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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할인간 Sep 22. 2023

나에 대한 고찰

11. 환장의 모종 심기.

 농사를 지은 지 11년 차 경력이 많다고도 적다고도 할 수 없는 애매한 년 수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아직 햇병아리라고 말씀을 하신다. 아직 멀었다고 많은 시간들을 지나오셨으니 신출내기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름 경력을 가진 것 같지만 모르는 게 더 많다. 파고들수록 어렵다고 할까?

한해 한해 농사를 할 때마다 다른 느낌이 든다. 밭을 준비하는 과정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방법이 맞고

틀리고는 없다. 경험치에서 오는 결과가 다르고 땅이 같아 보이지만 모두 다르다.

염분의 농도, Ph(산도), 유기물 등 들어 있는 양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토양 검사를 하고 뭐가 부족한지 알아야 더 좋은 땅을 만들 수 있다. 많은 수고스러움이 모여 품질 좋은 농산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땅이 만들어지고 나면 우리는 모종을 심는다. 모종 심기는 1년 농사의 중요한 첫걸음이다.

이 시기에 나와 신랑은 예민해 질대로 예민해져 있다. 둘이서 정식을 하기엔 힘들어 심어 줄 사람을 부른다.

40년 넘게 농사를 지으신 엄마와, 여동생이 와서 도와주고 경험이 있는 사람을 쓴다.

모종을 포트에서 뽑아 심을 자리에 놓아주는 사람, 그 모종을 정확한 위치에 일정한 높이로 심어 주는 사람이

2인 1조이다. 여기서 심는 사람이 진짜 중요하다. 흙을 조금 파고 모종을 심을 때 뿌리를 감싸고 있는 흙이 떨어지거나 모양이 부서져서는 안 된다. 스트레스를 줄이고 뿌리 활착을 위해서 깊게 심으면 안 되고 밭의 높이와 모종을 심은 후 흙 높이가 일직선이 되게 심어야 한다. 그래야 물이고르게 가고 있는지, 물이 안가 마른 곳은 없는지 한눈에 볼 수 있다. 쉬워 보이지만 단 순작업의 반복이고 정확하게 심기 위해서 숙련이 필요하다. 6명이서 3조로 나누어 심기를 시작했는데 절반을 심었을 때 허리와 다리에 통증이 심하게 느껴지고 목이 말랐다. 10분간 휴식을 가지려는 순간 시부모님과 큰 시누이와 모르는 아주머니 한분이 도와주시겠다고 오셨다.


시작하기 전에 뭔가 싸한 기분이 들긴 했는데 조짐이 좋지 않았다. 분명 안 오셔도 된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시부모님의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불편하다. 예민해져 있는 상태이기도 하고 시아버님의 고집과 남편의 잔소리가 불 보듯 뻔하다. 중간에 서 있는 나는 난 쳐해 진다. 어쩔 수 없이 싫은 소리를 해야 멈추신다.

10분간 쉬려고 했는데 이 사람들은 눈치도 없이 모종을 뽑겠다고 고랑 사이로 들어간다.

시부모님은 노지 텃밭을 하셔서 경험이 있고 시누와 모르는 한 분은 처음인 것 같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무턱대고 고랑에 들어선다고 일이 되나. 입고 온 옷은 베테랑 급인데 예의는 어디다 버려두고 온 것인지 눈치 좀

챙겼으면 좋겠다. 쉬려고 했다고 말을 하니 쉬란다.

막무가내로 고랑으로 밀고 들어가는 패기는 좋지만 좀 알고 해야 하는데 배우려는 자세가 틀렸다.

대충보고 저리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말을 한다.  두 번 손 가는 게 싫기도 하고 모종 심기는 정말 중요한 일인데 아무렇게 대충 하려는 게 마음에 안 든다.

시어머니께 불편하다고 말씀을 드렸다. 표정이 싸늘해진다. 이 말을 하고 있는 나도 속이 편한 건 아니다.

모르는 아주머니께서 고랑이 좁아 사람을 피해 가려고 두둑을 발로 발아서 푹 들어갔다.

자동 반사적으로 "두둑 밟으면 안 돼요!"라는 말이 툭 튀어나온다.  하우스 안쪽으로 들어가 있는 신랑이 보기 전에도 수습을 한다. 뒤쪽에서는 시아버님이 빼놓은 모종을 심고 계셨는데 너무 깊게 심었다.

"아버님 그만. 그렇게 심으면 안 돼요." 혼이 빠져 나 갈 것 같았다.  괜찮다면 아무 때나 심어 놓으면 잘 큰다고 되려 큰 소리를 치신다. 신랑이 알면 잔소리에 싸움이 될까 봐 수습을 한다. 참 미치고 환장할 것 같다.


어제 시부모님을 모시고 여수 크루즈를 타고 불꽃놀이를 보고 왔었다. 남편과 일정이야기를 하다가 내일 정식을 하는데 모종 심어 줄 사람이 적어서 큰 일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도와주러 오신다고 해서 극구 말렸다. 그렇다고 안 오실 것 같지는 않았다. 두 분이 오실 거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3시가 넘어서 안 오시는구나 생각을 하는 찰나에 오신 것이다. 이야기를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신랑이 하우스 앞쪽으로 나오다가 시아버님과 옥신각신 하고 있는 모습을 본 모양이다.

젠 걸음으로 가까이 와서 "하지 말라면 하지마소."라고 화를 냈다.

시아버님도 "문디자슥들 대충 심어 놔도 잘 크는데 유난시럽다."라면 불 같이 화를 내셨고 시어머니께 안 올 건데 가자 했다고 타박을 하셨다.

사돈이 있는 자리라서 더욱 무안하신 것 같다. 시부모님과 큰 시누, 모르는 아주머니 모두 돌려보냈다.

한 바탕 전쟁을 치른 기분이 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모종 심기는 끝이 났다.


그렇게 집으로 가신 시부모님을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다. 두통이 밀려오는 것 같다.


며칠이 지나고 시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셔서 "탁근은 잘 됐더냐?"라고 하셨는데 살짝 언짢은 말투 셨다.

서로 마음을 알기에 더는 묻지도 말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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