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1일
창세기 16장에서 사래는 하갈이라는 애굽 여종이 아브람의 아이를 임신하고 여주인 사래를 멸시하자 아브람을 책망한다.
5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내가 받는 모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내가 나의 여종을 당신의 품에 두었거늘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나를 멸시하니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창세기 16:5)
사래가 이렇게까지 억울한 이유는 당시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경우 여종을 통해 남편의 후사를 잇고자 한 것은 이들이 충직한 종 엘리에셀이나 조카 롯을 양자로 삼을려고 하자 하나님이 아브람의 몸에서 난 자식이라야 상속자가 될 것(창세기 15:4)이라는 말씀을 믿고 진행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래의 이 말은 하나님의 약속을 인간의 방법으로 성취하려다 실패한 인간이, 고통스러운 심경을 토로하며 자신이 최선을 다한 것을 주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이를 이루려고 열심일지라도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생각에서 일을 벌인 후 뒷감당이 어려워 힘들어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우리의 모습을 사래에게서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약속은 오직 하나님의 시간과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브람은 하갈에게 들어가 후사를 낳으라는 사래의 제안을 즉각 받아들인다(창세기 16:2). 이전에도 아브람은 애굽에서 거짓말을 하는 등 인간적인 꾀를 낸 적이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브람이 아닌 사래가 낸 꾀이다. 여기서 아브람은 그 제안에 대해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그저 그 상황을 수용한다. 게다가 여종 하갈과 아내 사래 사이에 문제가 커지자 "네 여종은 네 수중에 있으니 네 눈에 좋을 대로 그에게 행하라"(16:6)라고 사래에게 모든 판단을 맡겨 버린다. 이것은 가장으로서의 머리됨을 보여주는 처사는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창세기 16장은 사래와 아브람을 언급함으로써 당시 이 가정이 얼마나 어려운 처지에 있는지 배경을 설명하며 하갈이라는 인물이 그 어느 누구의 지지도 받지 못하고 사래의 미움을 받고 살았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급기야 하갈은 이런 상황에서 주인 집에서 도망쳐 나온다.
6 아브람이 사래에게 이르되 당신의 여종은 당신의 수중에 있으니 당신의 눈에 좋을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매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사래 앞에서 도망하였더라 (창세기 16:6)
이후의 이야기는 사실상 아무런 자격이 없는 하갈을 찾아가 위로하시고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아주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나는 처음에는 하나님의 성품을 잘 이해하지 못했을 때는 사래의 편을 들지 않고 하갈을 돌보시는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때는 행간에 생략된 부분을 읽어 내지 못하였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의 중심을 보시고 일하시며 돕는 분이라는 점을 아직 알지 못하던 때여서 주인을 멸시한 하갈을 챙겨주시는 주님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은 다르다. 먼저 하갈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본처 대신에 후사를 임신한 경우, 소위 후처가 얼마나 교만해 지고 본처를 무시하고 멸시하는지에 대해서는 한나와 브닌나 이야기말고도 세계 모든 나라에서 흔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하갈도 처음에는 분수를 모르고 교만하게 행동했으리라 예상된다. 그 결과 아브람도 하갈과 아이를 보호하지 않고 사래가 그녀를 괴롭히니 힘들어서 도망쳐 나온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하갈이 이들을 원망하기 보다는 앞이 막혀 어찌할 바 모르고 울기만 하는 모습을 묘사한다. 그 낮아진 마음에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 위로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하갈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그녀를 인격적으로 대하시며 그녀의 이름을 불러 주시고 그녀가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할 기회를 주신다.
7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물 곁 곧 술 길 샘 곁에서 그를 만나
8 이르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이르되 나는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9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창세기 16:7-9)
하나님은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지어주신다. ‘이스마엘’은 ‘하나님이 들으심’이라는 뜻으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창세기 16:11)고 하신다.
10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11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창세기 16:10-11)
하나님은 하갈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찾아오신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에 심판을 내리실 때도 하나님은 이 죄악된 성읍에서 들리는 고통과 울부짖음을 확인하시겠다고 하셨다.
20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21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창세기 18:20-21)
하나님은 사래나 아브람, 그리고 먼저 사래를 멸시한 하갈을 책망하거나 심판하시지 않으시고 얽혀 있는 관계 속으로 직접 개입하셔서 바로 잡으셨다. 그런데 이 관계 속에서 가장 소외되고 고통받는 천한 여종 하갈을 먼저 찾아가 위로하셨다. 하갈에게도 이스마엘을 통한 ‘큰 민족’의 복을 약속하셨다. 이건 하갈이 이뻐서가 아니라 아브람의 씨를 통해 복을 주시겠다는 하나님 자신의 언약에 충실하시기 위해 주시는 축복이라고 생각된다. 하나님은 하갈에게 돌아가 복종하라고 명령하심으로써 무너진 가정의 질서를 바로 잡아주시고 이스마엘이 아브람의 가정 안에서 태어나도록 허락하신다.
하갈은 이런 하나님을 경험한 뒤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고 이름(엘 로이)을 붙여 드린다.
13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창세기 16:13)
언약의 하나님이 자신과 같은 보잘 것 없는 여종까지도 돌보시는 것을 경험한 한 이방 여종이 하나님께 신앙 고백을 한 것이다. 하갈이 인간 관계에서 너무 힘들어서 아무 먹을 것도 구할 수 없고 위험한 광야로 도망오자 오히려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시고 찾아 오셔서 그녀를 위로하고 아이를 축복하는 약속을 받는 은혜의 수혜자가 되는 모습이 바로 창세기 16장에 그려진 것이다.
이번에 다시 읽는 창세기 16장에서 하나님의 진정한 성품과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갈은 하나님의 위로와 복을 받을 자격이 없었다. 주인에게 잘하지도 못했고, 하나님께 잘한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고난 속에서 울부짖는 여종을 찾아오신 주님의 은혜는 우리의 행위와 무관하게 값없이 부어지는 십자가 보혈의 은혜를 미리 보여주는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