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17일
윤석열 대통령이 반국가 세력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것을 듣기 전까지 대한민국이 보이지 않는 전쟁터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야 소위 계몽령 이후 많은 것을 깨닫는다. 실제로 우리는 전쟁 중이며 그동안 반국가세력이 합법적인 방법으로 우리의 권리와 자유를 서서히 빼앗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결단과 희생이 없었다면 아무것도 모르고 대한민국이 무너지는 것을 막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깨달음은 단순히 정치적, 사회적 현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전쟁터라는 현실을 깨딜은 것처럼, 우리의 신앙도 치열한 영적 전쟁터임을 깨달아야 할 때다. 우리는 단순히 세상에서 평온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영적 싸움 속에 있다. 단순히 물리적 전쟁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을 무너뜨리려는 사탄의 전략을 항상 인식하고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만 전적으로 그 싸움을 싸우라고 내버려 두시지 않으셨다. 우리의 대적은 같은 인간이 아니라 차원이 다른 영적 존재임을 분명히 하셨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에베소서 6:12). 우리와 차원이 다른 악한 영과 싸우기 위해 성령을 보내주셨기에 성령의 힘으로 싸우지 않는다면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사도행전 19:15) 항상 지는 싸움에 임하는 것과 같다.
1.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빼앗겼다
대한민국이 보이지 않는 전쟁터가 된 것처럼, 우리의 신앙도 이미 영적 전쟁에서 점점 무너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영적 전쟁에서 깨어 있지 않는 동안, 사탄은 교묘하게 우리의 신앙과 삶에서 중요한 것들을 하나씩 빼앗아 가고 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가 약화되었다.
과거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중심이었고, 성경의 진리를 기준으로 삼았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성경보다 세상의 논리를 더 신뢰하며,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 한다. 성경이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하나의 의견처럼 여겨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신앙의 토대가 흔들리고 있다.
둘째, 가정의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가정의 질서는 세상의 가치관 속에서 점점 왜곡되고 있다. 부모와 자녀 사이의 관계는 점점 멀어지고, 가정 안에서 성경적 가치관이 전수되지 못하고 있다. 자녀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세상의 흐름을 따라가며, 가정 안에서 신앙 교육이 사라져 가고 있다.
셋째, 교회의 권위가 약화되고 있다.
교회는 본래 영적 전쟁의 최전선에서 하나님의 군대로서 싸워야 하는 곳이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교회가 세상과 타협하고, 복음의 본질을 희석시키고 있다. 영적 전투에서 앞장서야 할 교회가 오히려 세상의 흐름에 순응하며, 성경적 진리를 담대하게 선포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빼앗긴 것들을 되찾을 수 있도록 힘을 주신다.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에베소서 6:11)
우리는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 지금은 영적 전쟁을 준비해야 할 때이며,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마귀의 간계를 대적해야 한다. 깨어 기도하고, 말씀을 붙들며, 믿음으로 무장하여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아야 한다.
2. 왜 지금 신부 단장이 필요한가?
많은 사람이 마지막 때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그 증거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지 못한 채 지나간다. 우리는 단순히 감정적으로 이제 끝이 다가온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적으로 지금이 마지막 때임을 분명히 깨닫고 신부 단장을 해야 한다.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마태복음 16:2-3)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단순히 자연의 변화를 예측하는 것처럼, 시대의 흐름과 하나님의 계획도 올바르게 분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지금이 마지막 때라는 표적은 무엇인가?
첫째, 성경이 예언한 마지막 때의 징조가 현실이 되었다.
성경은 마지막 때에 나타날 여러 가지 징조를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마태복음 24:4-8)
오늘날 우리는 이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전쟁과 민족 간의 갈등이 증가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국제 관계는 점점 더 긴장 상태로 치닫고 있다. 또한, 전 세계적인 기근과 경제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물가는 치솟고, 많은 나라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식량 부족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있다. 게다가, 지진과 자연재해가 급증하고 있다. 강력한 지진과 태풍, 이상 기후 현상이 계속해서 발생하며, 그 빈도와 강도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영적인 측면에서 거짓 그리스도와 미혹이 증가하고 있다. 많은 이단과 거짓 선지자들이 등장하여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으며,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성경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가르침이 퍼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성경이 예언한 재난의 시작이 이미 우리 눈앞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둘째, 도덕과 가치관의 붕괴되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때의 모습을 노아의 시대와 비교하셨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마태복음 24:37-39)
노아의 시대에는 사람들의 마음이 완전히 하나님을 떠났고, 그들은 경고를 무시한 채 자신의 삶을 즐기는 데만 몰두했다. 결국 홍수가 임했을 때, 그들은 아무런 대비 없이 심판을 맞이했다. 오늘날 우리의 시대도 노아의 때와 다르지 않다. 우선,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죄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으며, 오히려 죄를 정당화하고 미화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또한, 도덕과 가치관이 무너지고 있다. 하나님의 질서와 성경적 가치는 점점 사라지고, 인간 중심의 가치관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영적으로 거룩한 삶을 조롱하는 시대가 되었다. 신앙을 따라 거룩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점점 더 사회에서 배척당하며, 오히려 세상의 흐름을 따르는 것이 정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은 마지막 때가 가까웠다는 증거이며, 우리가 신부 단장을 서둘러야 할 이유이다.
