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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무스펙 1학년, 인생 첫 인턴십

태도와 시간 관리를 배우다

by Cotter
영화 인턴.jpg 내 인생 최애 영화 중 하나인, "The Intern"

이력서를 처음 쓴 건, 대학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물론 당장 활용할 계획은 없었다. 단지 나라는 사람을 한 번 정리해보고 싶었다.


처음엔 적을 게 정말 없었다.
학력과 운전면허증을 입력한 뒤, 호기롭게 엉터리 자기소개서를 붙였다.

나의 의외성은, 그 ‘무스펙’ 상태에서 소위 말하는 ‘서류 난사’를 시작했다는 데 있다.


인턴이든, 파견직이든, 어떤 형태든 상관없었다.

그저 실제 현업에서 일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30군데 정도는 지원했던 것 같다.


지금 돌아보면 조금 민망하다. 어설픈 이력서 한장과 한 줄짜리 자기소개서.

자격증이나 흔한 아르바이트 경력도 없었다.


지금이야 ChatGPT가 도와주고, 다양한 플랫폼에서 멘토링을 받을 수 있지만

나는 맨땅에 헤딩하며 엉망인 서류를 제출한 뒤 연락이 오지 않는다고 속상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무모한 용기’만큼은 지금의 나도 꽤 대견하게 느껴진다


거의 포기할 무렵, 국가지원 인턴십 사업이 있다는 정보를 접했다.

창업 계획서 작성부터 기업 매칭까지, 전부 직접 준비해야 하는 까다로운 프로그램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경쟁률이 낮을 것 같다는 생각 하나로, ‘2021 농식품 벤처창업 인턴제’에 지원했다.


애초에 나는 기업가 정신을 기르고, 언젠가 "나의 비즈니스"를 일굴 생각에 경영학과에 진학했으니

떨어지더라도, 창업에 대한 프로세스를 경험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라는 생각 뿐이었다.


서류, 면접, PT 발표까지 준비하면서 나는 비로소 내 삶의 방향에 대해 조금씩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엉터리 발표문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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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심사에 통과한 뒤, 매칭 기업을 선택해야 했다.

말이 좋아 선택이지, 기업에서 거절하면 해당 사업에 참여할 수 없는 구조였다.


여러 기업 중 나는 한 벤처 IT기업을 선택했다. AI 기반 스마트 축산 기술 개발로 사업에 참여한 회사였다.

당시로선 아주 낯선 산업군이었지만, 그래서 더 흥미로웠다.


내가 점찍은 그 기업은, 남들 눈에도 좋아 보였는지
해당 사업 안에서 경쟁률이 가장 높은 곳 중 하나였다.


지원한 회사의 블로그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고,
그곳의 문화와 일하는 방식을 상상하며 면접을 준비했다.


이때부터 나는 스스로 Why?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왜 나는 이 조직에서 일하고 싶은 걸까?
이 경험이 나에게 어떤 성장을 가져다 줄까?
이 직무 경험이 실질적으로 어떤 도움이 될까?


아무튼, 면접은 특이했다. 대표가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대표에게 질문을 던지는 ‘역질문’ 형식이었다.

아무도 말하지 않을 때,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들고 질문을 시작했다.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스펙이 부족해도, 생각을 먼저 꺼내는 사람이 주도권을 쥐는구나."

결국 나는, 나보다 학력도 높고 경험도 많던 지원자들을 제치고 합격했다.


입사 이후, 처음엔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 갓 1학년을 마친 학생에게 맡길 수 있는 일이 없었고,

벤처기업 특성상 직원들은 모두 각자의 일로 바빴다.


나는 조용히 출근해 어깨너머로 일하는 방식을 관찰했다.


정해진 일이 없어도 남아서 야근을 함께하며

단순 반복 업무라도 능동적으로 맡아서 수행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점점, 아주 작은 업무들이 내게로 오기 시작했다.


초반엔 보조적이고 단순 반복적인 업무 위주를 수행했다.

미팅에 참여해서 한마디도 하지 못한 적도 있고,

기본적인 문서 작업이나 서류 작성을 하기도 했다.

나보다 유능한 사람들을 서포트하며 배우는 것도 많았다.


그리고 그 일들을 성실히 해내자, 그다음엔 조금 더 큰 일이 맡겨졌다.

그렇게 나는 '일'이라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때 실력만큼이나 태도가.

아니지,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회사는 AI 신뢰성 검증 기술을 개발하고, 중소기업에 컨설팅을 제공하기도 했다.

어느 날부터 나는 앱 개발 프로젝트에 투입되었고, UX/UI 프로토타이핑 업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좋은 사용자 경험’이란 무엇일까?

그 질문을 풀기 위해 수십 개의 앱을 직접 설치하고 분석해보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단순히 기술을 아는 것보다 ‘사용자의 마음을 이해하는 일’이 훨씬 어렵다는 걸 느꼈다.


또한 자료 조사도 참여한 경험이 있는데, 정성적인 자료는 비교적 쉽게 모일 수 있지만,

결국 정량적인 데이터로 바꾸어야 설득이 쉽고, 검토하는 사람도 이해하기 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현업에서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기술과 예술이 결합된 기획자"가 되어야겠다는 막연한 결심이 생겨났다.


그 3개월은 인생에서 가장 바빴고, 가장 많이 배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많이 흔들렸던 시간이었다.


“대학교에서 성실하다고, 실무까지 잘할 수는 없구나.” “이론만으로는 부족하구나.”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 그걸 인정하는 데엔 용기가 필요했지만, 그때부터 진짜 배우는 마음이 생겼다.


더 넓은 세상에 나가기 위해, 나는 더 많이 부딪혀 보기로 결심했다.

학교로 돌아가 학사 앱 프로토타이핑을 하기도 했고, 다양한 대외활동에도 참여했다.

무스펙 인턴이, 스스로의 스펙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2학년이 되자, 팀 프로젝트 과목들이 늘어나며 많은 학우들의 의지가 점점 꺾여갔다.

시간 부족이나 팀원들을 핑계로 학점을 타협하는 경우도 많았다.

사실 시간이 부족하다면, 그것은 시간을 관리하는 능력이 부족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나는 인턴십을 통해 이미 '시간을 쓰는 방식'에 대해 큰 훈련을 받은 상태였다.

무임승차자나 빌런이 있는 팀에서도, 프로젝트 전체를 관리하고 조율하는 능력이 생겼다.


내 방식대로 일정을 쪼개고, 리스크를 줄이며, 끝까지 과제를 밀어붙일 수 있었다.


그 결과, 모든 팀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고,

2학년 2학기까지 평균 학점 4.48의 학과 수석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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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군 입대를 앞두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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