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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한인생갱생 Jul 26. 2022

[짧은 글] 재능 없어 보이니까 멈추면

진짜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린다


오늘은 애매한 재능에 대해서 짧게 얘기해보자.


어릴 때 내 첫 꿈은 의사였다.

어릴 때 잔병치레로 병원에 자주 갔는데, 집 근처 정형외과 의사 선생님, 치과 의사 선생님과 친해져서

어린 나에게 친절하게 잘해주는 게 좋고 일하는 게 멋있어 보여서 그랬던 것 같다.

덕분에 치과를 무서워한 적이 없다. 치과의사쌤 보러 가는 게 즐거웠기 때문. 내가 가면 항상 '망갱아~^^'하고 반겨주셨다. 미남이시기까지 했으니...


두 번째 꿈은 피아니스트였다.

7살부터 피아노 학원을 다니며 나름 고등학교 때까진 반에서 피아노 잘 치는 애로 각인되어 있었다.

내가 피아노를 뛰어나게 잘 치는 건 아니었고, 음악적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한 가지 다른 애들과 다른 점이 있었다면 피아노 학원을 꽤 오랫동안 끊지 않았다.

그리고 교회에서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계속 반주를 했고 밴드 활동도 했으니 실력이 늘진 않아도 감을 잃진 않았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피아노 단기 과외해주신 선생님과 엄마 앞에서 꿈이 '피아니스트'라고 말했는데

두 분의 멋쩍은 웃음과 당연히 농담일 거라는 반응이 돌아와 크게 충격을 먹었다.

내 피아노 실력은 절대 한계를 넘을 수 없다는 걸 어린 나이 때 깨닫고 선을 그어버린 것이다.(분명 평범한 재능에서 한계를 넘는 사람도 있는데)


그때부터였나. '신동'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습관처럼 애매한 재능을 탓했다.


뭐만 하려고 하면 이건 안돼. 저건 안돼.

중학교 때까지 과학시험 100점을 놓치지 않았고 초등학교 내내 과학탐구실험 방과 후 교실에 다녔으면서 나는 천생 문과야 문과.

내가 어떻게 수학을 공부해. 시험이 닥치면 그제야 밤을 새워 공부했으면서, 일주일 바쳐 나온 점수를 보고 재능이 없어 재능이.

주변에서도 너는 글짓기를 잘하니 문과야 문과. 글이나 써.

나는 생각보다 크리에이티브하지 않은데, 사람들은 마치 작가가 쉬운 직업인 것처럼 '방송작가는 어때? 소설 작가는 어때?'라며 한계를 지었다.


그 환경과 그 생각에, 수많은 것들을 손에서 쉽게 놔버린 나도 참 어리석었다.

나는 그때부터 시야가 현저히 좁아졌다. 분명 나는 어떠한 것을 하든 다 잘해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도 만화가 주호민 님의 유튜브를 보다가 한 가지 떠올랐다.

어렸을 때 A4용지를 접어 작은 책을 만든 뒤 만화를 그려서 반 친구들이 돌려본 적이 있었다.

권수가 꽤 많아져서 하드보드지를 이용해 작게 책꽂이도 만들고, 친구들이 대여와 반납을 반복하며 다음 권을 달라고 발을 동동 굴렀던 기억이 있다.

그만큼 만화를 사랑하던 아이가 어느 순간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들은 많고, 나는 비교적 그림을 못 그린다고 생각이 들어서 그때부터 그림을 그리는 걸 멈췄다.

지금 와서 보니 나는 만화가 아닌 작은 손그림조차도 그린 지 정말 오래된 것 같다.


부족하다고 멈추면 진짜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리는구나...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그림실력이 가장 늘었을 때는, 하루에 갱지 연습장을 5장씩 꽉꽉 채워 내 맘대로 콘티를 그렸던 시절이었는데...

지금은 그림실력이 퇴화했다고 말할 정도로 그림 그리는 게 어색해졌다.

어른이 된 나는 작은 손그림 하나도 부끄러워하며 공책 구석에 끄적이고 있다.


후회야말로 제일 쓸데없는 거라던데 나는 부족하다고 느껴서 멈췄던 내가 요즘 들어 너무 후회스럽다.

애매한 재능. 이 말이 모든 잠재력을 가로막는다. 그 애매함이 어딘가에 꼭 필요한 2% 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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