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드는 건 내 권한이 아니다.
2026년 1월의 어느 밤, 나는 또다시 화가 나 있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21개월 된 딸 아이가 밤 11시가 넘도록 잠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를 재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저녁 8시부터 조명을 어둡게 하고, 목욕을 시키고, 자장가를 불렀다. 완벽한 수면 환경을 조성했다.
내 계획대로라면 아이는 10시에 잠들어야 했다. 그래야 내가 쉴 수 있으니까.
하지만 아이는 내 계획을 비웃기라도 하듯 눈을 말똥거리며 놀았다.
화가 치밀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왜 너는 자지 않는 거야?'
나는 억울했다. 내가 투입한 노력(Input)에 대해 아이는 수면(Output)으로 보답해야 마땅했다. 그것이 내가 아는 세상의 이치였다.
그때, 아까 읽은 에픽테토스가 말을 걸어오는 듯 했다.
"어떤 것은 우리 권한에 속하고, 어떤 것은 우리 권한에 속하지 않는다."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불을 끄고, 자장가를 부르고, 옆에 누워주는 것. 여기까지는 내 권한(Input)이다.
하지만 '잠드는 것' 그 자체는 내 권한 밖(Output)의 일이다. 그것은 아이의 생체 리듬과 그날의 컨디션, 그리고 신의 영역이다.
나는 권한 밖의 일을 통제하려 했기에 고통받고 있었다.
내가 화가 난 이유는 아이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노력하면 결과를 통제할 수 있다"는 나의 오만한 가설 때문이었다.
나는 실험 노트를 꺼내 가설을 수정했다.
기존 가설: 내가 완벽한 환경을 만들면 아이는 잔다. (통제 가능)
수정 가설: 나는 환경을 만들 뿐, 잠드는 건 아이가 결정한다. (통제 불가능)
마음이 차분해졌다. 나는 더 이상 아이를 재우려 애쓰지 않았다. 그저 어둠 속에서 아이가 스스로 잠들 때까지 옆을 지키는 '관찰자'가 되기로 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아이의 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육아뿐만이 아니었다.
주가가 오르는 것, 타인이 나를 인정해 주는 것, 회사가 내 헌신을 알아주는 것.
이 모든 것이 내 권한 밖의 일이었다. 나는 그동안 통제할 수 없는 변수를 통제하려다 스스로를 태워먹은 것이다.
이제 나는 내 권한 안의 일에만 집중한다.
주가를 예측하는 대신 기업을 분석하고, 타인의 인정을 구걸하는 대신 나 자신에게 떳떳한 하루를 보낸다.
결과는 신에게 맡긴다. 이것이 내가 찾은 평온의 공식이다.