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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밀 Sep 07. 2023

자만에 대하여

23-08-16

시르사아사나


#자만

‘자만’이란 키워드를 얻었다. 최근에 내가 느낀 자만은?



요가를 새로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시르사아사나(머리서기)를 해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이 동작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대단했나면 올해 초에 시르사아사나를 주제로한 일기가 몇 개나 된다. 그 중 하나를 공유해본다. 



[23년 1월 18일]


요가에서 매끄럽게 해냈던 동작 하나가 요즘 잘 안된다. 감을 조금 잃었달까. 몇 달간 열심히 노력해서 만들어낸 자세인데 속상하다. 왜 그런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마음이 너무 급하다. 


'이 동작 이제 완전 가능가능이지~~~홀롤롤' 

부끄럽지만 이렇게 가벼운 생각이 들며 기본 단계가 무너진 것 같다. 처음 배워 갈 시기에는 모든 스텝 하나하나 차근차근 엄청 집중해서 밟아 올라갔는데, 지금은 무사안일하게 소홀히 대하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매끄럽게’ 해냈다는 것도 기쁨에 얼큰히 취해버린 나의 주관적 판단이다. 얼마나 했다고 참 오만하다 오만해, 사람의 마음이란. 선생님이 말씀하셨듯 초심자의 마음가짐을 홀대하지 말지어다. 다시 돌아가 천천히 중심을 잡도록 하자. 아둥바둥 집착을 버리고 순간의 균형을 만드는 데 집중하자. 모든 문제의 이유는 내 안에 있다. 답도 내 안에 있다.




‘자만’은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 그렇다면 내 안의 자만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가. 지금 떠오르는 생각은 ‘욕망’이다. 채울 수 없는 욕망에 대한 결핍이 자만심으로 발현되는 것 아닐까?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망 또는 타인과 나를 비교하며 우위에 있고 싶어하는 욕망. ‘시르사아사나’는 소위 많은 요가 초보자들이 욕망?하는, 요가를 ‘잘하는 것 처럼 보이는’ 동작 중 하나다. 나에게도 이런 인정욕이 아예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내 몸을 거꾸로 세우는 이 동작을 기꺼이 해내면 초짜 딱지를 빨리 떼어 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빨리 성장하는 모습을 선생님께 보이고 싶었고, 우왕자왕하는 초짜 회원들 사이에서 우쭐하고 싶은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지난 일기에서 알 수 있듯 아사나를 어찌저찌 해낸 내게 경박스러운 만족감이 깃들 때 즈음, 다시 몸을 오래 지탱하기 어려워졌다. 당연히 잘 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내 안에 집중하는 대신 바깥 시선에 집착한 것이 이유였던 것 같다. 흐트러진 집중에 호흡이 깨지고 중심을 잃는다. 잘못된? 욕망의 결과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보니, 시르사아사나는 꾸준히 수련하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동작이란 걸 알게 되었다. 각자의 신체에 따라 조금 더 빨리 해내고 아니고의 차이일 뿐이다. 게다가 시르사아사나 이 한 동작을 해내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다. 50-60분 가량의 (빡센) 아쉬탕가 후 남은 체력으로 이 아사나를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아쉬탕가를 하는 동안 전체 아사나에 힘의 균형을 맞추고 분배하는 것, 즉 나는 수련의 본질을 놓치고 있었다. 이제와 생각하면 이 아사나 하나에 집착해 잠시 우쭐했다 또 다시 울적했다 했던 내 자신이 부끄럽다. 

지금도 내 시르사아사나는 완벽하지 않고, 내가 안되는 동작들을 척척 해내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다. 아픈 무릎 때문에 움직임에 제약이 생기면 욕심을 부리고 싶을 때도 가끔 있다. 이 순간 더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나도 이거 할 줄 안다고 뽐내고 싶어서. 하지만 이건 어리석은 집착이고 자만이다.

온전하게 내려 놓지 못한 인정욕과 자만. 수련하는 내내, 어쩌면 사는 내내 마주해야 할 내 모습이다. 자만은 본질을 잊게하고 기본을 무너뜨리며 나를 다치게 한다. 타인을 통해 나를 바라보는 것은 무의미하다. 매트 위에는 나 홀로 서있을 뿐이다. 그 날의 내 몸과 마음, 호흡에 집중하는 것이 옳다. 


살면서 다른 누군가를 통해 나를 채우고자 하는 감정을 느낄 때, 매트 위에 홀로 서있는 내 모습을 상상해보려 한다. 내 호흡에 집중하며 수련하는 나. 그리고 내 옆에 알록달록 다양한 매트 위의 다양한 사람들. 누군가는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앉아 있기도, 누워 있기도 하다. 각자의 호흡에 맞춰 나아간다. 나는 지금 내게 허락된 범위 안에서 나만의 속도로 성장해 나가면 된다. 꾸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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