셋째,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의 회복된 것은 마지막 때를 알리는 시계와 같다.
성경에서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은 마지막 때의 중요한 표적이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마태복음 24:32-33)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이스라엘)의 회복이 마지막 때의 중요한 징조라고 하셨다.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하면서 성경의 예언이 성취되었다. 수천 년 동안 나라를 잃었던 이스라엘이 다시 독립을 이루었으며, 이는 성경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진 사건이었다. 또한, 1967년 6일 전쟁 이후,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통합하고 이를 수도로 선언했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대부분의 국가들은 대사관을 텔아비브에 두었다. 그러나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공식 수도로 인정하고, 미국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하면서 국제적인 논란이 더욱 거세졌다. 예루살렘은 성경에서 마지막 때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되었으며, 오늘날에도 세계 외교의 중심에서 끊임없는 갈등의 초점이 되고 있다. 이는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표적 중 하나이다. 또한, 이스라엘과 주변 국가들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이는 성경이 말한 마지막 때의 전조 중 하나이며, 앞으로 더욱 극심한 충돌이 예상된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웠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우리는 더 이상 세상적인 일에 신경쓰면서 지체할 시간이 없다. 성경이 예언한 징조들이 우리 눈앞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세상은 빠르게 마지막 때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제는 단순한 종교 생활을 넘어, 진정한 신부 단장을 해야 할 때다.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요한계시록 19:7)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가까운 이때,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하며, 성령 충만함으로 준비되어야 한다.
3. 하나님의 구속 계획은 점진적이며 성령 충만은 신부 단장과 같다
하나님의 구속 계획은 처음에는 그림자처럼 불완전하게 보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명확하고 완전하게 계시된다. 이 과정은 구약의 시내산 언약에서 시작되어, 신약에서 예수님의 초림을 통해 더 깊이 드러났으며,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재림을 통해 완성될 것이다.
첫째, 하나님의 임재 방식은 점진적으로 변화해 왔다.
출애굽 당시 시내산에서는 우레와 번개, 짙은 연기 속에서 하나님이 임재하셨고, 백성들은 그 장엄한 광경 앞에서 두려워하며 도망쳤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직접 사람이 되셔서 예수님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임마누엘”이라는 이름 그대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셨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거부했다. 마지막 때가 되면, 예수님께서는 영광 중에 다시 오실 것이며, 이 땅을 심판하시고 신부 된 교회와 함께 완전한 연합을 이루실 것이다.
둘째, 백성들의 반응 또한 시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앞에서 두려워하며 도망갔다. 신약 시대에는 예수님께서 직접 오셨지만, 많은 사람이 그분을 거부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러나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악인들은 심판을 받고, 오직 신부 된 교회만이 기쁨으로 예수님을 맞이할 것이다.
셋째, 중보자의 변화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점진적으로 완성됨을 볼 수 있다.
구약에서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 사이의 중보자 역할을 했으나, 그는 불완전한 중보자였다.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완전한 중보자로 오셨고, 십자가에서 단번에 속죄를 이루셨다. 하지만 예수님의 재림 때에는 중보자로서가 아니라 재판관으로 오셔서, 모든 사람을 의롭거나 악한 자로 판결하실 것이다.
넷째, 언약의 성취는 하나님의 구속 계획의 핵심이다.
시내산에서는 하나님께서 돌판에 십계명을 새기셔서 백성들에게 주셨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더 깊은 차원의 언약이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돌판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에 새 언약을 기록하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마지막 때가 되면, 이 언약은 완전히 성취되어 어린양의 혼인 잔치로 완성될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구속 계획은 처음에는 부분적으로 계시되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명확해졌고, 마지막에는 완전한 형태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이야말로 신부 단장을 해야 할 때이며, 성령 충만함으로 준비되지 않으면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할 수 없다.
