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 오리 이야기
"We are raising ducks."
하면 사람들은 으레
"Oh, where are the dogs?" 하고 묻는다. "They're ducks, not dogs"라고 고쳐 말한다. 발음은 어설프고 반려동물로는 단연 개가 친숙한 까닭도 있겠다.
우리 집 반려 동물은 오리 두 마리가 전부다. 딸은 인터넷으로 오리알 네 개를 주문하였다. 자신의 침실에서 한 달 동안 부화기와 종이상자 위에 24시간 전등을 켜두고 온도와 습도를 세심하게 조절하였다. 어린 오리 네 마리가 차례로 세상으로 나왔다.
딸은 자신의 방에서 이들을 길렀다. 흡습 패드를 깔고 부화때와 마찬가지로 온도와 습도를 맞춰주었다. 계란 노른자와 물을 주다가 좁쌀과 병아리 먹이를 주었다. 처음엔 힘 없이 전등 불빛아래 잠만 자더니 곧 무럭무럭 자라났다. 닭 병아리와 달리 넓적한 노란 부리로 좀 허스키하게 삐약거렸다. 낮엔 종이 상자를 두드려 존재를 알렸다. 하루 두세 장의 패드로 부족할 만큼 배변도 잘했다.
사랑스렀지만 닭의 병아리처럼 사람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딸은 아이들을 만져보지도 못하면서 애지중지 길렀다. 얼마 안 가 그 예쁜 아이들의 배변 냄새는 못 견디겠는지 발코니로 이들을 내보냈다. 그러나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수도시설이 없고 청소할 때 오물이 현관으로 낙하하는 구조라 모두 마당으로 옮겼다. 마당엔 잔디도 있고 꽃도 피어 아이들이 놀기 좋았다. 커다란 노란 농사용 플라스틱 상자를 거꾸로 엎으니 어린 오리들에게는 훌륭한 집이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 이른 선택이었다. 마당에서 놀던 아기오리 한 마리가 사라졌다. 하수구에 빠진 걸 모르고 소리를 찾아 헤매었다. 그러다 소리마저 잠잠해져 안타까웠는데 남편이 다른 배수망에서 아이를 찾아냈다. 하지만 마당에서 기른 지 사나흘만에 마당에서 놀던 네 마리 중 한 마리가 사라졌다. 들고양이의 짓으로 추정되었다. 딸과 함께 집 주변과 근처 들까지 샅샅이 찾았지만 끝내 아기 오리는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엔 엎어놓은 노란 플라스틱 망 상자 안에 둔 세 마리 중 한 마리가 없어졌다. 동네 어르신들은 들고양이가 상자 손잡이 구멍으로 앞발을 넣어 채 간 것이라 하였다.
'이 작은 구멍으로 그게 가능할까?'
범인을 잡을 수도 없었고 잡은들 오리가 돌아올 리 없었다.
이제 건강한 오리 두 마리만 남았다. 송이와 콩이다. 다시는 이 아이들을 잃을 수 없었다. 포도나무 아래 상자에 철망을 덮고 바깥 울타리를 만들어 철통 같이 아이들을 지켰다. 먹이를 주려 꺼내거나 나름 산책을 시킬 때도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았다. 아이들은 금세 자라 이젠 상자가 많이 비좁아졌다. 큰 집이 필요했다. 인터넷에서 닭장을 샀다. 조립해 보니 둘이 지내기엔 넉넉했다.
아이들이 지낼 좋은 자리가 어디일까? 이장님은 배수로 양쪽을 그물망으로 막고 위까지 망으로 덮어 기르라고 하였다. 내 생각은 달랐다. 우리 집의 배수로는 비가 넉넉히 올 때나 흐르고 평소엔 말라있어 하루 종일 물이 필요한 오리에겐 적합하지 않았다. 나와 딸은 상의 끝에 마당 연못가로 정했다. 위쪽 우물에서 빼낸 물이 항상 흐르고, 물풀과 물속 생태계가 살아 있어 아이들의 먹이가 되어줄 것 같았다. 문제는 고양이 같은 들짐승과 독수리나 까마귀 같은 날짐승일 것이다. 아이들이 덩치가 커져서 잡혀갈 것 같지는 않지만, 그들의 괴롭힘은 걱정이 되었다.
며칠 지켜보며 조금씩 연못에 적응시키려 하였는데 아이들은 냅다 뛰어들어 물을 즐기기 시작했다. 저녁에 집에 들어가라 해도 안 들어갈 정도였다. 아이들이 집에서 나와 물에서 놀면 연못가에 사료를 갖다 준다. 아이들은 물과 사료를 번갈아 먹는다. 그동안 나는 이들의 집을 청소한다. 진자리를 걷어내고 곡식 부산물과 마사토로 새 자리를 깔아준다. 9월에 태어나 이제 넉 달째 우리의 반려 오리는 우리 가족의 보살핌 속에 잘 자라고 있다.
요즘 연못 물이 자주 언다. 대야에 따로 담아 준 물도 얼어서 물 공급이 어렵다. 그래도 추우면 담벼락에 앉아 햇볕을 쬐고 연못물이 조금 녹으면 뛰어들어 유유히 헤엄을 치니 보기가 좋다.
아쉬운 건 이 모든 것이 짝사랑이라는 것이다. 송이와 콩이는 사람을 따르지 않아 밥을 줄 때나 우리의 문을 열어줄 때도 기겁을 하고 도망을 간다. 한 번은 한 마리를 붙잡아 안아보았다. 하얗고 부드럽고 풍성한 오리털의 촉감이 아주 좋았다. 발버둥 치고 꿱꿱거려 곧 놓아주었는데 다른 오리한테 가서 어찌나 큰소리로 성토를 하는지 붙잡은 내가 민망할 정도였다.
요즘 나는 낮에 이들의 머리 위를 선회하는 까마귀나 물까치, 그리고 자주 출몰하는 들고양이를 쫓아낸다. 혹시나 모를 사태를 대비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다. 시골에서 오리를 기르는 일이 낯설고 서툴다.
확실치는 않지만 송이와 콩이는 둘 다 암컷으로 보인다. 어쩌면 조만간 따뜻한 오리알을 보게 될지 모른다. 감히 먹을 수 있을까? 태어난 지 몇 달 되지도 않은 어린 생명들이 잉태한 그 엄청난 우주를 감히 해할 수 있을지 난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