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함보다 중요한 것, 경험
군 복무는 생각보다 훨씬 고됐고,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사실 나는 처음엔 카투사를 지망했었다.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외국살이’였고, 복무 중 영어 회화를
자연스럽게 연습하며 외국인 친구도 사귈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다른 국적의 군인들과 함께 생활하는 경험 자체가 특별할 것 같았고…
조금은 유치할지 모르지만, 미스터 션샤인 속 유진 초이가 참 멋있게 느껴졌던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사실은, 그 시절 군 복무를 기다려준 연인이 있었다.
카투사는 외출이 잦고, 집과 가까운 부대에 배치될 확률이 높다 보니,
그 선택엔 어쩌면 ‘사적인 바램’도 살짝 스며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카투사는 일정 토익 점수 이상이면 이후엔 말 그대로 '운'으로 결정된다.
나는 그 확률 싸움에서 탈락했고, 생각보다 큰 좌절을 느꼈다.
군대라는 틀 안에서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없다는 사실은
마치 ‘운명이 나를 걸러낸다’는 느낌처럼 다가왔고,
별것 아닌데도 왠지 모르게 자존심이 상했다.
그렇게 육군 훈련소에 입소했다.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과의 생활이 처음엔 꽤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운 좋게도 개성 있고 따뜻한 분대원들을 만나게 됐다.
입대 당시엔 군 생활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지만,
그들과 함께 지내며 자연스레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개인 정비 시간에 교재를 읽고 우리를 이끌던 분대장,
전역 후 삶에 대해 깊이 이야기 나누며 함께 미래를 상상했던 전우,
하루도 빠짐없이 훈련소 생활을 기록하던 성실한 친구,
전우들의 체력 단련을 도와주던 강인한 동기까지.
물론 지금 생각하면 약간의 미화도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들과 함께했던 시간은 진심으로 소중했다.
우리는 결국 ‘최우수 분대’로 수료했고,
나는 이때 만난 전우들의 태도에 깊은 인상을 받아 자대에서도
‘최선을 다해 군 생활을 해보자’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그렇게 자대에 배치된 곳은 경기도에 위치한 특수부대였다.
복무 중 무려 4주간의 야외 집중 전술훈련을 두 차례나 다녀왔다.
간부들에 비해 훈련 강도는 매우 낮았지만,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나를 깊이 시험하는 시간들이었다.
일과 시간 외에는 비교적 편한 환경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어떤 조직이든 ‘편하다’는 말 뒤에는 늘 불합리한 구조가 따라왔다.
크고 작은 부조리들. 차마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억울함과, 말이 통하지 않을 벽들.
개개인의 잘못은 없었다. 다만 우리 집단의 구조적인 문제가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그 안에서 나는 편안히 잠을 자기 어려웠고, 그 대신 매일 책을 폈다.
잠을 줄이고, 책을 읽고, 공부하고, 써보고, 생각했다.
그 시절만큼 몰입해서 자기 자신과 시간을 쌓아올린 적이 또 있을까?
시간은 흘렀고, 나는 매일 조금씩 달라졌다.
ADsP 자격증을 취득했고, 틈틈이 블로그를 시작했다.
군대 안에서도 ‘세상과 연결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블로그를 키워보기로 했다. SEO, 키워드 분석, 콘텐츠 전략.
혼자서 공부하며 하나하나 시도해봤다.
그 결과, 100건이 넘는 바이럴 마케팅, 기자단, 협찬 활동을 할 수 있게 됐다.
기회는 늘 작은 시도에서 시작된다는 걸 이때 처음 체감했다.
그런 흐름은 인스타그램으로도 이어졌다.
인스타그램 채널을 운영하며 콘텐츠 방향을 고민했고,
마이크로소프트 Xbox 대외활동에서는 우수 크리에이터로 선정되었다.
그러면서 점점, 나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해 더 선명하게 알게 되었다.
전역이 가까워질 무렵, 진로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군대 안에서도 상담병, 분대장 역할을 맡으며
“나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에 꽤 강점이 있구나”라는 확신이 들었다.
세일즈, 영업관리, 마케팅.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가치를 연결하는 직무들.
그게 나와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도전했다. 전역 전 2달 동안 말년 휴가를 활용해서 최선을 다해 구직활동을 하였다.
1학년 때는 30곳 넘게 지원해서 전부 떨어졌던 나였지만,
이번엔 달랐다. 몇몇 괜찮은 회사들에서 면접 제안을 받았다.
그 무렵, 내 인생에서 특별히 가장 일하고 싶었던 기업이 있었다. 바로 '애플'이었다.
애플의 영업관리 포지션에 풀타임 계약직 공고가 올라왔고, 나는 주저 없이 지원했다.
인터뷰 기회를 얻게 되었고, 그 준비 과정에서 이전과는 다른 감정을 느꼈다.
대학교에 진학하며 가졌던 다짐, 첫 인턴십에 도전하며 절실하게 노력했던 그 마음보다 더 간절했다.
이번엔 꼭 이 회사에서 일하고 싶었다.
모든 일을 제쳐두고 2주 동안 면접 준비에 몰두했다.
일하게 될 장소를 네 차례 방문하며 현장의 공기를 느꼈고,
링크드인으로 현직자들의 프로필을 찾아 분석했으며, 직접 컨택해 인터뷰를 시도하기도 했다.
면접 당일, 준비했던 모든 것을 쏟아냈다. 면접관들의 좋은 반응도 확인할 수 있었다.
생애 가장 잘 본 면접이었다는 확신이 들었지만,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인상은 좋았지만, 결국 직접적인 업무 경험의 부재가 가장 큰 문제였던 것 같다.
좌절하진 않았다. 늘 그랬듯, 약간의 실망은 있었지만
나는 ‘더 많은 도전’이라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전역 후에도 다양한 기업에 도전했다.
토스증권, 토스플레이스 등 유망한 핀테크 기업들,
그리고 여러 다른 직무에도 면접을 봤지만, 결과는 모두 같았다.
나는 지원을 멈추고, 나의 문제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혹시… 내 말하는 방식이 부족한 걸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나는 곧장 움직이기 시작했다.
집과 가까운 곳에서, 말하는 법과 설득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전문적인 판매, 프레젠테이션, 고객 응대가 포함된 실전 현장.
나는 다시, 현장으로 들어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