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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밀 Nov 02. 2023

재미있게 사는 것이 꿈

23-10-30 (1)


월요일 아침, <OOO 서점>에 오다.


가보고 싶은 곳 리스트에 한동안 올라 있었던 서점이다. 오늘 아침 남자친구집에서 함께 나와 시내에 볼 일이 있던 오빠가 나를 근처 버스정류장에 내려줬다. 원래는 A번 버스를 타고 집으로 곧장 갈 생각이었으나, 정차 중인 OO행 B번 버스를 발견하고 냅다 뛰어가 올라타버렸다. OOO 서점에 가보자, 하고. 일단 타보고 중간에 마음이 바뀌면 내려서 환승할 생각으로 말이다. 그렇게 나는 OO번 종점 부근에 위치한 서점 창가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매력 있는 공간이지만 완벽하진 않다.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창가에 자리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내 앞 건물에 빛이 가려버렸고 실내 에어컨 온도도 내겐 너무 낮아 살짝 춥게 느껴진다. 따뜻한 소이라떼와 사과브리치즈 오픈 샌드위치를 주문했는데, 샌드위치가 달아도 너무 달다. 생사과의 아삭함과 상큼함을 기대했으나 당수치가 폭발할 정도의 절임사과가 올려져 있다.


그래도, 괜찮다. 독서와 글쓰기를 편히 할 수 있는 공간을 고요히 내어주는 곳이다. 게다가 라떼를 좋아하지만 유당불내증이 있는 내게 두유라떼를 마실 수 있는 선택권이 있는 곳이고 모든 드립커피는 산미가 강하다고도 언뜻 들은 것 같다. (나는야 산미 폭발 커피 애호가) 게다가 술도 판매하는 곳이라 내가 사랑하는 책맥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또다시 찾아올 법한 곳이다.


사실 오늘 이곳에 올까 말까 어젯밤 고민했다. 결국 순간의 충동적 선택의 결과로 충만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런 경험을 할 때마다 '할까 말까' 망설였던 그 시간의 무색함을 느낀다. 행동으로 옮긴 결과에 만족했던 경우가 훨씬 더 많았으며 결코 만족스럽지 않았더라도, 지금은 잘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무던히 흘러간 기억 중 하나가 되어 남는다.


나는 보기와 다르게 조심성이 많은 사람이다. 새로운 변화와 재미를 좇지만 동시에 안정감도 누려야 하는 모순에 시달린다. 위험부담을 지는 것이 두려워 쉽사리 도전하지 못한다. 마음속으로는 더, 더 해봐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행동으로 밀어붙이지 못할 때가 많다. 게다가 너무나 시작에 게으른 성격이랄까. 시작을 마음먹은 지는 오래이나 꾸물거리고 있는 일 한두 가지쯤은 언제나 품고 산다.


물론 지금 마음에 품은 그 일들과 이깟 서점 하나 올까 말까 하는 일과는 비교할 수 없다. 하고 나서 내가 감당해야 할 것들의 수준이 다르다. 그러나 그 차이만큼 재미도, 성취감도 비교할 수 없이 클 것이다.


재미있게 사는 것이 꿈이다. 혼자 있을 때도 함께 할 때도, 일도 사랑도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재미를 잃지 않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부담이 커도 ‘재밌었다’고 기억되는 일들은 또다시 시도해 볼 만한 용기를 만들어주는구나. 하고 싶은 일 앞에서 더 과감해져도 될 것 같다. 재미란, 부담이란 장애물마저도 도전 정신으로 만들어주니까." @shunyoon


마침 어제 인스타에서 마주친 말이다. 가을의 끝 그리고 올해의 끝에 가닿은 시점에서, 좀 더 과감해져 보라고 내게 말한다. '재미있는' 기억을 더 많이 만드는 용기 있는 내가 되어보라고 꼬드긴다. 그 꼬드김에 술-렁 넘어가주기만 한다면, 한층 더 (피곤하지만) 재미있는 삶을 살고 있겠지?

 


+) 글을 마치고 입이 달아 서점에서 내어 놓은 물을 컵에 따라 마셨다. 내가 좋아하는 차가운 보리차다. 고소한 맛에서 책방지기의 세심한 마음과 환대가 느껴진다. 달았던 입이 씻기는 것 같다. 차를 마시며 생각한다. 이런저런 도전 후 찾아올 쓴맛의 순간에도, 이런 뜻밖의 보리차 한 모금 정도는 주어지지 않을까-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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