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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없이 주시는 은혜: 성탄절 전야의 묵상

by 안젤라

2024년 12월 24일, 성탄절 전야


값없이 주시는 은혜: 성탄절 전야의 묵상


오늘 교회에서 성탄절 전야를 맞아 작은 축하 모임을 가졌다. 개척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와 소박한 축하 파티, 그리고 선물 교환이었지만 성도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물론, 예수님이 추운 12월에 태어났다고 믿는 성도는 없을 것이다. 저 들 밖에 한 밤 중에 양틈에 자는 목자들! 겨울은 분명 아닐 것이다. 동방 박사들은 별을 보고 왔지만, 일반적인 인간 중에서는 가장 비천한 자들에 속하는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는 말씀을 처음으로 전하여 주었던 것이다.)


50대 권사님들은 어릴 적 성탄절에 캐롤을 부르며 이웃집을 돌아다니며 선물을 나누어 주던 추억을 나눠 주셨다.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나 역시 어린 시절 성탄절에 교회에 가서 동방박사가 마굿간을 방문하는 성탄절 연극를 보고, 교회에서 받은 뜻밖의 선물이 기억났다. 예전에는 가난한 이들도 교회를 통해 선물을 받는 일이 흔했으며, 이는 하나님의 사랑이 모두에게 전해지는 순간이었다.


성탄절에 전혀 모르는 낯선 이로부터 선물을 받아도 자신의 행위에 대한 보상이나 대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 그 이유는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를 떠올렸다(물론 요즘은 다르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지만). "울면 안 돼"라는 캐롤송에서 착한 아이들에게만 선물을 준다는 산타의 이야기가 있지만, 성탄절에 교회에서 나누어 주는 선물은 자격과 상관없이 모두가 받을 수 있었던 특별한 은혜이다. 우리가 받는 은혜는 착한 행위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다. 내가 죄인이면 죄인일 수록 (어떤 분은 죄인이라는 표현이 하나님과 멀어진 관계라고 해석하면 그나마 좀 이해하기 쉽다고 하였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과 동떨어진 인생을 살았던 사람일 수록) 하나님이 값없이 주신 은혜가 너무도 감사할 것이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4장에서 일꾼의 대가와 은혜를 명확히 구분한다.


"일한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4:4-8).


일꾼이 받는 대가는 그가 일한 만큼에 대한 보상이다. 그러나 은혜는 일한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은혜는 아무런 자격이 없거나, 심지어 받을 자격이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에게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포도원 일꾼의 비유(마태 20:1-16)는 은혜가 어떤 것인지 분명히 보여준다. 아침 일찍 온 일꾼들은 불만이 있었지만, 포도원 주인은 그들에게 약속한 1데나리온을 그대로 주었다. 주인은 나중 온 일꾼들에게도 같은 삯을 주며 이렇게 말한다.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섯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이와 같이 나중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마태 20:10-16)


아침부터 일한 자와 하루의 끝에 와서 한 시간만 일한 자가 동일한 품삯을 받는다. 아침부터 일한 자들은 자신이 받은 삯을 "대가"로 여겼지만, 늦게 온 자들은 그것을 "은혜"로 받아들였다. 나중 된 자들이 받은 은혜는 그들에게는 엄청난 축복이었다. 그러나 오래 일한 자들은 자신들이 받은 삯을 당연한 대가로 여겼기에 은혜를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은혜는 주님의 주권임을 알 수 있다.


늦게 온 자들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먼저 되는 것은 그들이 은혜에 대한 깊은 감사를 통해 주님께 전적으로 헌신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도 바울은 초대교회 교인들을 박해하는 삶을 살았어도, 회심 후 열심히 주님을 따르고 전적으로 헌신하며 먼저 된 자로 쓰임 받았다.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라." (고린도전서 15:9-10)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공로와 시간의 순서가 아닌, 은혜와 믿음에 의해 결정되며, 늦게 된 자가 먼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역설적 은혜를 보여준다. 이들은 자신들이 자격이 없지만 한 데나리온을 받은 은혜에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충성하였기 때문에 주님께 높임을 받았음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나중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마태 20:16)


은혜를 아는 마음이 충만할 때, 주님을 더 사랑하게 되고, 충성과 헌신이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은 바로 그 믿음과 사랑을 귀히 여기시고, 이런 자들을 먼저 된 자로 삼으실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런 자들이 많을 것을 말씀하신다.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마태 19:30)


바울은 로마서 11장 6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은혜는 인간의 행위나 자격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임을 강조한다. 이를 통해 은혜는 상대적 비교나 공로와 분리된 개념임을 알 수 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서 자신의 사역에 대해 이렇게 고백한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그는 자신의 수고를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자신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 덕분이라고 말한다. 은혜는 비교나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감사와 겸손의 원천인 것이다.


성탄절은 단순히 축하하는 날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적으로 경험하는 날"이다. 예수님의 탄생은 악인과 선인 모두에게 비추는 해처럼, 모든 사람에게 베풀어진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이다.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마태복음 5:45)


예수님의 탄생 자체가 은혜의 시작이다. 물론 그 은혜에 대한 반응은 각자 다르다. 어떤 이는 감사와 사랑으로 응답하고, 어떤 이는 그것을 당연시 여기거나 외면한다. 나는 당연히 여기는 자와 같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늦게 하나님을 알게 되었지만, 그 은혜의 깊이를 더 많이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고자 한다. 포도원에서 늦게 온 일꾼처럼, 나는 그 은혜를 "값없이 받은 선물"로 여긴다. 나중된 자로 시작했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충성을 통해 먼저 된 자로 주님 앞에 서기를 소망한다.


"하나님 아버지, 저에게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다른 이들에게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흘려보내게 하소서. 값없이 주신 그 사랑에 감사하며, 오직 주님만을 사랑하고 섬기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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