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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폭식증의 굴레(3)

폭식은 우울과 같다, 완치가 없다

by 망한인생갱생


3월이 시작하기 전에 엄마를 설득해 PT를 등록했다. 설득 논점은 뻔뻔하게도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였다.

날씨도 따뜻해지기 시작하는데 밖에 나가 뛸 생각은 안 하고 엄마를 등쳐먹어 비싼 PT샵을 끊었다.


운동을 시작한 첫날, 예상대로 근력운동은 아주 고되었고 러닝머신은 속도 5로 해도 25분이 최대였다.

속도 5면 거의 걷는 수준인데, 25분을 걷고 죽을 만큼 힘들어했다.

PT쌤한테 근육통 때문에 운동을 못하겠다고 했더니 운동을 하는 중에도 근육통이 심하냐고 물었다.

우습게도 아니었다. 오히려 가만히 있으면 아팠지만 운동을 하는 중에는 운동이 힘드니까 잊혀졌다.

PT쌤은 스트레칭을 충분히 해주고 운동을 지속하면 그 정도 근육통은 일상이 된다고 했다.


운동을 하면서 새롭게 안 사실은 근육통은 다음날 최고점이 아니라, 다음날부터 시작해서 서서히 생기다가 이틀째되는 날 최고점을 찍고 서서히 풀린다는 점이다!

이틀 주기로 운동한 부위의 근육통이 최고점을 찍고 풀리는 걸 반복하다 보니까, 이젠 운동 이틀 후 근육통의 최고점이 기다려졌다. 어제 이 부분을 빡세게 조졌으니(?) 내일 근육통이 어느 정도 올까? 하며 기대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쌤은 식단은 따로 정해주지 않고 체크만 해주셨다. 깨끗한 음식을 찾아 먹는 걸 즐기되, 식단을 너무 제한하지 말라고 했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좀 참았다가 끼니로 '적당히' 먹으라고 했다. 나는 점점 내가 만족할 만한 양을 찾아갔다.

물론 이것도 한 번에 된 게 아니다. 탄수화물이나 단백질 양을 얼마나 먹어야 되는지 몰라서 조금 덜 먹었다가 폭식이 터지거나 근육량이 깎였다. 한동안 빵에 빠져 모든 탄수화물을 빵으로 대체했다가 설탕중독이 생기기도 했다.




대략 두 달 반이 지난 지금 2022년 5월, 나는 10kg 감량에 성공했다.

체지방은 아직 더 빼야 하지만 몸무게는 58kg이고 계속 천천히 체중이 줄고 있다.

두통은 완전히 사라지고 더 이상 손발이 저리지 않다.


유산소는 점점 늘려서 경사 5와 속도 7로 50분을 쉬지 않고 빠르게 걷는다. 근력운동 중에는 데드리프트가 너무 재밌는데 80kg를 연달아 4번 들 수 있다. 사람들이 헬창이 되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근력운동의 '성취감'은 확실히 굉장한 심리적 효과가 있다.


일주일에 이틀을 제외하고 근력운동 50분+유산소 50분을 했다. 운동하기 죽도록 싫은 날도 있었지만 그냥 무지성으로 했다. 너무너무 하기 싫으면 극단적으로 생각했다. '헬스장 가서 물만 마시고 오자. 스쿼트를 딱 한 개만 하고 오자. 러닝머신 10분만 타고 오자.' 이렇게 생각하면 왕복 버스비가 아까워서 어느새 오늘 해야 할 운동만큼은 하고 왔다.


그리고 감히 '절대'라는 말을 사용해 말하자면 '운동'후에는 '절대' '후회'를 느끼지 않았다.

하기 전에는 귀찮고 싫어도, 운동 후 씻을 때는 '하, 역시 난 또 오늘 운동을 해냈네.' 따위의 건방지고 행복한 생각 따위를 하며 개운함을 만끽했다.


뱃살이 튀어나와 못 입던 옷을 스트레스 없이 마음껏 입고, 친구들도 마구 만나고, 지인들의 칭찬일색을 들으며 뿌듯해하는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다이어트를 하면서 이렇게까지 행복한 적이 있었나? 싶었다. 쫄쫄 굶지도 않았고, 온몸에 힘이 없는 것도 아니고, 피부는 탱탱해지고 잠은 죽은 듯이 잤다.

꿈의 빈도도 줄고 아침에 일어날 때 '힘세고 강한 아침!'을 외칠 것처럼 활력이 넘쳤다.




아직 가야 할 여정이 길지만, 확실히 배운 건 폭식은 우울과 같다, 완치가 없다.

우울의 크기를 작게 줄이려고 노력하듯이 폭식의 주기를 점점 넓혀가야 한다.

식단 제한은 어떻게든 강박을 만들어내고, 그 강박은 크기가 어떻든 점점 누적되어 무조건 폭식으로 돌아온다.


그러니까 애초에 '살 빼려면 이건 안돼!'가 아니라,


'내가 먹지 못하는 음식은 없다. 내가 무슨 대회를 나갈 것도 아니고, 그냥 무엇이든 양을 적당히 먹고 운동하자. 건강한 음식은 온전히 나를 위해 먹는 것이다. 단백질과 야채 양은 부족함 없이 채우자.'를 모토로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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