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똥꾸엔 빵꾸가 있다. 위치가 문제일 뿐
처음부터 조금 지저분한 얘길 하려니 이 글을 읽을 분들께 죄송하고 부끄러울 따름이다. 물론 그냥 하는 소리고 사실은 죄송하지 않다. 내가 이렇게 뻔뻔한 사람이다. 하지만 작가란 무릇 뻔뻔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니 먼저 뻔뻔하게 굴면 추후에 작가가 될 수 있을지도? 고로 오늘은 김뻔뻔이라고 불러주시길.
다만 엄밀히 말하면 지저분한 얘기는 아니다. 비록 배출물이 더럽다 해도 그걸 도와주는 이를 어찌 지저분하다 하겠는가.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그걸 해주는 분이다. 그러니 똥꾸에 있는 빵꾸는 참으로 소중한 존재인 것이다.
그러니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를 열린 마음으로 봐주시길 바란다. 물론 코는 막으셔도 된다. 열린 마음, 막힌 코면 충분하다.
나는 평소 화장실을 즐겨 가는데 이는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라는 악독한 아이와 평생을 함께 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도 할 말이 참으로 많다. 누군가는 이 지병을 부러워하곤 한다. 대개는 화장실을 자주 가지 못하는 분들께서. 하지만 뭐든 과유불급이라 하지 않았던가. 하루에 다섯 번쯤 가게 된다면 여섯번째 부터는 누구나 그 말을 철회하고 싶어질 것이다.
내 장은 어찌나 과민한지 맵거나 기름진 것, 자극적인 것을 먹으면 즉시 신호가 온다. 그런 걸 먹지 않아도 심심하면 신호가 오고, 더 큰 문제는 심인성이다. 꼭 집에서 나가려고 하면 신호가 오고 정신적으로 압박을 받아도 온다. 뭔가를 선택해야 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서점에 가서 책을 고를 때마다 배가 아프고 그러다 보니 파블로프의 개처럼 서점의 책향만 맡아도 신호가 올 지경이랄까. 우스갯소리로 “다이소에 가면 큰일 나겠네요^0^”라는 얘길 들은 적이 있는데 실제로 다이소는 위험한 곳이기에 빠르게 쇼핑을 마치고 나와야 한다. 똥꾸뿐만이 아니라 지갑에도 빵꾸가 날지 모른다.
정말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면, 때는 2023년 가을 즈음이었을까. 여느 때와 같이 하늘의 계시를 받고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데 심상치 않은 통증이 느껴졌다. 엉덩이가 맵고 쓰라리다고 해야 할까? 샤워하다가 넘어졌는데 우연히 엉덩이 부근에 캡사이신을 잔뜩 뿌린 붉닭볶음면이 있어서 그걸 깔고 앉은 기분이었다. 나는 부뚜막에 앉은 송아지처럼 슬피 울고 싶어졌다. 그날은 딱히 매운 것을 먹지도 않았는데. 억울할 따름이었다.
여차저차 수습을 하고 집을 나서는데 진정한 고통은 이제 시작이었다. 누가 내 똥꾸에 뾰족한 밤송이를 하나 꽂아놓은 게 분명했다. 걸음걸음마다 무언가가 쓸리며 지독한 통증이 느껴졌다. 나는 허리를 숙이고 엉덩이를 뒤로 뺀 채, 다리를 벌리고 어기적 어기적 걸었다. 수치스러웠지만, 그런 걸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정수리에서 식은땀이 솟아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