 살쪄보이지 않는 여성이 하루 종일 음식을 끊임없이 집어넣는다. 참으려고 해도 매번 실패한다. 폭식증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음식을 안 먹으면 될 일이지 않냐며 한심하게 본다.
나는 폭식증을 '음식에 갇힌다'라고 표현하고 싶다. 폭식증에 걸려 모든 사고가(뇌가) 음식에 '갇히면', 그때부터 제어 불능 상태가 된다. 옳은 생각을 하기 어렵다.
그냥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당장 내일부터 음식을 못 먹는 병에 걸린 것처럼 먹는다.
배가 터질 것 같아도 계속 집어넣는다. 더, 더, 더, 멈추지 못한다.
짠 거, 단거, 매운 거, 시원하고 상큼한 거, 식감이 쫄깃한 거, 바삭한 거... 고장 난 기계처럼 음식을 탐한다.
2022년 2월, 160cm에 70kg. 체지방률 40%.....(!)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퉁퉁부은 손과 종아리가 눈에 들어온다.
손가락이 원래 길고 예쁜 편인데, 긴 손가락에 살이 붙으면 그만큼 꼴 보기 싫어질 수가 없다.
무엇보다 손이 저려서 꾹꾹 눌러준다. 잠을 충분히 잤는데 일어날 때 너무 피곤하다.
아침을 황제처럼 먹는다.(하루가 끝날 때까지 황제처럼 먹는다...) 마치 보상처럼 밤새 비어있을 속에 아침부터 맵고 자극적인 음식을 넣어준다. 점심에 짜장면과 탕수육을 충분히 먹었어도 저녁에는 새로 광고하는 치킨을 먹는다. 식사 사이사이 입이 심심하지 않게 여러 간식을 먹는다. 카페에선 무조건 크림이 잔뜩 들어있거나 달달한 음료를 먹는다. 신메뉴는 무조건 먹어본다. 스타벅스든 투썸플레이스든 제일 큰 사이즈로 마신다. 양이 부족한데 돈도 부족하면 빽다방에서 대용량 음료를 즐긴다.
신체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 저녁에 소화가 안돼서 밖을 잠깐 산책하려고 나가면, 편의점이나 저녁 늦게 운영하는 카페에 들러 이것저것 먹고 온다. 저녁을 먹었고, 간식도 먹었는데 산책하러 나갔다가 상업지구에서 밥을 또 먹고 온 적도 있다. 생각해보니 대단히 미친 사람이었네...
시중에 나온 모든 신메뉴를 머릿속에 꿰고 있다. 유행에 민감한 푸드 매거진의 칼럼니스트라도 되는 둥, 하루 종일 먹어댔다. 원인모를 두통과 피로가 지속됐다. 각기 다른 내용의 꿈을 5번 이상 연달아 꾸는 탓에 수면의 질도 떨어졌다.
이러다 죽겠다 싶었다. 간간히 알바나 용돈으로 생기는 돈은 엥겔지수만 높였고, 무엇보다 먹고 싶은 걸 다 먹고 내 맘대로 게으름을 피워도 나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