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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밀 Nov 01. 2023

주는 것에 서툴지 않은 사람

23-10-26

학생이 직접 만든 행주를 친구네 꽃집에 맡겨두셨다며 찾아가라고 하셨다. 마침 공강도 길고 날씨도 좋아 그 앞 정원에서 일할 겸 꽃집에 들르기로 했다. 꽃집에 줄 베이글을 사면서 내 것도 하나 더 샀다. 빵 값이 너무 비싸다 생각했다. 당장 빵을 가져갈 수 없는 학생에게 드릴 선물도 따로 준비해 맡겨놓고 싶은데 생각만 하다 답을 못 찾고 결국 빈손으로 왔다.


꽃집에서 선물을 찾아왔다. 와, 행주가 이렇게 예쁘고 귀여울 일인가. 심지어 보드랍기까지 하다. 요가할 때 수건으로 써야겠다. 그리고 예쁜 그림책 하나가 함께 있다. 선물을 자주 챙겨주시는 이 학생은 절대 하나만 주신 적이 없다. 학생에게 보답으로 무엇을 줄지 다시 고민한다.    


이 학생에게서 항상 ‘주는 마음’에 대해 배운다. 이분은 내 기준 ‘기버(Giver)’에 속한다. ‘주는 행위(Giving)’ 자체가 삶에 자연스럽게 배어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크고 작은 것이든 잘 주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내 안에 초라한 마음을 마주한다. 먼저 주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먼저 받고 나서 줄 것을 생각하는, 한마디로 계산적인 나.


지금 가진 것에 관계없이 좀 더 너그럽고 여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돈을 조금 더 잘 벌게 되면, 조금 더 넉넉해지면’ 이런 식의 조건을 붙이지 않고 지금 형편에 맞게 먼저 주는 사람말이다.


여기저기 신세를 많이 지고 산다. 하루하루가 소중한 이 가을날, 살랑이는 바람을 뒤로하고 일터로 돌아가는 이유를 생각해 본다. 받은 것에 최선으로 보답하기 위해서, 주는 것에 서툴지 않기 위해서. 이것이 먹고사는 일 위에 있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에게 꼭 필요한 마음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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