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똥꾸엔 빵꾸가 있다. 위치가 문제일 뿐
나는 스파게티 웨스턴 무비를 떠올렸다. 휘파람소리와 멋들어진 카우보이 모자. 널찍하게 벌린 다리, 콜트 싱글 액션 아미가 꽂혀있는 가죽 홀스터. 양손을 주머니에 꽂아 넣자 황야의 무법자가 된 기분이었다. 뭐가 됐든 당장이라도 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디로, 뭘 쏘느냐가 문제겠지만. (당연하게도 대로변에서는 뭐가 됐든 쏘면 안 된다)
내 꼴을 본 사람들이 길을 비켜주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덕분에 목표한 곳에 일직선으로 도달할 수 있었으니.
식은땀을 흘리며 약국의 문을 열었다. 주말이라 병원을 갈 수도 없었다. 하긴, 평일이라 해도 병원을 갔을지는 의문이긴 하다. 수치스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기에.
가랑이를 벌리고 위협적으로 등장하자 나이가 지긋한 약사님께서 안경을 고쳐 쓰셨다. 척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드신 모양이었다. 나는 고통을 참느라 똥꾸처럼 오므라진 입술에서 힘겹게 말을 뽑아냈다.
“그… 똥꾸가… 너무 아파서요.”
약사님께서는 별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셨다. 내게는 별 일이었이기에 그 무심함이 약간은 서운했지만 동시에 나 같은 환자가 제법 많은가 보다 싶어서 약간의 위안이 되었다. 똥꾸가 아프니 참으로 별게 다 서운할 일이다 싶었다.
경구제를 원했으나 약사님께서는 단호하게 말하셨다. 효과가 좋은 순서는 좌약, 연고, 경구제라고. 그리고 초기에 전부 다 쓰는 게 좋다며.
나는 눈앞이 아찔해졌다.
이렇게 아픈데, 이게 초기라고? 그러면 중기, 말기도 있다는 건가? 어찌나 두려웠는지 울며 겨자 먹기로 약들을 전부 구매했다. 약값은 상당했다. 병원에서 처방전을 받아왔으면 좀 더 저렴했을 텐데. 지갑에서 돈이 뭉텅이로 빠져나가자 새삼 똥꾸가 더욱더 쓰라렸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샤워를 하며 슬쩍 만져보았다. 밤송이는커녕 보드라운 무언가가 만져졌다. 아무것도 없어야 할 곳에 살덩이가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너, 너는 여기 있으면 안 돼! 너는 똥꾸고 나는… 나는… 어쨌든!
녀석을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평생을 고된 일만 하다가 처음으로 세상을 보게 되어서 그런 것일까?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일이었다. 서로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 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씻고 나와서 약사님의 처방을 따랐다. 모로 누워서 무릎을 끌어올리고 좌약을 넣고 연고를 바르고 약을 끼니때마다 먹었다. 식생활은 최대한 자극적이지 않게 먹으려 노력했다.
약사님의 처방에 따른 덕분인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악마의 밤송이는 자취를 감추었다. 참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그저… 가끔씩 바깥 세상을 그리워하는 녀석의 전조가 느껴지곤 한다. 그러면 얼른 연고를 성수처럼 바르고 케겔운동으로 엑소시즘을 진행한다. 그러니 여러분도 똥꾸에 있는 빵꾸가 악마에 들리기 전에 소중히 여기시길 바란다. 비슷한 증상이 있으시다면 가까운 병원에 내원하시길. 의사 선생님께서 소중히 여기는 방법을 자세히 알려주실 것이다.
끝으로… 항상 고생하는 우리의 똥꾸와 빵꾸에게… Che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