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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밀 Oct 26. 2023

인연들에 친절하며 나를 사랑하기를

23-10-01




두리가 살아온 삶이 헛되지 않았다.

두리가 자기도 모르게 뿌린 씨앗들이

두리가 쓰러졌을 때 이미 버팀목이 되었으므로


우리의 삶에 우리가 걸어온 걸음 중

헛된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인연들에 친절하며 나를 사랑하기를


다음 웹툰 <도토리 문화센터> 마지막 화 베스트 댓글 중 *by de





추석이다. 부산에 내려온 오빠야가 넌지시 농담처럼 말했다. 아빠가 아무리 철이 없더라도 너무 매정하게 굴지 말라고. 돌아가시고 나서 후회할 거라고 말이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면’

그때의 내 마음을 미리 들여다볼 때가 많다.

보고 싶다, 그립다는 말보다 내가 가질 후회스러운 마음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나도 알고 있다. 나의 냉정한 말들이, 행동이, 시선이 아빠를 내몰고 외롭게 만드는 것. 그 외로움을 알면서도 외면하는 나. 늘 딸을 짝사랑하는 아빠는 예전처럼 다가오지도 못한다. 굳게 닫힌 방문을 별일 없이 두드릴 수도 없다.


여전히 아빠에게 애증을 느낀다. 그의 어른답지 못함과 이기적임에 한심함을, 때론 분노도 느낀다. 그래도 이 낮은 마음이 또 다른 낮은 마음을 불러 모으지 않게, 눈덩이처럼 불어나지 않게, 조금은 친절한 딸이 되어 보려 한다. 아빠의 외로움을 알면서도 모른척했던 내가 미워 너무 많이 울지 않도록 말이다.   


나와 다른 삶, 다른 시대를 살아온 이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면 차라리, 차라리 동정심으로 그의 노년을 받아들이길. 영원히 나를 사랑해 주는 아빠 그 한 사람으로서만 바라보려 애쓰고, 내가 잊고 있던 그의 사랑을 곱씹어 감사하길. 같은 크기의 마음으로 답할 순 없어도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을 떠올리며 기꺼이 용서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길.


아빠가 헛되이 살아온 시간에, 그 결과로써의 지금의 삶에 더 이상 분노하지 않는 것. 더 이상의 것 또한 기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지금을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내는 것.


때론 진심이 아닐지라도, 나를 힘들게 하는 마음이 또다시 차오를지라도. 이게 모두를 위한 길이며 내가 무너지지 않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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