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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할인간 Jan 19. 2024

나에 대한 고찰

15. 비 오는 날 운전하기 싫다.

 요 며칠 비가 온다고 했다.  장마처럼 내리는 겨울비가 싫은 건 아니다.

다만 비 오는 날 밤에 운전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빗물과 빛반사로 차선이 보이질 않았다.  아이를 태우고 다니다 보니 초긴장 상태가 되고 만다.


목요일마다 아이를 데리고 놀이치료에 간다.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퇴근 시간과  맞물려 신호를 두 번 이상 받아야 지나갈 수 있었다.

늘 다니는 길이지만 비 오는 날에는 더 긴장되고 날이 서는 기분이 든다.

오늘도 비가 세차게 내렸다. 와이퍼는 바삐 움직이고 어둠이 짙게 내려앉아 차선을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앞차를 따라가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물이 고여 있는 곳이 많아 더더욱 살얼음을  걷는 기분이었다.

이러다가는 수명이 단축될 것만 같았다.

물이 많이 고인곳을 지나가다 보면 약간의 휘청거림과  바퀴 한쪽으로 물이 솟꾸쳐 올라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면허 시험에 잘 나왔던 수막현상인가.? 그것인 거 같다.

이때 브레이크를 밟으면 차가 한 바퀴 돌 수도 있다고 남편은 늘 조심하라고 귀에 딱지가 않게 말을 했었다.


나는 연애시절에 남자친구에게 운전연수를 받았다. 현재는 남편이다.

많은 격려와 용기를 주고 화를 낸 적이 거의 없었다. 차 안 다니는 곳에만 가서 연습을 하기는 했지만

운전 배우면서 싸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것이 남자 친구의 그림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운전면허를 따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계속 운전을 하고 있다.

잠이 많아서 피곤하면 운전대를 나에게 넘겼다.  어디를 가게 되면 갈 때는 남편이 돌아올 때는 내가 했다.

초보였던 나를 어떻게 믿고 운전대를 맡겼나 싶다.

가끔은 비가 많이 오거나, 길이 얼었거나, 눈이 내리면 만사를 제쳐 두고 운전을 해주기도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국가 자격증 중에서 젤 잘 딴 거 같기는 하다.


늘 가던 길을 두고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다. 차를 바꾸고 나서 생긴 버릇이 있다. RPM 1500을 넘지 않게 신경을 쓰게 되었고 기름 게이지 확인을 자주 하게 되었다.

차에 대해서 모르는 나에게 귀에서 피가 날 정도로 매커니즘을 설명하는 남편 덕에 주워 들은게 많다.


앞에 타던 차들은 경유차로 기름 냄새만 맡고 가는 차들이었다면 지금 현재 차는 휘발유를 아주 팍팍 퍼먹는 기분이 들었다.  유지비가 만만치 않았다.


집으로 오는 길은 두 가지가 있는데 고개를 넘어오면 가깝기는 하지만 기름 게이지가 훅훅~ 떨어지는 것이 보인다. 가파른 언덕이 길고 구불구불하게 이어져 있다.

다른 길은 언덕은 없지만 돌고 돌아 외곽으로 빠지는 느낌마저 든다. 15분 정도 차이가 나는 것 같다.


하필 비도 오는데 두번째 길을 선택 했다.

기름 값을 아껴보자고 선택한 길인데 10년은 늙어 버린 기분이 든다.

빗물에 얼룩져 보이는 풍경, 어둠이 삼켜 버린 차선,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집에 겨우 도착했다.

저녁이고 뭐고 아무 생각도 나질 않는다.  침대에 누워서 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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