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매장에서 배운 것, 말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였다
전역 전후로, 9월부터 11월까지는 말 그대로 실패의 연속이었다.
면접에만 수차례 도전했지만 매번 불합격 통보를 받았고,
외향적이던 성격에도 조금씩 변화가 찾아왔다.
말수가 줄고, 자존감이 눈에 띄게 낮아졌고,
면접장 앞에서조차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스스로에게 의문이 들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할 수 있는 일은? 내 자리는 없는 것인가?
돌이켜보니, 문제는 간단했다. 나의 말하기 방식. 서류전형은 통과하지만,
막상 대면했을 때 상대에게 신뢰를 주는 대화 능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긴장을 상당히 많이 했고,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았을 때 너무 흥분해서 이상한 말을 뱉기도 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욕심을 잠시 내려놓고, 실전에서 말하기를 다시 배워보자.
그렇게 시작한 곳이 바로 집에서 가까운 프리미엄 매트리스 매장이었다.
이유는 크게 세가지가 있었는데,
첫째, 실전 말하기 감각과 세일즈 피칭 능력을 기르고 싶었고,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편안한 잠자리를 위한 컨설팅이라면,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셋째, 솔직히 말하자면, 나 자신도 매트리스에 진심으로 궁금했다.
도대체 얼마짜리를 사야 건강하게 잘 수 있는 걸까?
어쨌든, 내가 일하게 된 곳은 단순 판매를 넘어,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을 듣고,
수면 습관을 파악해 수십만 원부터 수백만 원대까지 매트리스를 제안하는 곳이었다.
고객 응대 수준이 매우 높기로 유명한 쇼룸이었다.
첫 출근 날, 손님에게 말을 거는 것조차 버거웠다.
침대 용어도 낯설고, 제품도 생소했고,
무엇보다 내 말에 신뢰를 얻을 수 있을지 스스로도 확신이 없었다.
첫 일주일은 제품에 대한 학습과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는 방법에 대한 셀프 스터디를 진행했다.
최대한 빨리 적응해서 매장 운영에 기여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나는 주로 혼자서 셀프스터디를 하기보다 빠르게 응대 수준을 높이기 위해 롤플레잉을 자주 연습했는데,
“너무 딱딱하다”, “예의 바른 건 알겠는데 너무 로봇 같다”는 피드백을 자주 들었다.
말투를 부드럽게 바꾸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했다.
첫 1~2주간은 갓 전역자의 티를 지우는 게 급선무였다.
그래도 다행히, 쇼룸의 공기와 고객들의 미소 덕분에 나는 생각보다 빠르게 재사회화에 성공했다.
가장 부담이 되었던 것은 내가 부족한 응대를 했다가,
구매하러 온 고객이 지갑을 열지 않게 될까봐 두려웠다.
하루하루 고객을 마주하며, 나는 다시 입을 열기 시작했다.
무작정 말을 많이 한다고 설득이 되는 게 아니라는 걸 배웠고,
상대가 진짜 궁금한 것을 찾으려면 묻기보다 듣는 게 먼저라는 걸 체득했다.
또한 일을 하며 알게 되었다.
매트리스를 구매하는 것은 생각보다 더 특별하고 소중한 경험이라는 것.
나도 지금까지 매트리스를 구매한 적이 없었지만,
주 고객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새로운 시작을 위해, 혼수를 위해 매장을 찾거나
아이를 위한, 부모님의 편안한 잠자리를 위한, 혹은 자신의 허리 건강을 위한 등
정말 다양한 이유로 찾아오는 사람들이었다.
이 특별한 순간을 최대한 만족스럽고 행복한 경험으로 만들어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프로처럼 행동하되, 진심을 다해 응대하기 위해 노력했고,
스스로도 꽤나 만족스럽게 일할 수 있었다.
말을 잘한다는 건 유창하게 말하는 게 아니었다.
상대가 신뢰할 수 있도록 ‘공감’과 ‘정보’ 사이의 균형을 잡는 일이라는 걸 비로소 알게 됐다.
짧은 시간 안에 고객에게 진심으로 공감하고,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궁극적으로, 고객의 신뢰를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2개월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나는 9천만 원이 넘는 매트리스를 판매했다.
농담처럼 매니저 전환 제안도 받았다.
물론 나는 돌아가야 할 길이 있었기에 웃으며 거절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참 많은 위로가 되었다.
어쩌면 내가 회복하고자 했던 건 말하기 능력보다도,
다시 사람 앞에서 나를 믿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매트리스를 바꿔야 할 친구가 있다면, 내가 무료로 상담해 줄 의향이 있다.
그 시절 내가 배운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정보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