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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인 바디매오의 믿음과 제자도

by 안젤라

맹인 바디매오의 믿음과 제자도 (막 10:46-52)

2025년 1월 9일

맹인인 바디매오의 이야기는 단순히 눈을 치유받은 사건이 아닙니다. 나사렛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고백하며,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가는 그의 모습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합니다. 이는 단순한 치유 이야기가 아니라 제자도의 본질과 메시아를 만나 구원을 받는 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맹인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며 간절히 외칩니다. 흥미로운 점은 나다나엘이 처음에는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 1:46)라고 했던 것과 달리, 바디매오는 나사렛 예수님을 이새(싹이라는 뜻으로 나사렛과 발음이 유사합니다)의 뿌리, 곧 메시아로 인정한 것입니다. 당시에 사람들이 이를 인정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그는 나사렛 예수님이 지나간다는 이야기에 다윗의 아들을 언급한 것으로 그가 영적인 눈으로 예수님을 바라보았음을 보여 줍니다.


바디매오는 다른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해도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열망 하나로 외치고 외치고 또 외쳤습니다. 드디어 예수님께 부름받았을 때는 자신의 겉옷을 버리고 일어나 예수님께로 나아갔습니다. 당시 겉옷은 단순한 의복이 아니라 생계의 일부였으며, 특히 거지이자 맹인인 그에게는 더욱 중요한 생존 도구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께 나아가기로 결단했습니다. 마가복음에는 제자도를 보여 준다고 하는데 바디매오야 말로 큰 모범이 됩니다.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랍비(선생님)"라고 부르며, 치유를 받은 후 예수님을 따릅니다. 그는 단순히 치유를 경험한 것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삶을 예수님께 드리는 헌신으로 이어갑니다. 그의 행동은 단지 육신의 치유를 구했던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예수님과 함께 걸어가기를 원했던 마음을 나타냅니다.


바디매오의 믿음은 단순한 외침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행동으로 자신의 믿음을 증명하며,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예수님을 바디매오처럼 부르짖고 싶습니다. 그런데 왜 나는 간절하게 외치지 않을까요?바디매오와 같은 비참한 상황에 처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요? 그는 눈도 보이지 않고 거지로 살며 죄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메시아 외에 그런 삶에서 그를 구해 줄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당시에 맹인들은 오히려 영적 눈이 열려 있었습니다. 우리는 보는 것에만 국한되어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를 지나치고 무시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세상 소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음에서 벗어나야 진실된 자신을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현 대한민국 상황에서 조중동과 같은 거짓된 언론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있으면 맹인이 아니어도 맹인이 되는 것과 같은 원리인 것 같습니다. 당시에 성전 신학, 선민 신학(시온 신학), 율법 중심 신학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신앙을 회칠한 무덤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겉보기식 믿음이 믿음이라고 생각하고 율법에서 배제된 자들에 대해서 죄인 취급을 하던 사회에 살면서 바디매오와 같은 이들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 자신들은 왜 이렇게 태어났을까를 고민하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위선적인 삶을 보면서 바디매오는 분명 존경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는 이들에 대해 전혀 눈치보지 않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성전신학에 빠진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참된 신앙인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날 우리는 민주라는 이름으로 정의라는 이름으로 불법을 자행한 이들을 보고 있습니다. 소위 내로남불인 이들은 돈과 권력을 위해서라면 나라가 위험에 빠져도, 국고가 탕진되어도 포플리즘으로 돈을 뿌려대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친중, 친북에 붙어서 조력하는 자가 되어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에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종속되는 것을 돕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나라를 살리고자 하고 우리 사회에 공의와 정의를 세우려는 대통령을 내란죄라는 말도 안되는 죄를 뒤집어 씌우고 거대야당의 횡포로 탄핵을 남발하며 입법 독재를 하고 있습니다. 사법부와 경찰, 공수처와도 카르텔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불법을 저지르는 민주노총의 폭력 행위에 대해서 법원은 기각하고 있습니다. 여론은 대통령을 악마화하며 올바른 정보를 주지 않고 불법이 정당하다고 거짓 뉴스를 양산합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과 대제사장들에게 "눈을 떴다 하지만 너희가 소경이다"라고 하셨던 말씀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며, 눈을 뜨고 있지만 거짓과 불의 속에 머무는 영적 소경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잘못된 정보와 편향된 여론, 불의가 정의로 가장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의 눈이 세상에 가려질수록 영적 눈은 닫히게 됩니다.


이런 혼란 속에서도 성경 말씀은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는 빛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겉보기에 좁고 험난해 보일 수 있지만, 그 길만이 진정한 생명과 구원의 길입니다. 바디매오처럼 주님께 간절히 부르짖고, 우리의 모든 것을 내려놓으며 주님을 따르겠다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맹인 바디매오처럼 간절히 예수님을 부르짖으며 나아가길 원합니다. 오늘 제 영적 눈을 열어 주셔서, 세상의 거짓과 소음에 흔들리지 않고 진리의 빛을 볼 수 있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제가 붙들고 있는 "겉옷"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하시고, 그것을 내려놓고 온전히 주님께 나아가는 결단의 믿음을 주옵소서.


오늘도 세상 속에서 영적 소경이 되지 않도록

성경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게 하소서.


대한민국에도 정의와 공의가 세워지길 기도합니다. 거짓과 불의가 판치는 세상에서 진리가 빛을 발하게 하시고, 저희가 그 진리 안에 굳게 서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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