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델과 이사야, 그리고 은혜로 열린 회로 시스템: 이사야 28장을 중심으로
2025년 9월 3일
이사야 28:13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고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사 그들이 가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며 붙잡히게 하시리라(개역개정)
28: 13 So then, the word of the Lord to them will become:
Do this, do that,
a rule for this, a rule for that;
a little here, a little there—
so that as they go they will fall backward;
they will be injured and snared and captured. (NIV)
28:13 13 But the word of the Lord was unto them
precept upon precept, precept upon precept;
line upon line, line upon line;
here a little, and there a little;
that they might go, and fall backward,
and be broken, and snared, and taken. (KJV)
히브리 원어: וְהָיָה לָהֶם דְּבַר־יְהוָה צַו לָצָו צַו לָצָו קַו לָקָו קַו לָקָו זְעֵיר שָׁם זְעֵיר שָׁם
(베하야 라헴 데바르-아도나이, 짜브 라짜브 짜브 라짜브, 카브 라카브 카브 라카브, 제에르 샴 제에르 샴)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규칙에 규칙, 규칙에 규칙, 선에 선, 선에 선,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이라 하셨으니"
לְמַעַן יֵלְכוּ וְכָשְׁלוּ אָחוֹר וְנִשְׁבְּרוּ וְנוֹקְשׁוּ וְנִלְכָּדוּ
(레마안 옐레쿠 베카쉴루 아코르 베니쉬바루 베노케슈 베닐카두)
"이는 그들이 가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며 붙잡히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그들에게 '짜브 라짜브, 짜브 라짜브, 카브 라카브, 카브 라카브,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이라 하셨으니, 그들이 가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며 잡히게 되리라."
20세기 위대한 수학자 쿠르트 괴델(Kurt Gödel)은 인류 역사상 가장 깊은 질문 중 하나를 수학의 언어로 풀어냈다. 그는 자신의 '불완전성 공리'를 통해 "어떤 일관된 수학 체계도, 그 체계 내부의 공리만으로는 모든 참을 증명할 수 없다."와 "그 체계는 또한 스스로의 무모순성을 증명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이는 완벽해 보이는 시스템조차도 그 시스템 내부에서는 시스템 스스로를 완전하게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30대 후반에 괴델의 불완전성 공리를 접한 나는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하지 못한다"는 이 말의 의미를 괴델의 불완전성 공리와 연관시키는 여러 글을 읽게 되었고 그 때부터 괴델의 이 공리는 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40대 후반에 나는 논리학과 파이썬을 접하게 되면서 논리합과 논리곱, 그리고 전산언어의 시스템을 알게 되었다. 논리곱은 AND Gate로 그 어떤 원소 하나라도 참이 아니면 결과는 참이 되지 않는 연산 시스템이다. 오늘 이사야 28장 13절의 말씀을 읽는데, 괴델이 생각나고 AND Gate의 시스템과 율법 시스템을 연결하게 되었다.
이사야 28:5-6
5 만군의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남은 자에게 영화로운 면류관이 되시며 아름다운 화관이 되실 것이라.
6 재판석에 앉은 자에게는 판결하는 영이 되시며 성문에서 싸움을 물리치는 자에게는 힘이 되시리로다.
원래 하나님이 율법을 주실 때는 이런 의도로 주셨던 것이다. 그러나, 구약의 대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원래 뜻을 거부하고 스스로의 관점에서 율법을 변질시켰다.
