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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후서 1장을 읽고: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삶

by 안젤라

베드로후서 1장을 읽고: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삶


2025년 2월 22일


지난 화요일 베드로전서를 읽는데, 뭔가 깊은 울림이 있었다. 그래서, 베드로후서도 진지하게 읽어야지 마음 먹었는데, 금요예배 설교말씀으로 읽게 되었다. 역시나 예상대로 베드로후서 1장, 2장, 3장 모두 내 마음을 뛰게 하였다. 베드로가 설교할 때 그를 갈릴리 어부라고 생각했던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이 놀라던 심경을 오늘 내가 새삼 느꼈다. 아주 권위있는 말씀이고 영적인 눈을 가진 베드로의 말씀이었다. 또한, 같은 성경 말씀을 읽는데 교회마다 교파마다 해석이 다르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게 된 나이기에 베드로후서에서 베드로를 통해 주신 말씀은 나에게 일종의 영분별의 기준을 마련해 주는 듯 하였다.


베드로는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베드로후서 1:10)고 말한다. 이런 저런 자료들을 같이 보니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는 말씀은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주장과는 맞지 않은 듯 하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 중에 나를 부르시고 택하셨다는 사실은 특별한 사건이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의 시작점만을 강조한다. 이러한 사건에 대해 '구원받았다'고 믿는 교파가 있고, '언제 구원을 받으셨나요?'라고 묻는 교파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베드로는 말한다. '구원을 굳게 하라'고 말이다. '굳게 하다'는 말에서 석고로 작품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딱딱하게 굳기 위해 시간이 흘러야 하는 점이 생각났다. 또, 식물을 심을 때, 땅을 굳게 하지 않으면 뿌리째 뽑히기 쉽다. 이를 믿음에 적용해 볼 때 우리의 믿음을 시간의 흐름 속에 뿌리 뽑히지 않도록 관리하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베드로는 우리가 받은 "옛 죄 사함"을 잊을 수 있다고 말한다(베드로후서 1:9). 옛 죄에 대해 죄 사함을 받은 우리가 다시 세상 속에 살아가면서 새로 죄를 짓는데, 새 죄가 잊혀지고, 죄 짓는 것에 무뎌지고, 회개하는 것에 나태해질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겁다.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는 말씀은 구원이 단순히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우리가 계속해서 지켜가야 할 것임을 알려준다.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베드로후서 1:11)


이 말씀은, 구원 또는 하나님의 나라 입성이 "넉넉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기독교도인이 됨으로써 구원이 시작된 이후 우리의 신앙은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성장해야 하는 과정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예수님을 믿습니다"라는 말이 입술에서 나오는 순간 구원받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교파도 있다. 빌립보서에서 바울이 감옥의 간수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사도행전 16:31)고 했다. 하지만 시대적 배경을 고려해야 한다. 당시 로마에서 예수님을 주로 고백한다는 것은 단순히 입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목숨을 건 고백이었다. 일본 천황처럼 로마 황제가 신으로 숭배되었고 절대적 통치자로 여겨졌던 시대,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이십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반역죄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입술로만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십니다"라고 말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진정한 신앙 고백은 삶을 걸고 하는 결단이며, 행함으로 드러나는 믿음이어야 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말씀하셨다. "이미 목욕한 자는 온몸이 깨끗하나, 발은 씻어야 하느니라."(요한복음 13:10)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이미 깨끗함을 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세상 속에서 살아가면서 발이 더러워진다. 매일매일 죄를 짓고, 넘어지고, 연약해질 때가 많다. 날마다 발을 씻듯이, 우리는 회개해야 한다. 또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서로의 발을 씻어주라고 하셨다. 이는 단순한 섬김을 넘어, 우리가 서로를 위해 중보하며, 기도하고, 신앙을 지켜주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베드로는 "너희가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라."(베드로후서 1:4)고 말한다. 신앙이란 단순히 교회에 출석하는 것, 성경을 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며,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베드로후서 1:5-7)


믿음은 시작일 뿐, 우리는 성장해야 한다. 믿음에서 덕으로, 덕에서 지식으로, 지식에서 절제로, 절제에서 인내로, 인내에서 경건으로, 경건에서 형제 우애로, 형제 우애에서 사랑으로 성장해야 한다.

예수님이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신 사건(마태복음 21:19)은 열매 맺지 못하는 우리도 구원을 받지 못하고 죽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베드로후서 1장을 읽을 때 큰 감동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한 신념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변화하는 과정이며, 신성한 성품을 닮아가는 것이 진정한 신앙의 목적이라는 깨달음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믿음에서 사랑으로 성장하는 과정 속에서 날마다 주님을 더욱 알아가게 하시고,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구원론에 대해 하이퍼칼빈주의와 구원파 구원론이 있고 하이퍼그레이스 구원론이 있지만, 웨슬리가 주장한 구원론이 베드로후서 말씀과 가까움을 확인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베드로가 권면한 대로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 가고 신앙이 좋은 열매를 맺고 있는지 돌아 보게 하시옵소서. 성장하는 믿음의 여정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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