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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밀 Nov 03. 2023

가을 나그네의 하루

23-10-30 (2)


저녁 6시, 다시 찾은 <OOO 서점>에서


정오 즈음 방문한 서점에서 글을 쓰고 책을 읽다 3시 즈음 자리를 정리하고 나왔다. 방문객이 많아지기도 하고 슬 허기도 졌다. 얼마 전 학생이 인생 최고의 국밥이었다며 찬사를 보냈던, 마침 15분 거리의 돼지국밥집으로 향했다. 난 언제나 순대+고기국밥 파인데, 오후 4시 즈음 사람이 바글바글한 가게에 'Best'라 적힌 가장 비싼 국밥이 먹어보고 싶어졌다. (주변 손님들을 보니 수육백반을 가장 많이 시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기름기가 많은 고기 부위라 조금 느끼하긴 했지만 밥 한 공기 말아 국물까지 거의 다 먹었다. 국물맛이 구수하니 좋았다.


속도 느끼한 김에 해가 지고 다시 서점으로 가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어야겠단 생각을 했다. 같은 곳을 하루 두 번이나 방문하다니, 조금 웃기지만 밤이 내려앉은 책방의 모습이 궁금하기도 했고 조용히 술을 마시며 혼자 있을 수 있는 다른 공간은 없을 것 같았다. (주변에 카페는 많지만 꼭 술이어야 했고 맥주면 더 좋았으니.) 어떤 글이든 쓸 수만 있다면, 글이 잘 써지지 않으면 읽던 책을 다 읽고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었다.


국밥을 먹고 정말 배가 터질 것 같아 좀 걸어야겠다 생각했다. 날씨가 선선해 걷기 좋았다. 이대로 집까지 걸어갈까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반대로 향했다. 해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걸어야 했지만 오늘은 그냥 하고 싶은 것들을 망설임 없이 해보는 날이었기에 (어느덧 그렇게 결심했기에) 책방을 목적지로 하여 근처 걷고 싶은 길을 따라 쭉 걸었다. 조용한 골목길로 들어섰다. 낯선 동네가 아님에도 뒷골목으로 들어오니 처음 보이는 길들이 이어졌다. 외투를 살짝 벗어도 될 만큼 날씨가 좋았다. 혼자 이렇게 걷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이런저런 잡생각이 이어졌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운 좋은 올해의 가을, 더 추워지기 전에 혼자 서울에 가서 이렇게 이곳저곳 걷다 올까 싶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정말로 치앙마이행 티켓을 끊어야 하나,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엄마아빠가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동남아여행을 다 같이 한번 가야 하는데 나 혼자 훌쩍 다녀오면 미안하겠지 싶었다.


골목길의 끝 코너를 돌며 이제 그만 서점으로 돌아가볼까 하는 순간, 웬 절 입구가 보였다. 일이 년 전 엄마랑 차를 타고 가본 곳이다. 배도 조금 더 꺼트릴 겸 해지는 하늘이 잘 보일만한 곳이라 냉큼 올라갔다. 역시 사람 없는 평일 최고다-하며 향냄새도 맡고 부처님께 기도도 드렸다. 종교가 없는 내게 기도란 결국 나 자신에게 보내는 메시지이자 다짐이다. 평소 찾지도 않던 부처님께 갑작스레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안녕을 바라는 것은 염치가 없으니 나만 잘하면 될 일이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 내려와 책방으로 왔다. 비싼 맥주도 시켰다. 아까와 같은 곳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다시 오길 잘했다 싶다. 앞으로 자주 찾을 만한 좋은 공간을 알게 되어 기쁘다. 딱 한번 가보았던 '책바'가 있는 서울이 항상 부러웠는데, 책바 못지않은 오히려 낮과 밤 둘 다 즐길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의 이곳 책방이 내겐 딱인 듯싶기도 하다.


이번 주말도, 오늘도 아주 잘 보냈다. 요즘 날씨를 핑계 삼아 놀러 다니기 바쁘고 해야 할 일들도 계속 미루고 있다. 한마디로 놀 궁리만 하는, 일태기의 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 이제 진짜 얼마 남지 않은 가을이다. 추위를 극심히 타는 나니까 겨울이 오면 실내에 틀어 앉아 쌓아 둔 일을 좀 하지 않을까 바라본다. 3월에 마이솔 클래스를 어려움 없이 듣기 위해 선생님이 시킨 요가 공부도 좀 하고 말이다.


내일부턴 돈도 더 열심히 벌고, 공부도 열심히 하라는 의미에서 오늘 흔쾌히 먹고 싶다는 거 다 멕여 봤다. 힘내라 나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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