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복
형통이 아닌 기쁨(joy)
2024년 11월 16일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복: 형통이 아닌 기쁨(joy)
오늘 마태복음 산상수훈의 팔복을 읽으며, 복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얼마 전 목사님께서 설교 중에 성경이 말하는 복이 세상에서의 형통이나 물질적 축복과는 다르다고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그때는 단순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오늘 말씀을 읽으며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태복음 5:3) 그 복은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부족한 상태처럼 보인다. 가난, 애통, 의에 주리고 목마름. 하지만 그 안에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로 인한 깊은 기쁨이 있다. 이 복은 단순히 "blessed"라기보다는 "joyful"에 더 가까운 느낌이다.
시편 1편에서도 복 있는 자는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고,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묵상하는 자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시편 1:1-2) 그 복은 물질적 형통이나 성공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 복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내적인 기쁨과 평안이다.
누군가 "복이란 형통한 삶을 의미하지 않나요?"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진정한 복은 재산이나 명예처럼 세상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것도 없어도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속에서 누리는 기쁨이야말로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복이다. 재산은 도둑맞을 수 있고, 명예는 잃어버릴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기쁨과 평안은 세상의 어떤 시련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예레미야서에서 하나님도 "내가 너희에게 원하는 것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라"(예레미야 29:11)고 하셨다. 그러나 그 평안은 바빌론의 침공이라는 고난을 통해서 주어진다고 하셨다. 예레미야는 1차 침공 때 항복하라고 외쳤지만, 여호야김은 이를 거부하고 죽임을 당했다. 2차 침공 때 여호야긴은 항복하여 바벨론으로 끌려갔지만, 그곳에서 왕과 같은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3차 침공을 앞두고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의 말을 들으러 왔으면서도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따랐고,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하나님이 예레미아를 통해 말씀하신 그 평안은 하냐냐가 거짓 예언한 것과 같지 않다. 바벨론의 침공이라는 고난을 통해서 주어지는 이 평안은 상황의 안전이나 형통이 아니라, 온 맘으로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온 맘으로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 그들의 기도는 마치 귀속말처럼 "살려 주세요"라고 중얼거리는 정도였다. 물에 빠진 자의 절박함으로 부르짖지 않았다. 물론 하냐냐같은 거짓 선지자가 거짓 위로를 하지 않았더라면 예레미야의 경고를 듣고 울부짖었을 수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들은 영분별을 하지 못하고 거짓 선지자의 위로를 믿었다.
나 자신을 돌아본다. 매일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예배드리며, 헌금을 한다. 그러나 내 마음이 정말로 심령이 가난한가? 혹시 바리새인처럼 "주님, 제가 이렇게 잘하고 있지요?"라고 묻고 있지는 않은가? 복 있는 자는 세리처럼 심령이 가난함을 고백하는 자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누가복음 18:13)
복 있는 자는 하박국처럼 세상의 불의와 내 안의 부족함을 애통하며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으매 주께서 들으셨나이다.” (하박국 1:2) 하나님은 그 애통에 응답하셨고, 하박국은 결국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쁨을 누렸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박국 3:17-18)
하박국의 이 기쁨은 요한복음 14장 27절과 요한복음 16장 22절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연관이 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서 에수님은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라고 하셨다. 여기서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않은" 평안은 단순한 환경의 안정이나 재산의 형통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내적인 안정과 기쁨이다. 요한복음 16장 22절에서 예수님은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라고 하셨다. 여기서 "빼앗을 수 없는 기쁨"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이 누리게 될 기쁨이자, 성령 안에서 모든 신자들이 경험하는 영적인 기쁨인 것이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은 세상이 줄 수 없고, 빼앗을 수도 없는 것이며,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 속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에서 오는 영원한 기쁨이야말로 진정한 복이므로 기쁜 소식, 즉 복음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심으로 우리 죄가 사해 지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가 복음이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에라도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있지 않으면, 구약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을 받았지만 이렇게 심판과 고난을 받는 것을 보면 진정한 복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나의 신앙생활을 되돌아보게 된다.
나도 온 맘으로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는다면, 하나님께서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과 평안을 내게 허락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때야 나는 진정한 복이 무엇인지 깊이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으로 저를 채우소서. 온 맘으로 주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저를 만나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