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엔 관심 없고, 공학은 자신 없던 경영학도의 가장 낯선 선택
나는 경영학을 전공했었다. 전교 꼴지였던 나를 과탑으로 바꿔준, 꽤 고마운 학문이다.
실제로 흥미도 있었고, 나와도 잘 맞았다.
다만 "나만의 전문성"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나는 군대에서 구직 활동을 위해 취득했던 토익 점수를 활용해서
편입을 준비하기로 했다.
회고록만 보면 내가 늘 도전에 열려 있는 사람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실은 꽤 신중하고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성격이다.
그렇기 때문에 편입도 시간 낭비 없이 영어시험보다 토익과 서류, 학점으로
짧고 굵게, 가성비 있게 치르고 싶었다.
원서는 세 장만 썼다.
S대 경영학과, H대 경제학부, 중앙대 예술공학부.
익숙하고 안정적인 길과, 낯설지만 끌리는 길 사이에서 고민했다.
중앙대는 인턴십을 하며 알게 된 '기술과 디자인을 모두 이해하는 사람'이라는
이상적인 인재상과 맞닿아 있었고, 마침 토익 전형으로 바뀐 덕분에 진지하게 도전할 수 있었다.
결국 나는 중앙대 예술공학부에 최초 합격했고, H대는 추가 합격 통보를 받았다.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미 전공도 성적도 안정적인 경영학도였지만,
나조차 낯설게 느끼는 선택을 해보기로 했다.
지금 돌아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다.
입학 후 만난 학우들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디자인 감각이 뛰어난 친구, 영상 편집의 귀재, 코드 천재 등...
나와는 다른 강점을 지닌 사람들 덕분에, 나는 매일매일 자극을 받았고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수업 방식도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사실 경영학과도 팀플이나 참여형 강의가 많았는데, 예술공학부는 "야생" 그자체였다.
교수님들이 굉장히 열려 있으시고, 학생들의 발전에도 큰 관심이 있으셨다.
1학년 교과목 수준은 다른 학과 3~4학년 과목들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높은 경우도 있었다.
교수님들은 영감을 주거나 방향을 제시해 주실 뿐, 구현은 철저히 학생 몫이었다.
수업 시간에는 자극을 주시거나, 새로운 기술에 대한 소개까지만 하고,
프로젝트로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선 스스로 학습해야 되는 구조였다.
심지어 팀 단위 활동이라 프로젝트 매니징, 빠른 의사결정 등 강력한 리더가 없으면
완성 자체를 하기 어려운 과제가 많았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한 강점이 있었기에, 재밌고 새로운 방식으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었지만
호불호가 명확한 강의 진행 방식임을 인지하게 되었다.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면, 내가 전적대에서 2학년 2학기까지 학습하며 얻은 성취도가 있다면
예술공학대학에서 1학기 만에 비슷하거나 더 많은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수업에서 어떤 과제를 수행했는 지에 대해서, 추후 다른 회고록에서 다룰 예정이다.
이 전공은 단순히 예술과 기술을 배우는 게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고 세상을 관찰하는 감각을 길러주는 훈련을 하게 해준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세상을 해석하는 눈.
즉, 안목이 조금은 달라졌다고 느낀다.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PM, 브랜딩, PT 등 "소프트 스킬"에 큰 강점이 있음을 다시 깨닫게 되었고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창의적이고 전략적인 사고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디테일한 테크 지식이나 디자인 안목의 부족함을 느끼게 되었다.
예술공학부 학생은 3학년 2학기와 4학년 1학기에 걸쳐 "졸업전시"를 준비해야하는데,
편입생은 바로 다음 학기에 팀 빌딩을 해서 프로젝트에 돌입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예술+공학을 넘어서 상업적이거나 실제 사회 문제 해결에 접근할 수 있는 요소를 추가한 작품을 만들고 싶었는데, 구체적인 아이디어도 없었고 실질적으로 개발이나 디자인 역량의 부족함을 느꼈기 때문에 추가적인 학습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렇기에 작년에 인터뷰에서 불합격한, 애플 디벨로퍼 아카데미에 재도전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