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메밀 Nov 15. 2023

'덕분에' 사람이 되는 일

23-11-15

1.

토요일 이른 아침, 한 주 치의 피곤이 쌓여있는 바쁜 직장인 학생과 완벽한 저녁형 인간인 나. 한껏 목이 잠겨 부스스한 목소리로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수업이 시작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 깔깔 거리며 활력을 찾는다. 

수업이 끝나고 카톡을 받았다.        


“쌤이랑 수업하고 나면 항상 기분이 좋아져요!”


그 어떤 말보다 날 기쁘게 하는 피드백이다. 일방적으로 한 사람만 즐겁고 재미있는 수업은 없다. 나 또한 이 학생과 시간을 보내고 나면 기분 좋은 에너지를 가득 받는다. 수업하는 내내 엔도르핀이 돌고 한편으론 마음이 편안하다. 매번 귀하고 감사한 경험이다.

날짜를 보니 어느덧 이 학생과도 수업한 지 1년이 넘었다. 이렇게 1년, 2년, 3년 함께한 학생들도 있으며, 곧 6년이 다 되어가는 학생도 있다. 이 일을 시작하고 꽤나 긴 시간을 지나온 만큼 장기 수강생도 점점 늘어난다. 새삼 이렇게 오랫동안, 한결같이 함께 공부해 주시는 학생들을 생각하면 나도 복이 참 많다 느낀다. 오랜 인연으로 지낸다는 건 서로 합이 잘 맞다는 뜻이고, 내가 어딜 가서 이렇게 결이 잘 맞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겠나(그것도 매주!). 서로의 삶에 대해 깊이 나누며 좋은 영향을 주고받을 때, 동료가 되어 진심 어린 응원의 말을 띄울 때, 진정으로 내 일에 만족과 감사함을 느낀다.          

 


2.

토요일의 두 번째 수업. 1번에서 언급한 나와 영어공부를 한지 곧 6년이 되어가는 학생이다. 안 그래도 1번 학생의 카톡을 받고 싱글벙글 기분이 좋았는데, 마침 수업시간에 이 학생도 내게 이런 말을 해주시는 거다. 


“선생님과 수업을 하기 전에는 자존감이 많이 낮았어요. 쌤이랑 영어공부하면서 자존감이 많이 회복됐어요.”


오늘 다들 나를 감동시키기로 약속이라도 한 건가...!

예전에는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주눅 들 때가 많았고 채워지지 않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주말 동안 자극적인 음식을 시켜 먹거나 밤늦게까지 드라마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영어공부에 몰두한 이후로 몸과 마음의 건강을 돌보기 시작했고 주말마다 영어 숙제하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만족스럽다며 감사하다는 말까지 덧붙이셨다. (내적 눈물 광광)

참고로 만 6년 동안 숙제를 안 해오신 적이 1-2회 정도밖에 없을 정도로 성실한 분이다. 내가 해드린 건 크게 없다. 스스로의 힘으로 쌓아 올린 자존감이다. 본인이 선택한 것들의 결과물일 뿐인데 내가 “선생님 덕분이에요, Thanks to you”라는 말을 듣는다. 

 

나 또한 이 학생 덕분에 6년의 시간을 버텨올 수 있었다. 우여곡절 많았던 나의 초짜 프리랜서 시절부터 변함없이 나와 함께 해준 학생이다. (찐의리다 의리)

예전 고등학교 한자 선생님께서 '때문에' 사람이 되지 말고 '덕분에' 사람이 되어라고 말씀하셨던 것이 생각난다. 타인에게 '너 때문에'가 아닌 '네 덕분에'라는 말을 들으며 살도록 노력하라는 의미다. 고등학교 졸업 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이 말만큼은 항상 머리에 맴돌았다. 

나는 남을 돕는 일에, 먼저 주는 일에 굉장히 서툰 사람이다. 그래도 어쩌다가 영어강사가 된 덕분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 덕분에, 그 덕에 아주 조금은 '덕분에' 사람으로 살 수 있는 것 같다. 오늘만큼은 나의 일이 기쁨 그 자체다. 

 

작가의 이전글 과거의 나와 비교하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