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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할인간 Oct 08. 2023

나에 대한 고찰

12. 막내며느리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난 남편 덕에 어쩔 수 없이 나는 막내며느리다.

결혼 생활 16년 동안 막내며느리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어도 막내며느리 인적이 없다.

지금껏 집안 대소사를 다 챙겨 왔다. 처음에는 해야 되는 줄 알았고 나중에는 남편은 내가 그런 일들을 해 줌으로써 자기만족을 하는 듯했다.  친정에서는 사위로써 살가운 편에 들기 때문에 괜찮아 보였다.

제사 3번, 설 추석 명절 2번, 아버님 어머님 생신, 어버이날, 시사, 김장이 끝나면 나의 1년이 마무리된다.

남들도 다 하고 사는 것이긴 하지만 여기 시댁에서는 내가 제일 바쁘다. 물론 하나에서부터 열 가지 내가 다 하는 것은 아니지만 큰 덩어리는 시어머니께서 하신다.

어머니와 함께 시장에서 나물거리와 생선 장보기, 청과에서 과일장보기, 정육점에서 수육거리, 떡집에 떡 맞추기, 마트장보기를 한다. 모두 한 곳에 모여 있지 않아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면 하루해가 짧다.

아이들 등교시키고 난 후 시작된 장보기는 하우스 일할 시간도 없이 아이들 하교 시간이 다되어서야 끝이 났다. 어떤 날은 시어머니께서 미리 조금씩 사다 놓으시기도 했다.

다리 허리도 아프신데 무거운 걸 들고 다니 생각을 하면 한숨부터 나온다.

어김없이 신랑의 잔소리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며느리 오면 같이 가지 뭐 하려고 사서 고생을 하요. 뭣이 급하다고."

나는 여태껏 불편한 내색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우리는 결혼을 하면서 양가부모님을 네 부모 내 부모로 나누지 말고 똑 같이 대하자고 약속을 했다. 물론 잘 안될 때가 더 많기는 하지만 시부모님은 좋은 분들이다.


우리 형님은 집안 행사에 다 준비해 놓으면 찾아오는 객 같은 존재다.

식당에 밥 먹으러 오는 불친절한 손님 같기도 하다. 음식이 짜다니, 덜 익었다느니, 너무 많이 했다느니 말이 많다. 객이었다면 소금 뿌려 내쫓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몸이 아프다고 빠지고 고객 만난다고 빠지고 이제는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오지 않았다. 거친 말투와 심기 건드리는 말을 일 삶아했다. 안 오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로운 것 같다.


시누들은 열심히 노력하는 나에게 너라도 잘해라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하기도 했다.

아무것도 안 하는 형님에게는 아무 말도 못 하면서 나는 더 이상 참지 않게 되었다.

어느 날 생일 축하를 해준다며 카톡 방으로 초대를 했다. 전화를 해주던지 개별로 문자나 남길 것이지 단톡방에 축하한다면 남긴 메시지 소리가 계속 들렸다.

그날따라 신경에 거슬렸다. 나는 읽지도 않고 단톡방에서 나가버렸다.

처음 결혼하고 시누들 생일을 챙겨 주려고 전화도 하고 립스틱 하나씩 사서 선물을 했다.

그랬더니 처음이니까 받는다며 안 주고 안 받는 쪽으로 하자고 했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막내이지만 시댁에서 내 생일이 젤 빠르다 그다음 형님, 남편, 작은시누, 큰 시누 순인데 모두 같은 달에 들어 있다. 다 같이 모여서 돼지를 한 마리 잡자는 말도 오고 간 적이 있었다.

모임 장소를 정할 때 자기들이 좋아하는 곳으로 가거나 내가 의견을 내면 무시하다가 자기들이 낸 의견으로 둔갑하기도 했다. 좋은 게 좋은 거라 생각했고 그 당시에는 늦게 들어온 내가 무슨 힘이 있었겠는가?

조용히 그냥 있었다. 그런 내가 달라졌다. 더 이상 상종하기가 싫어졌다.


카톡에서 나가버린 날 큰 시누는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화를 냈다. 기껏 생일 챙겨주려고 했더니 그게 뭐 하는 짓이냐며..

남편은 모두 알고 있었다. 화병이 될 것 같아서 전부 말을 해주었다.

쌓아 두었던 일들이 터지면서 남편은 큰 누나에게 화를 냈다. 길게 어진 통화에 나는 자리에서 피해 버렸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 우리는 거의 만나지 않았다.

시어머니께서 입버릇 처럼 하시는 말 "엄마 소원은 형제가 의좋게 잘 지내는 거다"

나는 늘 웃고 넘겼다. 그러다 한 말씀드렸다. "어머니, 그런 말 이제 그만 듣고 싶어요. 나이 어리다고 무시하고 자기들 마음대로 하는데 어떻게 잘 지내요?"

이제는 더 이상 그런 말씀은 안 하시지만 내 눈치를 보시며 시누이들 안부를 슬쩍 흘리신다.

태연한 척 그러냐며 더 이상 말을 이어 가지 않았다. 서운 하실 건 알지만 나는 더 이상 신경 쓰기가 싫었다.

가끔 마주치면 인사만 하고 자리를 피해 버렸다.


이번 추석에는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고 해서 내심 편하게 지나갈 수 있겠다 생각했었다.

먹을 것만 하자고 하셔서 금방 끝나겠지.. 는 오산이었다.

나물에 전에 튀김에 산적 차례상에만 안 올릴 뿐 하는 건 똑같았다.  차례 안 지낸다는 말에 사촌 형님과 동서는 오지도 않고 시어머니와 둘이서 음식을 했다.

그와 중에 시아버지께서 "너라도 와서 다행이다. 안 그랬으면 네 엄마가 힘든데."

몸살로 아파 죽을 것 같아서 딱 한번 빠진 것 빼고는 다 왔는데 그 말이 너무 섭섭해서 눈물이 나 올 것 같았다. 그리곤 시어머니께만 커피를 타주시고 나한테는 묻지도 않으셨다.

모종 사건 이후로 아직도 화가 나 신 것 같다. 그래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내 할 일만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추석 당일 아침에 밥 먹고 설거지하고 차례를 지내지 않는 대신에 성묘를 가기로 했다며 가자는 걸 발목이 아파서 가지 않았다.

성묘가 끝나고 돌아오는 일가친척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사촌 형님과 동서, 삼촌 집안이 시끌벅적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더 힘든 명절이었다.

주방에서 함께 차리고 음식을 내가던 형님과 동서는 손님 같았다. 한가득 내어가고 음식을 먹는 동안  여기서

탈출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우스 일도 바쁘고 일이나 하자 싶어서 가야겠다고 인사를 하고 준비한 선물을 나누어 준 다음 시댁을 빠져나왔다.  침대를 보는 순간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늘 겪었던 명절 증후군을 몸이 기억하는지 아무것도 하기 싫고  누워서 자고 싶었다.

남편이 좀 쉬자고 말을 했다. 달콤한 휴식을 취한 뒤 친정을 다녀왔다.

또 하루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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