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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밀 Oct 30. 2023

사량도의 마지막 밤, 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

23-10-04


사량도로 떠나오기 전 아빠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이 있었다. 아빠를 사랑하기보다 미워했던, 품어내기보다 밀어내기 바빴던 내 지난 시간을 안아주고 토닥이고 싶어 집을 떠나왔다. 아빠를 미워하는 마음을 다 지웠다거나, 다른 방식으로 나를 힘들게 하는 엄마를 완전히 극복해 낸다거나, 그런 힘을 새로이 지니고 집으로 돌아가진 못한다. 나는 또 내가 가져야 할 번뇌와 책임 사이에서 이리저리 헤맬 것이며 때론 분노하고 다시 체념의 길로 들어설 것이다.


어쩌면 집에서 도망쳐 나온 이 여행에서 내가 찾은 답은 없다. 사람들과 웃고 떠들고 동네 개들과 인사하며 시간을 보내다 이따금 섬이 내어주는 근심 없는 이 계절을 들여다본다. 잔잔히 그리고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을 아쉬워한다.

사량도에서의 마지막 밤. 이번 여행을 위해 골라온

책 <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을 읽으며 작가들의 다양한 유년시절을 엿본다. 나의 유년시절과 그 이후의 시간이 빚어낸 지금 내 안에 일어난 균열과 흔들림을 마주한다. 그리고 내 안에 이는 미움과 원망이 가라앉은 후의 맑게 떠오르는 새로운 세계를 상상해 본다. 그때의 세계를 긍정하며 더욱더 단단해진 나는 또 다른 균열을 지닌 채로 멀지 않은 이 섬을 또다시 찾을 것이다.


그때 여긴 어떤 계절을 지나고 있고 나는 어떤 꿈을 품고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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