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8-17
미용실에서 뿌염을 하며 8월 넷째 주 먼데이 메모(매주 월요일, 학생들에게 보내는 레터)를 준비하는데, 새삼 훌쩍 지나버린 여름의 끝자락을 실감했다. 이번 여름은 유난히 더웠기에 다음 계절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을지도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왠지 모르게 가지 않았으면 하는, 보내기 아쉬운 올해의 여름이다.
봄을 가장 좋아하는 내겐, 여름은 그리 좋지도 싫지도 않은 그저 그런 계절이었다. 겨울을 싫어하고 여름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남자친구의 영향을 꾸준히 받아온 것도 있겠지만, 올해 여름 요가 수련에 대한 진한 경험이 큰 전환점인 것 같기도 하다. 절정의 더위를 맛보며 수련하는 건 쉽지 않았지만 매트 위에서 흘린 땀 그 이상의 생동하는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말로 다 설명하기에 어려운 아주 기분 좋은 에너지랄까. (느낀다. 어휘력의 한계.) 입추가 지나고 8월 중순이 되자마자 흘리는 땀의 양이 줄어들었다. 뚝뚝 떨어지는 땀을 바삐 닦아내며 다시 몰입하는 그 순간들이 참 좋았는데. 곧 가을이라니!
찬 기운이 빼꼼 고개만 내밀어도 남자친구는 투덜대기 시작한다. 을씨년스러운 무채색의 풍경이 너무 싫단다. 그럴 때마다 겨울이 있기에 여름이 더 싱그러울 수 있다고, 각 계절마다의 매력이 있은데 특히 추운 겨울의 그 특유의 냄새를 느껴보라며 겨울을 옹호(?)하곤 했는데. 나이가 들어 그런 건지, 아님 앞서 말한 대로 남자친구의 찬란하고 위대한 여름 예찬에 어느덧 물들어 버린 건지. 여며든것 같다. 나는 이제 여름을 좋아한다 말하는 사람이 되었다.
얼마 남지 않은 여름을 수집해야겠다 생각했다. 머리손질이 끝난 오후 4시 즈음, 여전히 날씨는 더웠지만 골목골목 이어진 그늘과 간간히 부는 바람에 의지해 1시간 즈음 걸었다. 드문드문 우연히 눈에 띄는 능소화가 핀 담벼락들을 찾아다니며 이번 여름 첫 능소화 사진을 남겼다. 나 요즘 그렇게 여유가 없었나? 아님 너무 차만 타고 다녔나? 비바람에도 끄떡없는 능소화 꽃잎들이 머지않아 곧 떨어질 준비를 하고 있는 게 보였다. 뭐 이렇게라도 눈에 담고 마음에 담게 되어 다행이었다. 그리고 오늘처럼 쨍한 햇살 받은 나무들 구경도 하고 뭉게구름의 파란 하늘도 더 자주 바라보며 여름의 흔적들을 모으는 시간을 부지런히 가져야겠다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만이 줄 수 있는 푸른 생명력을 만끽하며 내 안에 든든히 채워둘 수 있도록 말이다.
*보름 뒤, 코로나에 걸려 일주일 내내 집에 콕 박혀 애처로운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