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항아리, 기억의 하나님

by 안젤라

2025년 10월 15일


기도의 항아리, 기억의 하나님: 미성숙한 기도라도, 채워진 항아리는 반드시 포도주가 된다.


[1] ‘기억하시는’ 하나님


22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

23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하고

24 그 이름을 요셉이라 하니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창세기 30:22-24)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기억하셨다(생각하셨다)’는 표현은, 잊고 계시다가 문득 떠올리셨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오랜 인내와 기다림의 시간 끝에, 마침내 하나님의 때가 되어 라헬을 향한 약속이 성취됨을 선포하는 문구이다. 하나님은 라헬의 오랜 기다림과 그녀가 드린 기도를 잊지 않으셨다. 이 한 구절은 우리 삶의 모든 부끄러움과 눈물의 시간 속에서도, 기도를 멈추지 말아야 할 이유를 가르쳐준다.


[2] 라헬, 미성숙한 기도자

솔직히 나는 오랫동안 라헬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녀는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하려 언니 레아와 끊임없이 경쟁했고, 자식을 낳지 못하는 고통을 남편에게 원망했으며, 합환채를 두고 거래하는 등 성숙하지 못한 모습을 자주 보였다. 그녀의 기도는 아마도 거룩한 비전이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언니를 이기고 싶은 질투심, 자식 없는 여인으로서의 수치심을 벗어나려는 자기 안위와 명예를 위한, 지극히 인간적인 간구였을 가능성이 높다.


[3] 그러나, 그녀는 기도했다

나는 라헬의 미성숙한 점만 보았다. 그러나 창세기 30장 구절을 통해 라헬에 대해서 놓치고 있던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발견했다. 바로, 그런 라헬도 ‘기도하는 여인’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남편의 사랑을 받지만 자녀를 낳지 못하는 문제와 부끄러움을 느끼며 자기 연민에 빠져 있지 않았다. 비록 그 동기가 미성숙했을지라도, 그녀는 가장 깊은 갈망을 하나님께 아뢰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과연 라헬의 미성숙함을 비판할 자격이 있는가. 나는 라헬이 드렸던 절박한 기도조차 매일 빠뜨리고 있지는 않은가.


[4] 기도의 항아리와 가나의 기적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기도는 허공에 흩어져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8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요한계시록 5:8)


기도는 향기가 있고, 어쩌면 각자의 기도마다 영적인 존재들만이 볼 수 있는 색깔이 있을 것이며, ‘기도의 항아리’에 차곡차곡 쌓이는 영적인 물질이다. 때가 되면 폭탄처럼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우리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도 묵상으로, 팔다리가 마비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에서도 자리에 앉아 부르짖으며 기도할 수 있다. 기도할 시간과 방법은 차고 넘치는데, 우리는 세상적인 것에 시간을 쓰고 자신을 위해 에너지를 쏟느라 기도의 항아리를 채우지 않는다.


이는 마치 혼인 잔치에 쓸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님이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명하신다면, 그 명령을 수행하지 않는 종의 모습과 같다. 물론, 가나의 혼인 잔치 이야기 속 종들은 정결 예식에 쓰는 돌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움으로써 순종을 했다. 어떤 특별한 일을 하지는 않고 항아리를 물로 채웠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 맹물을 세상 최고의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을 일으키셨다. 만약 그 항아리가 더러웠다면, 혹은 그들이 물을 채우지 않았다면,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5] 아직도 채워지지 않은 나의 항아리를 보며

나는 매일 기도와 말씀으로 나의 항아리를 깨끗하게 닦고, 순종의 물을 채우지 않는 영적 나태함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라헬의 기도가 자기중심적이었다고 판단하기 전에, 내 삶의 문제를 하나님께 가져가 아뢰는 그 최소한의 순종조차 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라헬의 기도를 ‘기억하신’ 하나님은 나의 오늘의 언행과 마음 또한 기억하고 지켜보고 계신다. 미성숙하더라도 하나님을 향해 뻗었던 라헬의 손을 붙잡아 주셨듯이, 오늘 나의 작은 순종이 채운 보잘것없는 물 한 바가지가, 언젠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최상의 포도주가 될 것을 믿으며, 다시 기도의 항아리 앞에 선다.


[6] 기억 이후의 믿음: 요셉의 이름이 전하는 메시지

창세기 30장의 24절의 한 구절은 나를 새로운 묵상으로 이끌었다. 라헬이 마침내 기도의 응답을 받았을 때, 그녀는 기뻐하며 아들의 이름을 ‘요셉’, 즉 “여호와께서 더하시기를 원하노라”고 지었다. 라헬은 요셉을 낳은 것을 응답을 끝으로 보지 않고, 요셉을 시작으로 앞으로 더해 주실 하나님의 축복을 기도하였던 것이다. 하나님은 단지 ‘기억하시는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기억하신 후에 더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그녀는 믿었던 것이다. 물론 언니 레아에게 많은 자녀가 생긴 것을 보고, 자신에게도 요셉 외에 아들을 더해 주실 것을 바라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수순이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나에게 창세기 30장의 24절은 특별하게 다가 온다. 그동안 아들없이 오랜 기간을 수치와 부끄러움 속에서 지내온 라헬조차도 이번 한 번의 응답으로 끝내시지 말고 축복을 더하여 주실 주님을 기대하며 간구하였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 삶의 부끄러움을 씻어주셨다면, 나는 이제 그 은혜에 만족하지 말고 또 다른 믿음의 벽돌을 쌓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항아리의 물이 포도주로 변한 후에도 그 잔치가 계속되듯, 하나님의 은혜는 단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끝없이 이어지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라헬이 그랬던 것처럼, 나 또한 오늘의 응답에 안주하지 않고 ‘더하여 주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품을 때, 하나님은 내 삶을 또 다른 요셉의 이야기로 이어가실 것이라 믿는다.


[7] 기도의 항아리를 채우며

하나님 아버지,

매일 기도의 항아리를 채우지 않음을 회개합니다.

오늘 창세기 30장의 라헬을 생각합니다.

어쩌면 미성숙하고 자기 중심적인 기도마저

주님은 외면하지 않으시고 기억하시며,

주님의 때에 응답해 주신 것을 확인합니다.


나의 기도의 항아리를 생각합니다.

날마다 그 안을 새로 닦고,

묵상과 순종의 물을 채우게 하소서.

보잘것없는 물 한 바가지라도,

주님의 손에 닿을 때

세상 그 어떤 포도주보다 향기로운 은혜로 변할 줄 믿습니다.


나의 기도를 기억하시는 하나님,

주님의 기억 속에 내 이름이 기록되기를 원합니다.

그 기억이 기적으로 피어나는 날을 바라보며

오늘도 조용히 기도와 말씀으로 항아리를 채우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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