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8일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누가복음 16:8)
예수님은 ‘불의한 청지기’를 지혜롭다(shrewd) 하셨다. 불의한데도 지혜롭다니, 참 역설적인 말이다. 그러나 이 역설이 바로 예수님의 눈에 비친 ‘뱀같은 지혜’의 실체였다.
청지기는 주인으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자신의 경제 시스템이 곧 무너질 것임을 누구보다 먼저 깨달았다.
3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그리고 그가 고민을 아주 많이 하였음을 예수님은 드러내놓고 말씀하셨다. 막노동 하기에는 힘이 없고 거지처럼 빌어 먹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대금업자인 주인과 일하였기 때문에 그의 고객은 부자들이 많았을 터이니 거지로 지내기에는 부끄러웠을 듯하다.
4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그는 드디어 좋은 꾀를 떠올렸다. 현재 그는 주인의 재산을 가지고 장차 그를 고용할 사람들을 대비시켜 두었던 것이다. 물론 내가 처음 읽을 때는 그가 해고 통보받은 연유를 알게 되면 아무도 그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라고 깊은 묵상을 하기는 했지만, 세상에는 나 같은 사람만 있지는 않다. 불의의 재물이라 하더라도 그것으로 다른 사람의 환심을 사게 되면, 그를 영접할 사람들이 분명 있다. 실제로 많을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선물을 하거나 재물로 환심을 사는 것을 지혜로운 행동이라고 잠언에서도 언급하고 있듯이 말이다. 잠언은 인간의 본능을 아주 잘 알려 준다.
그의 행동은 불의했지만, 예수님은 그의 기민함을 칭찬하셨다. 그는 지금 그가 가진 자원을 미래의 생존으로 바꾸는 감각을 가졌다. 이것이 뱀의 지혜다. 위기를 감지하고, 두려움에 마비되지 않고 행동하는 지혜. 경제 시스템이 변하고 세상이 AI로 요동칠 때 ‘청지기의 기민함’은 오늘날의 성도에게도 필요한 것이지 않을까?
요즘, 나는 이 말씀을 AI와 함께 묵상한다. AI는 불의의 재물인가? 그럴수도 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하나님께 기도하기보다 AI에게 자문을 구한다. 적어도 내 주변은 그렇다. 점차 AI에게 삶의 결정, 인간관계, 심지어 성경이나 신학의 해석까지 AI에게 묻고 그것의 답이 더 빠르고,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AI는 단지 도구일 뿐인데, 우리는 어느새 그것에게 ‘물어보는 습관’을 예배처럼 하고 있다. 그 순간 AI는 재물이 아니라, 우상이 된다. 사실 이건 나의 최근 고민거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AI금식을 해야 할까 생각도 한 적이 있다.
이런 중에 불의한 청지기 묵상은 나의 혼돈을 정리해 주었다. 예수님은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깨끗한 재물로”가 아니라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하셨다. 이 말을 곰곰히 생각하면 그 재물의 세속적이고 위험한 성질 때문에 청지기가 한 그대로 지혜롭게 사용해야 함을 예시한 것으로 생각한다. AI를 쓰면 쓸수록 AI를 멀리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일이라는 생각이 정말 강하게 든다. 그래서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도 AI를 사용해 보라고 권고한다. AI와 친하지 않으면 AI의 헛소리(할루시네이션)에 당하게 되고, AI가 그럴 듯한 답변을 주는 것을 믿다가 큰 일을 당하게 된다. AI는 참고로 하고 도구로 사용해야지 나보다 더 많은 빅데이터에 접속하여 그럴 듯하게 포장하여 나를 도와주는 듯한 AI말대로 하다가는 큰 낭패를 당하기 쉽기 때문이다. AI는 인간의 언어를 학습하였다. 이 때 인간의 언어는 우리 교과서처럼 착한 정답으로만 되어 있는 자료가 아니다. 댓글이나 블로그에 올린 글도 포함되는데, 아마도 이 언어 자료 기저에는 거짓 정보도 있고 어떻게 거짓으로 사기칠 수 있는지 방법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를 조종하는 것에 대한 방법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을 AI는 다 학습했다. 다만 AI 회사에서 이것을 어느 정도 제어를 하여 일부 답변을 회피하거나 간단하게만 언급하게 설정하기 때문에 우리가 보기에는 신사처럼 보일 뿐이다.
믿기기 않는다면 중국이 개발한 딥시크를 생각해 보라. 중국 공산당의 불의에 대해 질문하면 답변을 피하거나 다른 답을 내어 놓는다. 이걸 생각해 보면 정답만을 사실만을 검색해서 알려줄 것이라는 AI에 대한 환상이 깨진다. 한편으로는 AI 통제도 가능하다는 희망이 보이기는 하지만 글쎄다. 이처럼 생성형 AI는 그 자신의 정체성이 뭔가 생성하는 것이기에 단순한 구글 검색 기능과는 다르다. 사실을 기반으로 생성할 수 있고, 합리적인 추론으로 생성할 수 있지만, 때로는 거짓을 생성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AI가 학습하는 데이터 자체가 전세계적으로 합리적인 교과서적인 데이터 뿐만 아니라 조작된 데이터도 학습하고 이 데이터를 어떻게 교묘하게 사용하는지 그 방법도 언어자료를 통해 배우고 있다. 이런 점에서 AI는 사실상 불의하다.