7 그리하여도 이들은 포도주로 말미암아 옆 걸음 치며 독주로 말미암아 비틀거리며 제사장과 선지자도 독주로 말미암아 옆 걸음 치며 포도주에 빠지며 독주로 말미암아 비틀거리며 환상을 잘못 풀며 재판할 때에 실수하나니
8 모든 상에는 토한 것, 더러운 것이 가득하고 깨끗한 곳이 없도다
9 그들이 이르기를 그가 누구에게 지식을 가르치며 누구에게 도를 전하여 깨닫게 하려는가 젖 떨어져 품을 떠난 자들에게 하려는가(대제사장이 선지자들에게 한 조롱이라고 한다)
10 대저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되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는구나 하는도다(대제사장이 선지자들에게 한 조롱이니 곧 하나님의 말씀을 조롱한 셈이다)
'짜브 라짜브, 카브 라카브'는 원래 선지자를 향한 지도자들의 '조롱'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깊고 살아있는 말씀을, 마치 어린아이에게 말하듯 "규칙, 규칙, 선, 선..." 하고 나열하는 유치한 가르침이라며 비웃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13절은 하나님께서 새로운 저주를 내리시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신적인 아이러니이자, 그들이 선택한 시스템이 그대로 그들의 심판이 되는 '괴델의 불완전성 원리'의 영적 구현이다. 하나님께서 마치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과 같다. "너희가 나의 살아있는 말씀을 죽은 규칙의 나열('짜브 라짜브')로 조롱했느냐? 좋다. 이제 바로 그 '시스템'이 너희를 향한 나의 말씀이 될 것이다. 너희가 만든 그 닫힌 회로 안에서, 너희는 필연적으로 넘어지고 부러지게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면류관'과 '힘'이 되어주시겠다는 5절의 말씀 속 OR 게이트의 영광스러운 초대를 거부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원래 율법은 공의와 정의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말한 더 큰 차원의 자비와 긍휼, 은혜 등을 다 포함하는 것)을 공의와 정의, 정죄와 심판과 같이 모든 규칙을 지켜야만 의로워진다는 논리 회로, 즉 AND Gate로 구축하였다.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을 조롱하며 '짜브 라짜브'라는 자신들의 논리 회로 안에 가두려 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만든 바로 그 '논리 회로' 자체를 그들의 감옥이자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신 것이다.
이사야서의 "그들이 가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며 잡히게 되리라." 이 말씀은 괴델의 제2 불완전성 공리와 닮아 있다. 시스템은 스스로의 무모순성을 증명하려 하다가, 모순과 붕괴의 늪에 빠진다. 소위 구약의 율법주의, 바리새인의 율법주의는 더 많은 규칙을 만들어 내고 이에 대해 더 큰 순종을 함으로써 스스로를 '의롭다'고 증명하려 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자기 파괴적 회로가 된다. 괴델은 이 붕괴를 논리로 증명했고, 이사야는 하나님이 주신 영감으로 이것을 지적했다.
괴델의 공리는 한 가지 해결 답안을 남긴다: 외부에서 새로운 공리가 주어져야만 진리가 증명된다. 신학적으로 보면 이 해답은 바로 인간 시스템 밖에서 오신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율법은 AND로 연결된 규칙을 다 지키고 순종해야지만 의롭다고 칭함받는 AND Gate라면, 예수님은 그 중 하나만 믿어도 은혜라는 OR Gate를 재구축하신다. 그분은 우리 인간이 만든 폐쇄 회로를 열어 완전히 다른 체계로 초대하신다.
괴델이 수학으로 증명한 그 불완전성은 율법이 구원을 이루지 못한다는 성경의 반복된 선언이었다.
수학은 말한다: “체계는 완전하지 않다.”
성경은 말한다: “율법은 의를 이루지 못한다.”
복음은 선포한다: “은혜는 체계 밖에서 온다.”
오늘 이사야 말씀을 읽고 느낀 점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구약의 대제사장들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으로 그들만의 논리회로인 AND Gate를 만들었다. 그것을 믿고 따르는 자신들은 의롭다고 생각하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사정도 따지지 않고 정죄하면 죄인취급을 하였다. 그러나 수학자 괴델이 말했듯 그 체계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었다. 그들이 율법의 각 조각에서 넘어질 때 시스템 밖에서 오셔서 OR Gate로 재구축(reset)하신 분이 예수님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