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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한인생갱생 Jan 09. 2023

[짧은 글] 키워주신 어머니

자취는 다 좋은데, 엄마가 보고 싶다



엄마는 가끔 무시당한다. 대놓고가 아닌 빙빙 에둘러서.

큰엄마와 작은엄마 사이에서도 그렇다.

명절 때엔 우리 집이 제일 넓다는 이유로 매번 우리 집에서 식사를 한다.

큰엄마는 요리 두어 개를 해오지만 작은엄마는 요리를 못한다는 핑계로 아무것도 들고 오지 않는다.

큰엄마는 최근에 번듯한 딸을 시집보냈고, 작은엄마는 딸이 간호대에 다니며 장학금을 받는다.

자랑만 하면 될 것을, 엄마에게 꼭 말에 뼈를 심어한다. 네 딸은 뭐 하나 나은 게 없네, 하며.


아빠의 벌이와 사회적 평판은 수준급이지만, 엄마는 명품을 사지 않는다. 그 흔한 가방하나 없다.

아울렛에서 메이커도 없는 백팩 가방을 가격을 깎아 구입하고는, 오랜만에 가방을 샀다고 자랑한다.


엄마는 객관적으로 봤을 때 미인이자 동안이다.

성형을 한 것도 아닌데 쌍꺼풀이 예쁜 갈색의 큰 눈, 하얀 피부를 가졌다.

내가 중학교 때도 학부모 참관 수업을 하면 반 친구들이 '오오오~'할 정도였다.

친구들은 농담 삼아 '엄마는 미인이신데 넌 왜...' 하며 놀렸다.


그런데도 엄마는 비싼 돈으로 관리받거나 꾸밀 줄을 모른다.

화장품 하나하나 다 나도 안 쓰는 저렴한 로드샵 제품이다. 제대로 된 피부관리를 받아본 적도 없다.

가끔은 엄마가 너무 구질구질해서 화가 난다.

내가 나이 50대 중반이면 이런 화장품 쓰지도 않을 거야. 왜 엄마가 무시당해야 해?




엄마는 가끔 무시당한다. 내세울게 아무것도 없어서.

그런데도 엄마가 바보같이 믿어주는 게 있다. 나랑 동생이다.

엄마 인생 살아! 외치고 싶지만 엄마는 나랑 동생밖에 안 보고 산다.

엄마가 내세울 건 나밖에 없다.

엄마에겐 똑 부러지고 말 잘하는 내가 꿈이자 삶이다.

엄마는 나에게 아무런 압박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나만 보고 산다. 내가 아플까, 무엇이 부족할까, 필요한 건 더 없을까, 돈은 충분한가... 그것만 보고 산다.


내가 이 상황을 다 뒤집어야 한다. 예쁘고 똑똑한 의사 딸내미가 되어야 한다.

엄마를 위해 완벽한 딸이 될 거다. 아무도 무시 못하게.

나만이 엄마를 지킬 수 있다. 내가 엄마를 호강시킬 거다. 온갖 예쁜 거, 맛있는 거 다 누리고 살게 해 드릴 거다. 기본적인 건강관리부터 시작해서 마사지, 운동, 체형교정, 피부관리, 헤어관리, 비싸고 좋은 화장품과 옷, 가방, 신발, 집도 예쁘게 꾸며드리고, 더 좋은 집도, 차도 사드리고 여행도 보내드리고...

매일 오마카세처럼 대접받는 음식을 드시게 하고 싶다. 더 이상 아무 고생 안 하게끔. 편안하고 즐겁게만 사시도록.





6살 때 처음 만난 우린,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고 나도 엄마가 처음이었다.

아마 엄마가 더 황당했을 것이다. 친화력이 좋았던 나는 그저 헤실헤실 좋았다.

나는 어렸을 땐 원래 엄마가 없는 줄 알았다.

'나는 원래 엄마가 없어... 엥, 왜 나만 엄마가 없지?' 할 때쯤 엄마가 생겼다.

물론 마냥 좋았던 것은 아니다. 둘 다 마음을 나누는 건 서툴렀고, 나는 눈치 빠른 어린이가 되었다.

눈치가 빨라서 눈치 없는 척했던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어린애처럼 맹-한 포지션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때로는 모든 슬픈 일이 친엄마가 없기 때문이라고 느꼈다. 어쩌면 4세 때부터 부모와 정서적 교류를 하지 못했다.

'이러해서 슬펐다, 짜증 났다.' 사소한 감정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다.

나도 어리광 부리는 딸이 되고 싶었다. 엄마한테 짜증도 내고 싶었고,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그럴 때마다 부럽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은 일상처럼 내 수다를 듣는 엄마아빠지만... 그땐 그랬다.


엄마가 가끔 내게 카톡으로 편지를 보내시는데, 그 편지를 읽고 나는 다짐했다.

내가 지옥 끝에서라도 정신 차려야 할 이유는 두 어머니 때문이라고.

두 어머니의 '삶, 모든 것, 꿈, 남긴 것'이 오로지 '나'이기 때문이라고.

그것이 상처가 될지는, 심장에 박힌 염원일지는 다 나한테 달린 것이다.

두 분이 나에게 창을 꽂았다. 나는 두 손이 가득 차있다. 두려울 것도, 망설일 것도 없네.








P.S. 엄마의 편지 中...


예쁜 딸, 엄마가 항상 너한테 부족하다. 마음은 아닌데 자꾸 말을 생각과 다르게 말하고, 말을 예쁘게 해야 하는데 습관이 안 돼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엄마가 표현이 부족해도 마음은 항상 너를 응원하고 너 뒤에 항상 엄마가 있다는 걸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엄마가 가진 거 너한테 다 준다 해도 아까운 거 없다.

엄마가 무슨 복이 있어서 너같이 똑똑하고 착한 딸을 얻고... 복이 많다.

...(중략)

건강 잘 챙기고 엄마아빠가 있으니까 힘내고 네가 원하는 만큼 도움은 안될지 모르지만 힘이 닿는 만큼은 도와줄 테니까 열심히 해봐. 후회하지 말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 엄마가 응원할게. 사랑한다.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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