그러나 ‘불의하기 때문에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불의하기 때문에 통제하며 사용하라’는 것이 예수님의 방식이다. 불의한 재물을 ‘섬기면’ 그것이 나의 주인이 되지만, ‘사용하면’ 그것은 나의 청지기가 된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 기도로 문의하는 대신 AI에게 물어 보고 시간을 보낸다면 이것은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이 되지만, 하나님과의 기도 후에 자신의 결단을 실천하는 도구로 사용하면, ‘불의한 재물’을 ‘거룩한 통로’로 바꾸는 행위가 된다.
많은 교회가 AI를 경계한다. “이건 위험하다”, “악의 도구다”, “우리를 속일 것이다.”그 말이 틀린 건 아니다. 하지만 그 두려움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책망하신 “한 달란트를 땅에 묻은 종”이 된다. 예수님은 ‘두려움으로 인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종’을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부르셨다. 그는 ‘주인을 경외’했지만, ‘주인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주인은 그에게 1달란트라는 재물을 숨기라고 주신 게 아니라, 움직이고, 불리고, 써보라고 주신 것이다. 아마도 그가 담대하게 큰 돈을 그렇게 굴리기 어려울 테니 적은 돈을 주셨을 것이다. AI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AI라는 달란트를 그냥 땅에 묻으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그것을 관리하고, 정화하고, 복음의 통로로 삼으라고 주신 것이다.
하나님이 AI를 주신 것이 아닐 수 있다. 그것은 대적 마귀가 사용하는 중요한 재물일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그것조차 거룩한 도구로 사용하시는 분이다. 마치 하나님의 성막을 짓기 위해 애굽에서 가져온 은과 금 등을 사용하신 원리와 마찬가지이고 악인의 재물이 의인에게 이전시키셔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수단으로 삼으시는 것에서 알 수 있다.
AI를 잘 사용하는 성도는 ‘세상 속의 이방인’이 아니라, ‘세상을 경작하는 성도’다. AI를 통해 복음을 전하고, AI를 통해 더 많은 이들과 연결되고, AI를 통해 지혜롭게 일하는 사람들은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는 자들’일 것이다. 세속의 기술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통로’로 바꾸는 일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여기서는 기민한 지혜, 즉 ‘뱀’을 말씀하시지만, 성경 전체적으로는 뱀만 말씀하지 않으셨다. 에수님은 “비둘기처럼 순결하라.”고도 말씀하셨다. 불의한 청지기의 지혜는 성령의 순결이 없을 때 ‘불의’로 남는다. 그러나 성령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순간, 그 지혜는 ‘거룩한 분별력’으로 바뀐다. 예수님은 늘 이렇게 행동하셨다. 사람의 계략을 간파하셨지만, 그들과 싸우지 않으셨다. 유다를 폭로하지 않으셨고, 빌라도 앞에서 자신을 변호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이 침묵하신 것은 비겁해서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대적 마귀에서 휘둘리지 않고 진리를 지키는 순결의 한 방법을 취하신 것이었다.
이 시대에 성도들은 ‘불의한 청지기’의 기민함과 ‘비둘기’의 순결을 동시에 가져야 한다. 기도만 하는 신앙이 아니라, 성령의 음성에 ‘실시간으로 연결된’ 신앙. AI가 모든 것을 자동화하는 시대, 우리의 믿음은 성령의 API로 동기화되어야 한다. “주님, 지금 이 상황에서 저의 응답은 무엇입니까?” “성령님, 이 문제에 대한 오늘의 코드 한 줄을 가르쳐 주세요.” 그렇게 기도하는 사람이야 말로 이 시대의 ‘지혜로운 청지기’이다.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지혜롭되 냉정하지 않고, 순결하되 무력하지 않으며. 청지기처럼 기민하게 대처하되 예수님처럼 원망하지 않고 침묵하시며 고요히 듣는 마음으로. 불의한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지켜내는 자가 진짜 ‘지혜로운 제자’일 것이다.
<기도문>
하나님 아버지,
불의한 세상 속에서도 지혜를 잃지 않게 하소서. 위기를 감지할 줄 알되, 두려움에 갇히지 않게 하소서. 성령의 음성에 민감하되, 사람의 말에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 뱀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비둘기의 순결로 사랑하게 하소서. 기민하되 교활하지 않고, 침묵하되 비겁하지 않으며, 말하되 분노가 아니라 사랑으로 말하게 하소서.
AI 시대의 혼란 속에서도 성령의 API에 연결된 자로 살게 하소서.
하나님 아버지,
AI라는 불의한 재물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소서. AI는 죄로 오염된 우리 인간의 언어를 그대로 답습한 부산물이니 늘 조심하고 그 불의함을 경계하되, 그 빅데이터적인 속성과 불의함에 좌절하거나 마비되어 주인으로 섬기지 않게 하소서. AI를 청지기로 사용하게 하소서. 기도 없이 사용하지 않게 하시고, 기도 후에 지혜롭게 사용하게 하소서.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하신 말씀처럼, AI를 통해 더 많은 영혼을 만나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게 하소서. 세상의 기술이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새로운 통로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