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축제
너무 오랜만에 컴퓨터 앞에 앉았다. 한 달이 이렇게 짧은지 모르게 지나가고 있다.
작기가 시작되면서 숨 쉬듯 시간이 흘러간다. 이 번에는 정말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작물에 신경을 더 많이 쓰게 되었다. 농업인으로의 10년 참 많이 울고 웃었다.
아직 갈길은 멀지만 조금씩 발전하고 있는 것 같다.
이 번 달 글쓰기의 주제는 축제로 정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축제가 있어왔다.
우리 지역에도 개천예술제& 유등축제가 있다. 어릴 때는 학교에서 구경을 하러 가라고 수업을 야외수업으로 대체를 했던 것 같다. 마음 맞는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구경하고 맛있는 걸 사 먹기도 했다.
특히 기억에 남았던 것은 가장행렬이었다. 10월 10일은 시민의 날이라서 그런지 더 볼거리가 풍성했다.
큰 아이가 검도 학원에서 가장행렬에 참가하면서 10년 만에 다시 보게 되었지만 이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꼬마에서 이제 고등학생이 되어 버린 큰 아이는 기억도 안 난다고 했다.
오랜만에 작은 아이가 불꽃놀이를 보러 가야 한다고 조르는 통에 또다시 축제에 갔다.
낮에 열심히 일해 다리가 묵직하고 허리가 너무 아팠지만 가족 4명이 모여 나가는 외출이 너무 오랜만이라서
잠시 다녀오기로 했다. 먼지도 많고 바가지를 쓰고 싶지 않아서 햄버거를 먹고 가려고 가게에 들러 주문을 했다. 차라리 밥을 먹으러 갈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트 메뉴 가격이 이렇게 많이 올랐을 줄이야.
임시 주차장에 주차를 하려고 돌아다녀봐도 빈자리가 없다. 겨우 세우고 셔틀버스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남편은 그냥 목적지로 가자고 했지만 길도 통제하고 가까이에 자리가 있을 리가 없다.
피곤에 지치 몸을 이끌고 가는 지라 많이 걷지는 못 할 것 같아서 빨리 다녀오자 싶었다.
7시 50분에 도착해 겨우 자리를 잡고 불꽃놀이를 봤다. 사람들에게 밀려서 하늘에 크게 퍼지는 것을 겨우 보긴 했지만 작은 아이는 너무 좋았다고 한다.
야시장으로 걷다가 회오리 감자를 먹고 싶다고 해서 사주고 쭉쭉 걸어서 놀이기구 타는 사람들을 지나 셔틀버스정류장으로 갔다. 중간에 슬러시로 마른 목을 축이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기 전에 버스에 다시 몸을 싣었다.
남편은 버스 타고 오길 잘했다고 좋아했다. 큰 아이는 이어폰을 끼고 풍경을 구경하고 작은 아이는 차가 높아서 더 잘 보인다고 좋아했다. 28인승 리무진 버스라서 편하고 만족스러웠다.
마지막 불꽃놀이와 드론쇼를 보기 위해서 또 한 번 우리 가족은 출발을 했다.
이른 아침부터 전주 할로윈 카페와 수목을 다녀와서 피곤했지만 큰 아이 생일도 있고 해서 겸사겸사 다녀오기로 했다. 왕복 4시간을 운전하고 와서 눕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들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안 갈 수가 없었다. 한 시간 일찍 도착해서 좋은 자리를 잡았다. 앉아서 기다리는 것도 힘이 들었다.
불꽃놀이 시간이 다가올수록 사람들의 밀침이 심해지고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오는 사람도 제법 있었다.
아이들 다치지 않게 지키느라 혼이 빠지고 지쳐 버렸다.
어떤 아주머니가 혼자 잘 보겠다고 밀고 들어와 막아 버리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불만을 쏟아 내도 못 들은척하는 아주머니 뻔뻔함에 경악을 했다. 감탄사를 내뱉으면 즐기는 모습이 역겨웠다.
보다 못해 뒤에서 밀어 버린 건지 휘청하기도 했지만 혼자 신나 보였다.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 하나가 있었다.
"곱게 늙어야지."라는. 동영상 찍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가려버리고 민폐의 극치를 봤다.
조금 불쾌한 마음으로 보기 시작했지만 불꽃놀이와 드론쇼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잊고 보고 있었다.
30분이 왜 이렇게 짧게 느껴지던지 사람도 너무 많고 이 번에는 아무것도 사 먹지 않고 곧바로 버스를 타로 갔다. 그것 만으로도 좋았는지 아이들은 불평이 없었다.
축제가 시작되면 우회해서 돌아가야 하는 경우도 많고 차도 많이 막힌다. 집에 있는 것이 젤 편하다고 생각을 하지만 아이들이 있으면 한 번은 꼭 다녀와야 한다.
아주 어렸을 때 부모님과 함께 딱 한 번 온 적이 있었는데 아버지의 빠른 발걸음 엄마의 재촉에 축제는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았다. 보고 싶은 것도 사고 싶은 것도 뭐 하나 한 게 없었으니까.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는 걸 싫어하셨던 모양이다. 지금은 여행도 좋아하시는 부모님이지만 그때는 먹고살기가 힘이 드는데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