4. 성령 충만을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때때로 나는 사람들이 성령 충만을 위해 금식하고 깊은 기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하는 것을 듣는다. 어떤 교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거저 주시는 분이고, 모든 이에게 후히 성령을 주신다고 하셨는데, 왜 2시간씩, 3시간씩 기도해야 하는가?”, “젊은이들과 늙은이들에게 새 영을 부어주신다고 했는데, 왜 금식까지 해야 하는가?” 그러나 이런 생각은 신앙을 너무 안일하게 바라보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또한, 성경을 문자 그대로 읽으며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면, 일부 사람들은 “그것은 비유이고 상징일 뿐이다. 네 삶에서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기대하지 말라.”고 하며 나를 순진한 사람처럼 여긴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가만히 있으라, 그냥 성령이 자동으로 임할 것이다.”라고 기록된 곳은 없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적극적으로 성령을 구해야 한다고 명확하게 말씀하셨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태복음 7:7)
이 말씀은 단순한 종교적 격언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 충만을 원하고 구하는 자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이 과정에는 적극적인 영적 행동이 필요하다. 성령은 단순히 수동적인 사람에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 간절히 구하고 찾으며 두드리는 자에게 임하신다.
첫째, 구하라 – 하나님께 강력하게 기도하며 성령을 간구하라!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누가복음 11:13)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성령을 구할 때 후히 주시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성령 충만은 자동으로 임하지 않는다. 성령 충만을 위해서는 간절히, 지속적으로 기도해야 한다. 기도는 우리의 영적 태도를 표현하는 행위이며, 하나님의 응답을 끌어당기는 힘이다. 성령을 사모하는 자는 밤낮으로 기도하며 성령을 구한다. 날마다 다음과 같이 질문할 것이다.
- 매일 성령을 구하는 기도를 하고 있는가?
- 한두 번 기도하고 쉽게 포기하지 않는가?
- 성령을 구하는 자만이 성령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잊고 살지 않는가?
둘째, 찾으라 –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성령을 더 깊이 알라!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예레미야 29:13)
성령 충만은 단순한 감정적 체험이 아니다. 성령님을 온전히 경험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해야 한다. 성경을 읽으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한다. 말씀 없이 성령을 구하면, 자기 감정이나 환상에 쉽게 미혹될 수 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역사하시며, 진리의 영으로서 우리를 가르치신다. 날마다 다음과 같이 질문할 것이다.
- 성경을 읽을 때 성령님이 조명하실 것을 구하고 있는가?
- 성령님의 음성을 구하며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있는가?
- 성경을 읽지 않으면, 성령의 역사를 올바르게 분별할 수 없음을 늘 기억하는가?
셋째, 두드리라 – 성령의 역사에 순종하며 행동하라!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스가랴 4:6)
성령 충만은 단순한 기도나 말씀 연구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성령을 구하는 자는 실제로 행동해야 한다. 성령 충만을 받은 자는 삶에서 변화가 나타난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은 듣기만 하는 자가 아니라, 행하는 자를 찾으신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야고보서 1:22)
날마다 다음과 같이 질문할 것이다.
- 성령님이 주시는 감동에 순종하고 있는가?
- 성령 충만을 단순한 감정적 체험이 아니라, 삶의 변화로 이어가고 있는가?
우리는 마지막 때를 살고 있다.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운 징조들이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신부 된 교회는 이제 준비를 마쳐야 한다. 성령 없이 신앙생활을 하면, 단순한 종교 생활에 머물 뿐이다. 성령 충만을 받은 신앙은, 능력 있는 신앙이 된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요한계시록 19:7)
날마다 다음과 같이 질문할 것이다.
- 신부 단장을 하고 있는가?
- 성령 충만을 사모하고 있는가?
- 단순한 종교인이 아니라, 성령의 권능을 받은 신부인가?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마가복음 13:35)
<기도문>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긴 묵상을 통해 많은 깨달음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노아의 시대에 사람들은 먹고 마시며 장가들고 시집가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갔지만, 그들은 다가오는 심판을 알지 못했습니다. 방주를 준비하던 노아를 조롱하며, 그런 일을 있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 그러나 결국 40일간의 대홍수가 온 세상을 덮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던 자들은 모두 심판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줄 모르느냐?”(마태복음 16:2-3)라고 말씀하시며, 마지막 때를 깨닫고 준비할 것을 경고하셨습니다. 또한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태복음 24:37-39)고 하시며, 우리가 깨어 있어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안일한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면서도, 세상의 흐름 속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태도가 점점 느슨해지고 있고 있습니다. 저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주님, 깨어 있도록 도와주소서. 노아가 방주를 지으며 심판을 준비했던 것처럼, 우리도 영적으로 신부 단장을 하며 주님의 다시 오심을 준비하게 하소서. 시대의 표적을 분별하게 하시고, 세상의 조롱과 미혹에 흔들리지 않도록 성령으로 충만하게 채워주소서. 오늘도 마음을 다잡고, 거룩한 신부로서 준비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